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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린 Sep 25. 2021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완독 후기

어쨌든 다 읽긴 했다

    

 갑자기 11회, 12회 이야기 없이 완독 후기를 올리는 게 민망하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보고자 이렇게 글을 올린다.

 생각해보니 완독 한 지 몇 주 되어 따끈따끈한 완독 후기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쓰는 완독 후기도 그 나름대로의 숙성된 맛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루키 아저씨가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면서 가졌던 생각을 소소하지만 묵직하게 써 내려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대 작가 하루키의 소설 작법이라든가 여러 경험도 분명 녹아들어 있지만, 책 자체의 내용이 재밌어서 소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소설에 관심이 없어도 내용이 재밌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가 무척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확실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기본 성격 자체도 매력적인데,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먼치킨적인 요소까지 살짝 가미된 사람이니 그 매력이 배가 될 수밖에. 그렇다. 야구를 보다가 "앗, 소설을 쓸 수 있을 거 같아!"라는 생각에 소설을 썼고, 그렇게 쓴 첫 번째 소설이 문학지 신인상을 수상한 뒤 그대로 승승장구하는 인생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 속 먼치킨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무덤덤하게 일상과 일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 속에는 드문드문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위트가 숨어있다. 작가 본인은 위트를 의도하지 않은 거 같아 더욱 재미있다.

 하긴, 성격이나 문체를 떼어놓고 생각해도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고 소설을 쓰며, 취미로 번역을 하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고 재즈를 들으며 종종 외국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집필하는 삶 자체가 판타지 같다. 하루키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 그 자체로서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충분한 사람이니, 내 눈에 그의 인생이 재밌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의 모든 인생을 아는 건 아니며, 그가 고쿠분지 재즈바를 운영할 때 빚 때문에 힘들었던 과거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소설가 이후의 삶을 살펴보면 정말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아마 내가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재밌어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내 입장에서 하루키는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보다 더 소설 같은 캐릭터다. 그 소설 같은 캐릭터가 현존하여 자신의 인생을 직접 이야기하니, 그의 소설보다 그 본인의 이야기가 더 재밌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직 이런 이유만으로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서 본 소설가 하루키는 <천직으로서의 소설가>라고 책 제목을 바꿔도 될 만큼 소설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모두 책에 담아내는 건 아니기에 분명 그에게도 말 못 할 고충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짐작이 잘 안 가지만)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만약 소설을 쓰지 않고 아직도 그가 고쿠분지 재즈바를 운영하더라도 그는 나름 덤덤하게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착실하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니, 좋아하는 재즈를 마음껏 들으며 손님들과 저녁에 맥주를 마시는 그가 상상된다. 아마 장사를 계속했더라도 무척 잘됐을 거야.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 출간 후 소설가로서 한창 히트를 쳤을 때 미국으로 가 신인 작가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던 것처럼, 성황을 이루는 재즈바를 두고도 다른 일에 도전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거 같다. 참고로 나는 <노르웨이의 숲>이 일본에서 히트 친 뒤에 저절로 미국에 수출되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히트 후 직접 하루키가 미국으로 건너 가 개인적으로 번역을 의뢰하고 영어로 번역한 원고를 출판 에이전트에게 가져가 미국 출판사에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게 무척 놀라웠다. 정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가 '사람 망치는 칭찬 세례'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자신을 망친다는 걸 알아도 칭찬 세례를 떨쳐버리기 쉽지 않은데 떨쳐버리기 위해 미국까지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성격과 심지를 가졌다니.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가 그냥 원래부터 축복받은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하루키의 판타지 소설 주인공 같은 면모들을 살펴보고 싶다든가 대 작가의 소설 쓰기 루틴을 엿보고 싶다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은 지 몇 주가 지나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떠올리면 '재밌었어'라는 감상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 킬링타임용으로도 좋고, 소설을 쓸 생각이 없더라도 '소설가라는 인간은 어떻게 사나'라는 궁금증이 든다면 분명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일은 종종 흥미진진한데, 하루키의 인생은 분명 비범한 인생이니 그의 소설가 인생 이야기도 적극 추천해보고 싶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끝!




<우린 한낮에도 프리랜서를 꿈꾸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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