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가 바뀌면, 책임의 무게도 바뀐다

by 산에태양

사회 초년생 시절, 우연히 회사의 한 임원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막 입사한 신입 사원이었고, 그분은 공식적으로는 나와 말 한마디 나눌 필요도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가끔 나를 부르곤 했다. 회의도, 업무도 아닌 자리였다. 그저 방 안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때 그분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직책이 올라갈수록,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해야 해.”

당시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권한도 많고, 결정권도 있고,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자리에 있으면서 왜 굳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까. 오히려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역시 조직에서 임원이라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분의 말은 정확했지만, 조금 덜 설명된 말이었다.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어려운 일은 대부분 사람과 관련된 일이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일, 그 판단의 결과를 누군가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는 일, 그리고 그 결과가 상대방의 삶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일.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평가’다.

조직에서 평가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성과를 측정하고, 방향을 정하며, 다음 기회를 결정한다. 흔히 말하는 ‘필상필벌’이라는 원칙은 평가를 통해서만 작동한다. 상을 줄 때도, 벌을 줄 때도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다.
핑계가 있고, 이유가 있다. 누구의 말도 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를 이해하고, 모든 핑계를 들어주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조직은 그때부터 정체되고, 책임은 흐려진다.

그래서 위치가 올라갈수록 감정은 절제되어야 하고, 판단은 더 차가워져야 한다. 그 차가움은 무정함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힘든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통보받아야 한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해질 수는 없다.

이제는 안다.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무거운 선택을 감당하는 자리라는 것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기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날 담배 연기 속에서 들었던 그 말은, 결국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에게 도착했다.

작가의 이전글사람인(人)을 바라보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