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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린 Aug 28. 2021

하루키 씨, 나도 학교는 그닥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읽기

        

어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8회,  '학교에 대해서' 초반을 조금 읽은 뒤,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8회의 감상을 요약해서 말해보자면,


'나랑 하루키 씨랑 닮은 구석이 있긴 하구나'


8회에서는 제목 그대로, 하루키가 자신의 학창 시절과 학교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은 파트였다. 앞선 파트에서도 나왔듯이 하루키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다만, 학교 수업이 재미가 없었고, 체육시간이 끔찍해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교의 체육 수업이란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감이 갔던 파트는,


"세상에는 원래 다양한 천성이 있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내가 보기에는 공동체에 동물이 되는 '개적인 인격'을 만드는 것이,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어 단체로 졸졸 목적지까지 끌려가는 '양(羊)적인 인격'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라는 부분이었다.

음. '일본의 교육 시스템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육 시스템도 비슷할 것 같기도'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가 여기서 '한국의 공교육은 어떻고 저떻고 뭐가 문제고...'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12년 간 우리나라에서 공교육을 받아온 감상이 하루키의 감상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내가 받아온 공교육도 '공동체의 분위기와 흐름에 순응해라'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공동체의 분위기와 흐름에 순응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학교에서 공동체에 잘 순응하라고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에 나와 규칙과 예의를 지키며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회적 규범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공동체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필요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12년 동안 사회에서 잘 써먹을 수 있는 상식들을 가르쳐 준다. 적어도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100만 원의 상금을 탈 수 있는 퀴즈의 답들은 거진 다 공교육에서 가르쳐 주지 않나. 영국의 대헌장 이름이 마그나카르타이며, 지금의 개신교가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온 종교이니 뿌리가 같다는 내용 정도는 중학교 2학년 세계사 시간에 가르쳐준다.(세계사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 근데 왜 개신교 몇몇 사람들이 천주교에서 예수님을 안 믿고 성모 마리아 님을 신으로 믿는다고 아는지 정말 모르겠음.) 물론 잘하는 과목, 못하는 과목이 있어서 아무리 공교육에서 배웠다고 해도 '기억을 못 하는 내용'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 나는 학교에서 오른손의 법칙, 왼손의 법칙을 배웠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 안 나니까.

 아무튼 여기서 지적하는 공교육의 문제는 그런 부분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개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울 기회를 주기보다는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교육 비슷한 거'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아시리라 믿는다. 방어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느라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쓰질 못했는데, 아무튼 학교에는 단체로 하는 활동이 너무 과하게 많으며 난 단체 생활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사람이라 학교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개인플레이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 대학교에서는 숨통이 트여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었고 학교도 재밌게 다닐 수 있었던 거 같다. 더 얘기를 풀어보고 싶은데 방어적인 이야기를 쓰느라 머리가 소진됐네.....


또한, 하루키는


"나보다 영어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주 많았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들은 영어 책 한 권을 통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충 슬슬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왜 내 영어 성적은 여전히 별로 좋지 않은가. (중략) 영어로 책을 읽을 줄 안다거나 외국인과 일상 회화가 가능한 것은 적어도 내가 다닌 공립 고교의 영어 선생님에게는 사소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그보다는 한 개라도 더 어려운 단어를 외우고 가정법 과거 완료형이 어떤 구문이 되는지 외우고 올바른 전치사나 관사를 고르는 것이 중요한 작업입니다""


라고도 이야기했다.


하루키는 친구가 많이 있었을 거 같지만, 나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특히 중학교 때는 책을 무척 많이 읽었는데, 그때 이런저런 책을 읽다 보니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책'이라는 책들도 읽어보게 되더라. 예를 들어 '데미안' 같은 고전 소설 말이다. 솔직히 중2병에 걸려서 반은 허세쯤으로 읽었던 거 같다. 그래도 막상 읽어보니 재밌어서 무척 열심히 읽었었다. 특히 민음사의 5권짜리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진짜 재밌었지만 진짜 두꺼웠는데, 다 읽고 나서 '내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5권이나 다 읽었다니'라며 스스로 놀라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책'을 읽었건만 국어 점수는 그다지 오르지 않았고........... 그냥 재밌게 읽었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명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지만 5권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독해 능력이 향상되었다든지 '발랑틴' 같은 프랑스 소설 속 익숙하지 않은 발음에 대한 허들이 낮아졌다든지 하는 머릿속 변화는 일어났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공교육에서 점수로 치환되지는 않더라. 물론 학교 성적이 전부가 아니며 교과 과목 외의 컨텐츠에서 배울만한 것들이 무궁무진 하다는 것을 지금은 매우 잘 알지만, 막상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실속 없게 느껴질 만하지 않을까. 실속이나 효율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며 많은 것을 체험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어른인 지금의 나는 알지만,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입장이 다를 수 있을 거 같다. 갖은 보상과 칭찬을 학교 성적에 따라 주면서 막연히 '교과서 외의 책도 읽어라'하는 건 학생 입장에서는 좀 의욕이 안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칭찬과 대가와 보상을 바라고 읽는 거 자체가 문제. 읽는 재미와 감동 자체가 보상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재미와 감동이 있으며 배울만한 게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어른들의 입장이고. 일단 아이들이 책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의외로 고전 소설이나 권장 도서들은 재밌으니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데........... 어라, 어쩌다 이렇게 나답지 않게 깊기 고찰하며 글을 쓰고 있는 거지?;;; 별 깊은 생각 아니고 그냥 나만의 생각이니 지나가 주시길.


어쨌든 다시 하루키의 이야기로 가보자면

그의 말속에서 '어려운 단어를 외우고 가정법 과거 완료형이 어떤 구문이 되는지 외우고 올바른 전치사나 관사를 고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긴 한다. 실제로 하루키는 "직업적으로 번역을 하게 된 뒤로는 그런 기초 지식의 부족을 새삼 통감하곤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나중에 보강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경중을 따질 필요가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가정법 과거 완료형을 익히는 것도 올바른 영어를 구사하는데 도움이 되니 중요한 일이고, 영어 서적을 술술 읽을 수 있는 것도 사회에서 영문 웹사이트를 검색할 때라든가 아무튼 여러 상황에서 도움이 되니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굳이 둘 중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아니라 언어 그 자체의 이런저런 모습을 균형 있게 배워야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영어 시험에도 문법, 독해 파트가 나뉘어 있고 훌륭하신 분들이 시스템을 만들었을 테니 나름 촘촘하게 균형이 이뤄져 있을 거 같은데.





아무튼. 오늘은 생각이 너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여기서 마무리해보고 싶다. 어쩌다 글이 이렇게 되었지...? 빨리 점심 먹고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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