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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써니 May 31. 2017

서른아홉 그녀 + 9년

나의 여자들 #2

서문은 1편 참고.

항상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한참 글을 못 썼다. 두 번째 인물을 선정하기까지 고뇌가 깊었달까- 여행을 가기 전엔 여행경비 모으느라 못 쓰고, 여행 중엔 여행 글 쓰느라 못 쓰고 (여행 글은 여기). 다른 무엇보다 진득하게 앉아서 글 쓸 여유가 많지 않았다. 어쨌든, #2를 누구로 할지 너무나 고민이 많았지만 A언니와의 연장선으로 이 분을 선택함.

 

두 번째 나의 여자 B 언니. A언니와 B언니 그리고 나는 이제 가족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A언니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B언니가 다른 팀의 팀장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언니에겐 새로운 껌딱지가 생겨 안타까웠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파트너가 생긴 아름다운 인연이.


술 먹다 떠난 여행들

언니가 회사에 들어오고 얼마 뒤부터 우린 종종 퇴근 후 술을 같이 마셨다. 언니가 한 번 계산을 하면 다음엔 내가 계산을 하고, 그러면 또 다음에 언니가 사준다고 하고- 그런 식으로 우리의 술자리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둘 다 빚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얻어먹으면 또다시 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렇게 먹다간 월급통장이 남아나지 않겠다 싶어 최후의 수단으로 우리는 '주계(酒計)'를 결성했다. 매번 서로 계산하는 것 때문에 피곤하니 그냥 회비를 걷자는 취지에서였다. 이 얼마나 실용적인 아이디어인가! 다달이 일정 금액을 넣고, 편하게 술 마시고, 결제는 주계 카드로 하니 우리의 술안주는 이전보다 풍족해졌고, 늘어가는 술병만큼 우리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다 국내에서만 술 마시는 게 아쉬워 오사카로 둘만의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됐다. 신나게 웃고, 열심히 돌아다니고, 배 터지게 먹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주계에 이어 '여행계'를 시작했다. 여행계를 시작하고는 매년 언니와 해외여행을 떠났다. 싱가포르, 코타키나발루, 바르셀로나, 교토뿐 아니라 제주, 부산, 울산, 지리산 등 국내여행도 함께 다니고 재작년엔 A언니까지 동참해 엄마들 셋과 방콕 여행도 함께 했다. 최근 나의 세계여행으로 잠시 우리 여행이 국내 위주가 됐지만, 내년엔 언니와 아이슬란드에 가려고 나 혼자 계획 중이다.


최근의 술병들


골드미스란 이런 여자

나에게 언니가 최고의 여행 파트너인 이유는 언니의 꼼꼼함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추진력으로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나면 나머지 일정은 언니가 빼곡히 채워 준다. 이런 성격이니 일할 때는 오죽할까. 밑에 사람에게 맡기라고, 적당히 일하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언니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번 생은 글렀어.


언니의 업무 특성상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일을 혼자 맡아서 하기도 하고, 팀원들 기 살려주느라 정작 고생은 혼자 다 하고 있으니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내 이론은 '팀장이니 당연하지요'지만 아무래도 가까운 사이다 보니 어쩔 땐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언니의 진짜 멋짐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난 뒤 꿀 같은 휴가는 오로지 본인을 위해 활용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엄마와, 또 때로는 친구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언니를 보면 돈 쓸 시간 없이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운명일지 모르는 우리

작년 초 후배의 소개로 우리 셋은 함께 역술가를 만나 사주풀이를 했다. 역술가는 아직 결혼을 안 한 언니에게 82년생 또는 80년생을 만날 거라고 예견했다. 어쩌면 그의 부모까지 책임져야 할 팔자라고.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차라리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말렸는데 A언니가 역술가의 얘기를 다르게 해석했다. 그 82년 생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80년생은 A언니라고. 사실 B언니는 우리의 부모님까지 알뜰살뜰 챙길 정도로 애틋한 사람이다. 언니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사주에서 보이는 82년 생과 80년 생- 그건 정말 우리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이렇게 가족 같은 사이가 된 이유는 물론 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언니의 배려와 마음 씀씀이 때문이다. 언니가 자주 하는 말 또 하나.


아냐, 아냐, 나 진짜 괜찮아.

다른 사람이라면 피곤하다고 안 하고, 귀찮아할 만한 일들인데 언니는 대부분 괜찮다고 말한다. 처음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가 했는데 이제는 언니의 진심임을 너무나 잘 알게 됐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걸 나눠주는 사람이라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서로 기쁜 마음으로 주고 받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사람.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언니의 인생을 격하게 응원한다!



함께 갔던 바르셀로나에서, 손톱이 예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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