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호로비치치 같은

김자까의 63번째 오분 글쓰기

by 김민관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구독자분들의 사연을 각색해 색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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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주신 분: 정모씨

사연: 회사 동료가 근래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손발이 잘 맞아 떠나지 않았으면 싶었지만, 동료의 미래를 생각하니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고민과 입장이 겹쳐 심란했네요. 결국 동료는 가지 않고 회사에 남았지만…

여하간 회사에는 항상 이런 지각변동들이
많네요.
이런 점들이 제게 참 힘든 점입니다.




오분 글쓰기 시이작->

최근 동료 후배의 일로 골치가 아팠다.
그와는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정도 들고
이제야 호흡이 맞기 시작했는데
한 상사의 권유도 있었고 그 또한 현재
회사에서 정규직이 아니라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지에 대해 고민을 심각하게 했다.

하지만 동료도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아직 확신이 없다면서 당분간은 현재 회사에서 남아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나 또한 이 문제로 가슴앓이를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호흡이 잘 맞는 동료가,
회사 내에 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회사 생활 3년 차.
다른 건 견딜 만 한데,
동료의 이직과 같은 마치, 지각변동처럼
회사의 구조가 변하는 일은 도무지 적응하기가 힘들다.


근데, 지각변동 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과학시간에 배운 맨틀의 대류 운동이다. 맨틀은 지구의 표면 지각과 지구의 핵 사이에 있는 아주 거대한 지층인데 맨틀의 대류 운동은 이러한 맨틀이 핵에 근저한 '하부'는 매우 뜨겁고
우리가 사는 지각에 근접한 상부는 덜 뜨거
움으로 인해 그 사이의 물질들이 오르내리며 발생하는 현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뜨거운 건 오르고 찬 건 내리는 성질로 인해
지구 내부의 피가 혈액 순환을 하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한 지각변동은
먼 옛날 한 곳에서 함께 살던 동물들을
이별하게 만들기도 하고 판게아라 불리던 아주 오래 전의 한 개의 거대한 대륙을 현재의 오 대양 육 대주로 분리를 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단다.


그런데, 맨틀의 대류 운동을 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모호로비치치라는 물리학자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지층의 불연속 면이다'
지각과 맨틀 사이에 있다는 이 층은
지진파를 측정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는데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 모호로비치치의
불연속 면이라고 하고
줄여서 모호면이라고도 부른단다.
근데 모호하니까 또 생각났다.


소중한 동료의 이직 고민 말이다.
나는 당시 동료를 잡아야 할지
보내줘야 할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여러 입장들이 겹쳐 상황이 모호해
조언을 해주기조차 쉽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지각과 맨틀 사이에서 모호면이 쏭 하고
나타난 것처럼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던
팍팍한 회사 업무 사이에서
이런 '모호함' 이 쏙 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난 보통 나를 표현할 때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감정과 이성이 뒤섞인 상황이라면 쉽게
사리를 분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에서는 도무지 이성과 감성만
으로 판단이 안 되는,
이런 모호한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고
그럼 의문이 든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일까? 감성적인
사람일까?

그런데 지각과 맨틀 사이의
'불연속면' 모호면의 존재를 알고 나니
이런 혼란스러움을 비유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보면
특히 지구과학(?) 적으로 보면,,,
나는 매우 뜨거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무너무 뜨거워
사람을 대하는 가장 윗부분
말하자면 지구의 표면에 해당하는
'이성' 이 차갑게 식어 딱딱한 땅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딱딱한 판단이 필요한 일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만
조금만 파서 들어가 보면
내 내면은 뜨거운 핵에 의해 달궈진 용암 같은 맨틀이 끝없이 타오르고 있고
그래서 내면은 매우 감성적이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듯
지각과 맨틀 사이에는 모호면이 존재하고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성의 모호한 경계
바로 모호로비치치의 불연속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구가 끝내 멈추거나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대립할 것만 같던 둘 사이를 연결해주며
내 복잡한 인생을 한결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가 바로 모호면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런 생각을 하니
잠시 가슴이 편해진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러니까 내 피부와 살갗, 생에 곳곳에
이런 모호함들이 가득하다면

긴장되고 삭막해, 기어코 쨍하고 깨져버릴
만큼 단단해진 인생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참기름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유고 슬라비아의 지구 과학자 모호로비치치가 유난히 반가운 오늘이다.

팀장님은 오늘 아침부터 내게 모호한 업무 지시를 했다. 이러라는 건지 저러라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빼곡하면서도 여유로운 기획서를 제출하라는 오더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느껴졌을 불쾌함 대신
그의 인간미가 느껴진다.
참 모호로비치치 같은 인생이다.
모호한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 이런 모호로비치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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