아니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게 언제쯤일까.
태교랍시고 철학책을 뒤적거리던 때였을까, 아니면 아기가 잠든 틈을 타 육아를 글로 배우던 시기였을까.
지난 몇 달간 아기를 핑계로 책과 거리두기를 하며 지내왔다.
나에게는 읽지는 않더라도 늘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책을 두어야 마음이 놓이는 '책부심'이 있다. 하지만 매일 네 번의 수유와 세 번의 이유식 한 번의 간식을 아기에게 대접해야 하고,
응가를 한 작고 귀여운 엉덩이를 네 번쯤 씻겨줘야 하고,
잠들기 싫다며 온 힘을 다해 우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 낮잠을 세 번쯤 재워줘야 한다.
어쩌다 숨 돌릴 틈이 생겨도 멍청하게 스마트폰으로 시시한 영상들이나 보며 깔깔대기 일쑤였고 어쩐지 책에까지 손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올 해가 다 끝나가고 있었고, 소파 옆 협탁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책들에 먼지만 하얗게 쌓여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될 일이었다.
책! 책! 그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어떻게 읽는 것이었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런 때에는 책 쇼핑이 최고다.
나에게 책을 고르는 것은 옷을 고르는 것과 기준이 비슷하다.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 사이즈(분량)를 보며 나에게 잘 맞는 것을 고른다. 구매하기 전에 옷을 한번 입어보듯 목차를 훑어보고 몇 장을 먼저 읽어보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옷을 사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책도 직접 서점에 가서 종이 냄새를 맡으며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보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다. 지금의 나처럼 문해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 하는 신작이 적당하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다음날부터 책 읽는 엄마가 되어보았다.
먼저 아기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를 배울 수 있다는 책을 몇 장 읽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고, 다음으로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장편 소설을 읽으며 본격 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기가 잠들었을 때 스마트폰 대신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종이에 있는 활자를 읽는 게 어색할 정도로 책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느꼈지만 자꾸 만나다 보니 책은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글을 읽는 능력이 점차 회복되었고,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음날이 더욱 기다려졌고, 조금씩 삶에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아 다시 책 읽기가 두렵고 막막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아기를 키우느라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 엄마 아빠들에게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대한 쉽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그런 책을 골라서 함께 읽어보고 싶다.
누구에게나 그런 친구가 있다. 어릴 때에는 친하게 잘 지냈었는데 나이 들고 사는 게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지금은 소식조차 알기 힘든 친구. 가끔은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선뜻 먼저 연락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그런 친구. 우리들에게 책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친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