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항상 화려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거라면 뉴스에 나올법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폭포에서 떨어진다거나 차를 타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황당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몇 번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보다 평소 그가 무안함을 감추려 입버릇처럼 말하던 ‘약소합니다’라는 말을 더 자주 기억하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우리 가족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 말을 웃으면서 주고받을 때마다 찬란한 죽음이라는 건 사랑하는 이들과 보낸 일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찬란한 죽음에 대해 죽음을 체험하는 방식으로 괴상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한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를 만났다. 감독인 커스틴 존슨은 치매에 걸린 86세의 아버지 딕 존슨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의 마지막을 카메라에 담기로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엉뚱하게도 아버지가 미리 죽음을 체험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차에 치이고, 계단에서 떨어지고, 떨어지는 물건에 머리를 맞는 등 딕 존슨은 러닝타임 내내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죽음의 장면과 동시에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의 평범한 일상을 교차시킨다.
다큐멘터리는 집에 찾아온 손자들과 놀아주는 할아버지, 딕 존슨으로 시작한다. 자칫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딸의 요구에 시종일관 웃음으로 임하는 딕 존슨은 누구나 원하는 따뜻한 아버지의 전형이다. 그 사실이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카메라 안에 스태프들이 들어오고 그가 일어나며 모든 것이 픽션이라는 것을 일깨워줄 때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잔인하고 불경한 일을 딸이자 감독인 커스틴 존슨은 왜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 걸까?
그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일해왔지만, 정작 어머니를 담은 풋티지가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작품을 준비했다. 다가올 아버지와의 이별은 전과 달리 제대로 예행연습을 하기로 한 것이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로 탄생한 것이다.
그 자신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이 예행연습의 취지는 연출된 죽음의 현장이 아니라 옛날 친구를 만나고,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억하고, 가족들과 즐겁게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먹는 일상의 장면에 선명하게 녹아져 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가짜 죽음 뒤에 일상을 배치함으로써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유쾌함으로 승화시키고, 삶의 소중함을 극대화시킨다. 죽음 앞에서도 어쨌든 간에 계속되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차피 맞이할 이별 앞에서 지금의 일상을 충분히 만끽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이상하게도 이 평온하고 유쾌한 장면에서 눈물이 나온다.
내가 아는 건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 내가 할 말은 딕 존슨이 죽었다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원하라, 딕 존슨'이다.
고통스러운 사실을 외면하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산다. 다가올 시련은 우선 뒤편으로 제쳐두고 눈 앞에 소중한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자.
아주 다행히도 아직 딕 존슨은 죽지 않았다. 딸 커스틴 존슨이 본인의 아버지를 기록하고자 개인적인 이유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이제 우리 모두의 약속이 되었다. 후에 딕 존슨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 다큐멘터리를 봤던 이들 모두 그를 추억하기 위해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를 것이다. 그렇게 딸 커스틴 존슨의 소원대로 아버지의 찬란한 죽음과 영원한 삶이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