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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롱 Mar 16. 2021

연대의 또 다른 이름 '막시', 걸스 오브 막시

얼마 전 처음 스쿨미투운동이 일어났던 용화학교의 가해자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가해자가 항소를 제기했다고 하는데 끝까지 합당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


당시 용화학교의 학생들이 창문에 수많은 포스트잇을 붙여 만든 #MeToo는 연대의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걸스 오브 막시'는 이런 연대의 힘을 보여준 영화였다.


영화 '걸스 오브 막시'는 내성적인 학생 비비언이 저항적인 전학생 루시와 엄마에게 영감을 받아 교내 성차별에 대항하는 잡지 '막시(용기, 투지)'를 익명으로 만들어 퍼뜨리면서 친구들과 함께 연대하고, 이겨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비언이 매년 여학생을 품평하는 리스트를 만드는 학교 최고의 악당 미첼과 이를 보고도 무관심한 학교에 대항하기 위해 교내 성차별을 고발하는 잡지 '막시'를 만들었지만, 처음 잡지를 화장실에 놓았을 때 친구들이 손에 하트와 별을 그리며 연대를 보이지 않았다면 막시는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부당한 상황에 분노를 느꼈던 이들 모두가 함께 힘을 모으기로 생각했고, 움직이고, 막시가 됐다. 작은 연대들이 모여 결국 가장 상처 받은 피해자가 나설 수 있게 해 줬다.


'걸스 오브 막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에 별과 하트를 그려 연대를 표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격, 스토리 그리고 성별에 관계없이 막시의 일원이 되고 같이 저항할 수 있다. 그렇게 남자인 세스가 참여했고, 언제나 뒤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던 클로디아가 참여했다. 둘째, 현실에서 우리가 페미니즘을 이슈로 부딪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잘 담아냈다. 목표만을 보느라 친구의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는 것이라던가, 너무 몰입하다 보니 가끔 주변 사람을 너무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라던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일들을 하이틴 영화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비판적인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10대들에게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학생 때는 무언가를 고발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라 '막시'와 같은 거대한 저항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나름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2인가 고3 때 선생님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학교가 시끄러워질까 봐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그저 교사 평가에 몇 줄 적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고 교사 평가에 같은 내용의 글을 적어주었다는 것이다. 용화여고의 사례처럼 미투운동이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당시 할 수 있었던 나름의 연대와 나름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나와 같은 또래의 여성들 아니 모든 여성들이 각자 연대의 경험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언니들의 조언, 친구들의 위로. 우리는 각자의 손을 잡고 살아남았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호해줬던 기억이 절망적인 순간에도 다시금 힘을 내게 해준다. 나에게는 그 모든 기억이 '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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