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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티아고 김솔 Dec 13. 2022

13/ 늬들이 문어맛을 알아?

며칠 전 산세바스티안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은의 길을 마치고 북쪽 길을 이어 걷기 위해 북쪽 길의 시작점 산세바스티안으로 날아가야 한다. 비행 일정과 막바지 은의 길 구간을 맞추다 보니 산티아고 도착 전 3~4일 정도는 20Km 안짝으로 걷게 되었다. 한 달 넘게 길에서 구른 바이브가 있으니 20km 이하는 거의 거저 가는 거다.  내 의지라기보단 길 위에 발을 얹어두면 발이 알아서 움직이는 정도랄까 (ㅋㅋ)

선택지를 만들어두고 매일 바뀌는 상황에 따라 계획을 조정하며 걸었다.


짧게 걷다 보니 당일 목적지 알베르게가 문을 여는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게 된다. 주인장에 따라 미리 문을 열어주는 곳도 간혹 있지만 공립 알베르게의 경우 칼같이 체크인 시간을 지키는 편이다. 이날도 오픈 한참 전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는 굳게 닫힌 문 주변을 서성였다. 안에서 청소를 하는 인기척이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공립 알베르게는 예약이 안되고 온 순서대로 입장을 한다. 괜히 자리를 비우다가 입장 순서를 놓치면 안 되니 일단 가방을 문 앞에서 순서대로 세워두고 기다렸다. 때마침 문 앞을 지나가던 호스트와 눈을 딱 마주쳤다.


“지금 안 들어가고 가방만 대문 안쪽에 넣어두면 안 될까요?“


노, 대쪽 같은 노이다.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거절이라서 부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문 좀 열어주세요


하는 수 없이 가방을 메고 동네 구경을 나섰는데, 글쎄 동네 장이 열리는 날이다! 나이스 잘됐다! 엄마는 벌써부터 설레는 눈치다. 엄마의 최애 관광인 시장 구경이 예고도 없이 짠하고 나타났다.  

제법 큰 시장이었다. 짝퉁 나이키를 파는 신발 매대, 팔릴까 싶은 조악한 강아지 인형 가판대도 줄 지어 있고, 생선, 훈제 돼지고기 등 식재료를 파는 상인들도 자리를 펴기 시작한다. 파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니 시장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이른 점심시간이라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노상으로 자리를 핀 곳이 눈에 띄었다. 식당 앞 도로에 여러 테이블이 놓여있고, 식당 옆 빈 터에서 문어를 삶아 판다. 스페인 갈리시아 뽈뽀(문어) 요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여태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시장 문어 함 먹고 가자”


큰 솥에서 삶고 있는 문어 다리를 꺼내어 한 입 크기로 자르고 소금과 매콤한 가루 양념을 뿌린다. 오징어 낙지 문어 식감을 좋아해서 중간은 가겠거니 했는데, 음..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있네? 질기지 않게 쫀쫀한 식감은 물론이고 문어 향이 배어있는 국물에 빵을 찍어먹으니 이거 진짜 별미다. 한 접시를 더 시켰다. 우리 셋은 의외로(?) 먹는 것에 입이 짧은 편인데, 우리가 똑같은 요리로 두 접시 먹는다는 건 찐 맛이란 소리다. 맛도 맛이지만 엄마가 만족해하니 굉장히 뿌듯하다. 엄마 아빠에게 기분 좋은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공립 알베르게에서 자야 하는 불편한 마음이 한 숨에 다 날아간다. (나는 공립 알베르게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에 레스토랑에서 자주 문어 요리를 먹었지만, 이 날 시장에서 먹은 문어를 손에 꼽는다. 원탑, 비교불가다. 시장 한복판 로컬 풍경에 어우러져 노상에서 먹는 즐거움까지 더해지니 어찌 맛이 없고 배길까.

운수 좋은 날, 길에서 우연히 주운 행운이었다. 단돈 20유로에 30년짜리 추억이 복리로 붙을 눈덩이 기쁨을 얻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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