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여행에서의 기억
예전부터 어떠한 사물이나 주변 환경, 구체적으로는 도시와 건물, 사람까지.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특성들을, 색깔로 분류하고 기억해내는 경우가 있었다.
14살인 중학교 1학년 때, 학원들이 즐비했던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던 어머니를
극구 만류했던 것도, 내가 느끼는 대치동의 빛은 채도 없는 회색 빛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어머니는 결국엔 당신의 의사를 거두셨지만,
내가 이사를 반대했던 위와 같은 이유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렇듯, 색에 대한 이미지가 강했던 나에게
올해 초 겨울 독일로 이동하기 전에 들렀던, 피렌체는 강렬한 붉은색으로 남았고,
더욱이 17년 1월 첫째 주 금요일. 불금의 피렌체는 잊을 수 없는 붉은빛으로 남아있다.
채도 낮은 회색 빛의 붉음.
아침의 피렌체가 비친 색이었다.
아침부터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다.
추적추적 비가 왔고, 예약해 놓았던 두오모와
종탑을 오르기엔 카메라를 놓고 가고 싶었던,
그런 아침이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그 갈등
여행지에서 으레 겪는 순간순간의 감정의 변화는 순간의 기억을 풍성하게 해준다
그래도,
여행에서 남는 건 신발의 닳은 자국과 사진뿐이다.
이 Cliche를 믿고 사진기를 들고 계단들을 오르며
간간히 셔터를 눌렀다. 위 사진을 남기기까지도
스스로를 반신반의하면서 카메라의 무게는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고 피렌체의 붉은빛도 감흥이
크진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 얻은 하늘색과 어우러졌고,
또 다른 피렌체만의 색을 강하게 비쳤다.
점심 즈음이었을까, 거짓말처럼 비는 그쳤고
날이 점차 개면서 하늘빛과 붉은빛의 대비가
눈에 조금씩 담겼고, 또 렌즈에 조금씩 담겨갔다.
피렌체를 몇 번이고 곱씹은 그 날,
나는 잊지 못할 색을, 기억에 남겼다.
이 날은 금요일이었다. 서울이었다면 한 번쯤,
알 수 없는 들뜸의 시간이 될 수 도 있는 그런 불금.
물론 두오모 광장 앞은 붉음의 불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으리라.
나는 지체 없이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발길을 옮겼고. 결국, 찾아낼 수 있었고, 담아냈다.
내 기억에 남을 강렬한 붉음.
그날의 피렌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