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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써니 Aug 07. 2016

허무한 로망, 시베리아 횡단열차

3박 4일, 기차 여행기가 아닌 체험기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후보지를 제치고 우리의 시작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결정됐다.


‘세계여행의 시작, 러시아’ 이 얼마나 그럴듯한 타이틀인가.

아마도 여행지로서의 러시아는 아직은 낯선 땅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곳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러시아로 간다고 했을 때,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첫 반응은 모두 한결같았다. “우와~ 멋지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마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길 3일째. 지금 나는 이 횡단열차의 어느 부분에서 “우와~”를 외쳐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횡단열차를 예약했을 때도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서울발 부산행 열차랑 똑같아.” 역시나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게 된 한 한국 청년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어 이 곳에 왔다고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중간에 내리지 않으면 6박 7일의 일정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여행으로서의 이 열차, 난 반대일세!’

한국에서의 인생이 죽도록 안 풀려 생각할 게 너무 많다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6일 내에 다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거나,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빵과 컵라면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이 열차는 안 타는 게 낫다.

열차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밤에도 자고, 낮에도 낮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15분 이상 정차하는 역에 내려서 잠시 바람을 쐬고, 세수 정도만 겨우 하고, 2등석이나, 3등석이라면 옆에 앉은 사람들과 조금 얘기하는 것뿐. 그 외 시간엔 심심하고, 또 심심하고, 또 지루하다.

블로그에 보면 골프공이나 세숫대야를 미리 챙겨가면 샤워나 머리 감기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 안에 있다 보면 그 또한 귀찮을 뿐이다. 물론 창 밖의 풍경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가끔 만나는 영어를 조금 하는 러시아인 친구와의 대화도 재미있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얘기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내 자리가 2층이라면, 2층 침대는 허리를 펴고 앉을 수도 없고, 1층 의자에 앉고 싶을 땐, 주인이 앉아 있거나 내가 앉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제공해 주어야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다.


편의시설이라고는 뜨거운 물과 비싼 식당칸이 전부인 이 열차를 왜 6박 7일이나 타려고 하는가.

바이칼 호수를 보기 위해 3박 4일 열차를 탄 우리는 결국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4박 5일 열차를 취소하고 비행기로 움직이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하루가 아쉬운 이 여행에서 4박 5일을 기차에서 보낸다는 건 너무 큰 시간 낭비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낭만을 배제하고 쓴 글이긴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물론 누군가는 열차에서 새로운 여행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로맨스를 만들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마음이 통하는 파란 눈의 친구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가능성이 희박하니 웬만하면 꿈꾸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약간은 공포스러웠던 인도 기차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이 열차에 대한 감흥이 덜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그저 열차일 뿐, 그 이상의 낭만과 감동은 살포시 넣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여긴 전압이 약해 노트북 충전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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