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서 분명히 말했다.
“오늘 서울에 1mm 정도의 눈이 오겠습니다.”
그 말만 믿고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올라 출근길에 섰다.
겨울이면 가끔 내려주는 얇은 눈가루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조차도 오후엔 녹아 흔적조차 남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겨울은 늘 예고 없이 마음을 바꾼다.
1mm라던 눈은 어느새 5cm가 되었고,
5cm는 대설주의보로 바뀌었다.
퇴근 시간, 서둘러 차에 오르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처음엔 싸라기처럼 가벼운 눈발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짧은 안도는 채 몇 분도 가지 못했다.
갑자기 천둥이 울렸고,
번개가 하늘을 가르더니
눈은 폭설로 변해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도로는 금세 하얗게 잠겼고
차는 미끄러지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몸은 경직됐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히고,
어깨는 굳어 있었고,
온몸은 극도의 긴장으로 굳어갔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2시간 30분.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나는 눈 오는 풍경이 아닌
운전대 너머의 공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내 안에서 ‘눈’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설렘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먼저 끌어낸다.
4년 전,
폭설에 갇혀 4시간 동안 꼼짝도 못한 채 차 안에 앉아 있었던 기억.
눈앞에서 벌어진 6중 추돌 사고를 목격하며
가슴이 내려앉던 그 순간.
그 이후로 첫눈은 나에게 더 이상
하얀 낭만이 아니라
언제든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자연의 거친 얼굴이 됐다.
누군가는 첫눈을 기다리고,
어린 시절의 설렘을 떠올리고,
사랑의 시작을 떠올린다지만
중년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낭만을 쉽게 누리지 못한다.
나에게 첫눈은
“아, 또 긴장해야 하는구나”라는
현실적인 신호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예전의 마음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다만,
삶을 오래 견디며 얻은 경험들은
낭만보다 걱정과 대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것이 중년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지혜가 아닐까.
첫눈을 보며 설레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지 않으려 한다.
세월이 흐르면
눈의 의미도 달라지는 법이니까.
낭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낭만보다 지켜야 할 삶이 더 소중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