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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Dec 12. 2021

독후감: 1차원이 되고 싶어(박상영)

  책 읽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완독을 한 책은 박상영 작가의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였다. 우선 이 책은 흡인력이 대단했다.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수개월이 되어 활자라곤 유튜브 영상을 볼 때 읽는 자막 정도가 전부였던 나조차도 400페이지나 되는 소설을 하루아침에 다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몇 해 전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인 '소설 보다'의 가을 편에 실린 '재희'라는 작품으로 박상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제목이 운명처럼 느껴졌던 '재희'라는 작품을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순식간에 해치우면서 '요즘 소설은 이런 것이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작품은 훗날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박상영 작가가 인물을 담아내는 방식, 이야기를 엮어 가는 방식,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 그 모든 것이 내 취향이다. 육아를 하는 틈틈이 읽기에는 마냥 가볍거나 유쾌하지 않고, 오히려 무겁고 불편한 마음이 들법한 작품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심란함이 나를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조심스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2002년 월드컵 무렵부터 시작되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역순행적 구성, 액자식 구성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작품 속의 '나'가 직접 겪은 일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본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작품들은 독자가 인물에게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는 효과가 있는 데다가 주인공이 현재의 나와 동갑이라는 점에서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D시라고 나와 있는데 작가의 고향인 대구일 가능성이 높다. 이 작품을 거칠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02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던 주인공이 느끼는 사랑, 우정,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잊고 있던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했다.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았던 나와 내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그 시기를 버텨왔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방황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안타깝게도 학교나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작품의 주인공들은 문제의 해답을 만화책에서 찾곤 했다. 우리도 정말 그랬다. 만화책에는 같은 고민을 했던 선배들의 경험담이 있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곤 했다. 누군가 학교에 만화책을 가져오면 하루 종일 반 아이들이 몰래 돌려가며 읽으며 울고 웃던 추억이 떠올랐다. 한 권에 400원이던 만화책 대여료가 300원으로 내리고, 200원까지 내려갔을 때 왜 우리는 그것이 만화책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을까...


   시기는 순수하고 열정이 넘쳐서 누구나 가슴에 불덩어리 하나쯤은 품고 있었다. 사랑이나 우정에 목숨을 바칠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짧은 문자 메시지 하나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  세상에  바랄 것이 없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은  시기의 아이들에게 쉽사리 사랑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창 가슴이 말랑말랑한 시기에 딱딱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작품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해야만 했다. D시를 떠나기 위해, 사랑을 되찾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로 도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라는 놈은 시험 점수를 의미하고, 무감각한 기계가 될수록 유리한 것이 현실이다. 1차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 감각이 없을수록 시험에 유리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공부와 시험이 죽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생각과 감각을 죽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훈련이  되어 있는(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면서 사회에 이로운 일을   있을까. 다양성을 인정하며 참신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나누고 발전시켜 세상의 변화를 이끌  있을까. 잠시 잊고 살았지만 나는 이런 고민을 하는  직업인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스스로가 참 기특하게 느껴졌다. 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것만 같았던 시절을 잘 지나왔구나.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해준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들도 어디선가 나를 가끔 떠올리면서 잘 지내고 있겠지. 그리고 내가 복직을 해 학생들을 다시 만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무사히 교실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대견하다는 것을 잘 알아줘야겠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 집 꼬맹이가 걱정이다. 꼬맹이가 외롭고 힘든 그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너의 모든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네가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혹자는 박상영이라는 작가를 퀴어 소설로 정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가 2000년대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동갑인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박상영 작가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혹시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먼저 말을 걸게 될지도 모르겠다. 퀴어의 홍수 속에서도 그의 퀴어가 더 특별한 이유는 작가가 가진 인간에 대한 '짠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후감을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편을 소개했다는 데 의의를 둔다. 다음 책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로 정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 읽고 정리가 되면 내 생각을 공유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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