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율 Mar 27. 2017

시카고의 겨울은 춥고 길었다

  시카고는 윈디 시티(Windy City)로 유명하다. 그만큼 바람이 많이 불고 거세기도 하다. 시카고에서 지냈던 날을 생각하면 바람이 항상 불고 있었다. 심한 날에는 ㄷ자형 학교 건물의 가운데에서 작은 회오리바람이 만들어져 나뭇잎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곤 했다. 한때 시카고에 살았다는 프랭크 바움의 소설에서 도로시와 토토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마법의 나라 오즈로 간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의 미시간 호수


 이 유명한 별명을 두고 개인적으로는 '시카고'하면 혹독한 추위가 먼저 떠오른다.
그해 1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기숙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대형 마트에 갔던 날, 영하 15도였다던가 영하 20도였다던가. 물건이 잔뜩 든 봉투들을 양손에 들고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데 해가 저물고 기온이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보라까지 불어치고 있었다. 도시가 통째로 거대한 냉동고 안에 들어앉은 듯했다. 얼굴이 얼어 말을 제대로 하기 힘든 건 물론이고 코로 쉬는 숨도 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다 냉동 참치가 되는 건 아닐까... 아, 냉동 인간인가. 눈이 쌓인 도로를 천천히 지나가는 차 안의 사람들이 우리를 안쓰럽게 보는 기분이었다. 그 내부는 또 어찌나 아늑해 보이던지.


미시간 호도 그 추위를 비켜갈 수 없었다. 처음 갔을 때 호숫가에는 크고 둥글둥글한 얼음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물이 얼고 파도에 깎이면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수심이 깊은 곳에는 갈라진 판 모양 얼음들이 있어 시카고의 겨울을 가늠하게 했다. (이 무렵의 그림이 거의 없는 것은, 장갑 낀 손으로 카메라를 가방에 넣다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한 푼이 아쉬운 학생 지갑 사정에 새 카메라를 선뜻 살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겨울이 지나가버렸다. 얼마 못 살다 간 카메라에게 애도를...)


미시간 호수에서 보는 시카고


 시간이 지나 4월, 한국에서라면 얼굴을 간질이는 따뜻한 햇살과 예쁜 꽃들을 보며 짧은 봄을 마음껏 느끼고 있을 계절. 그러나 시카고의 4월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었다. 여전히 추웠고 때때로 눈이 내렸다. 큰 맘먹고 바람 쐬러 나온 이 날도 미시간 호수에는 매섭도록 시린 바람이 몰아쳤다.

어우, 아직 춥네. 산책을 하기 이른 날씨이다. 미시간 호숫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도, 사람들로 북적일 법한 네이비 피어도 추운 날씨 탓에 한산했다. 좀 더 따뜻해지면 회전목마도, 놀이기구도, 관람차도 운행하고 나들이 나오는 사람도 많아지겠지.


봄날의 시카고 풍경을 만끽하겠다며 기숙사를 나서던 마음과는 달리, 찬 바람을 피해 건물 안에서 음식점과 쇼핑몰만 구경하게 된다. 한참 지나서야 오들오들 떨던 몸에 온기가 들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니 미시간 호수는 푸른 물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광활한 수평선과 탁 트인 풍경, 그 위를 유유히 나는 갈매기들까지. 호수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분명 바다라고 믿었을 모습이었다. 그 곁에 늘어선 건축물들은 시원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다. 저 멀리 시카고 항구 등대도 보인다.


시카고 항구 등대(Chicago Harbor Lighthouse)


1893년에 만들어졌다는 등대는 시카고 강 하구에서, 그리고 옮겨진 지금의 자리에서 수많은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뚝 서 있는 등대에게 이런 바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고,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역시 그랬다. 한겨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오래도록 멈추어 선 겨울의 틈을 비집고, 어느새 시카고에도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으로 시작하는 시카고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