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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티아고 김솔 Dec 29. 2022

까미노 후반전을 준비하는 3가지 방법

까미노 인터미션

직장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2,887km 찐으로 걷는 배낭여행

✅ 프랑스길 Camino Francés (2018)

✅ 피스테라, 무시아 Camino de Fisterra y Muxía (2018)

✅ 은의 길 Vía de la Plata (2022)

✅ 북쪽 길 Camino del Norte (2022)

✅ 영국 길 Camino Inglés (2022)



은의 길을 마치고, 바로 다음날 북쪽길의 시작점 이룬으로 향한다. 오늘 하루는 종일 이동하는 여정이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공항에서 출발해서 -> 마드리드를 경유하고 -> 산세바스티안 공항에 도착해 -> 이룬으로 도보 이동하는 코스다.



북쪽길, 스페인 북부해안을 따라 걷는 길. 초반 며칠은 지형이 가파르고 험하다고 소문이 났지만 자연경관이 그 모든 힘듦을 보상해준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절경이 뛰어나다고 한다. 여러 휴양지가 북쪽길 루트와도 닿아 있어 다른 루트에 비해 여행 물가가 조금 높은 편이다. 그래도 현지인이 찾는 휴양지라면, 말 다했지 뭐.

전반전 은의 길 1000km 39일을 맹렬하게 마친 세 명의 까미노꾼들,  835km 북쪽길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우리들만의 소소한 파이팅을 준비한다.



후반전 비상식량을 쟁여둡니다.

은의 길 마지막날, 산티아고에 일찍 입성하고 엄마아빠는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그 사이 나는 혼자 한국 슈퍼마켓에 들러 폭풍 쇼핑을 했다. 한 끼 식사로 먹을 국과 햇반 그리고 북쪽길에서 먹을 라면 몇 가지를 샀다.


반평 남짓한 가게에 알짜배기 물건만 있어서 고르기가 여간 까다로울 수 없다. 오래간만에 보는 아는 맛’ 천지라 눈이 돌아가지만, 남으면 곧 어깨에 지고 갈 짐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사야 한다. 감자면과 진라면을 장바구니에 넣고 빼길 반복했다. 그렇게 욕심을 줄이고 줄여서 샀는데도 거진 60유로어치다. 계산기 합계를 본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빠르게 짱구를 굴려본다. 라면은 거의 길 위에서 먹는 보약이나 진배없으니 영양제값이라 생각한다. 약값이 60유로이면 저렴한 편. 기적의 합리화를 완성시킨다.




여행 중에도 미모 못 잃어, 외모 점검

이룬에 도착 후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 우연히 미용실 앞을 지나갔다. 대충 어른은 9유로, 청소년은 8유로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

“머리를 좀 자르고 갈까?”

아빠는 싼 커트가격이 맘에 들었는지 머리를 잘라볼까 한다. 아빠 머리가 덥수룩하다. 한국에서 칼같이 지키는 커트 주기가 벌써 2번은 족히 지났으니 답답할 때도 됐다.


“언제 스페인에서 또 머리를 잘라보겠어”

동양인 모질을 만져봤을까 싶어 잘 자를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지만, 빅재미가 나올 것 같아 아빠 헤어를 과감히 내어 놓았다ㅋㅋㅋ 머리 짧은 아빠 사진도 보여주고, ‘스페인어 미용실 표현’을 급히 검색해서 최대한 원하는 스타일을 말했다. 물론 못 알아들은 눈치다.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잘해주겠지.  


오~ 괜찮은데?

오~오~ 투블록으로 하려나?

오~오~오~ 이게 스페인 스타일이나?

여기에서 멈춰 세웠어야 했다.


어? 이제 그만하려나?

어? 어? 말해야 하나?

어? 어? 어? 곧 마무리하겠지?


언제 말할까 재고 있는 사이, 아빠는 군인이 되어 버렸다. 반백년만에 하는 군인 머리. 남자는 머리빨인데.. 미모력이 소폭 하락이다. 이발사가 맘에 드냐고 묻는다. 자동반사로 엄지 척이 올라간다. 즐거웠다, 유쾌했으니 받아라 엄지 척

비포 앤 애프터



으쌰으쌰 사기 진작, 회식 쏩니다

이룬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구글에서 대충 찾았는데 맛집인가? 바깥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메뉴판을 보니 셰프 이름과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있는 거 보니 유명한 곳인가 보다. 그건 그렇고 스페인어 까막눈은 메뉴소개를 읽을 줄 몰라 그냥 리뷰 사진을 보고 주문을 넣었다.


오잉 저쪽에서 대왕 꼬치를 들고 온다. 2자 정도는 될 법한 쇠꼬치에 맛있게 구워진 굵직한 문어와 채소가 꽂혀있다. 비주얼에서 일단 웃음부터 터진다. 시선강탈이다. 옆 테이블 현지 손님까지 힐끔 쳐다본다. 까막눈 무식자가 몰라서 주문한 게 이렇게 까지 먹음직스러울 일이냐고. 밥 한 끼에 엔도르핀이 용솟음친다. 지쳐있던 은의 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음식 하나에 사기가 올라가는 게, 파이팅 참 쉽다. 은의 길 내내 힘들어서 사진도 잘 찍지 않던 엄마가 스마트폰을 꼬치에 계속 들이댄다.


북쪽길, 시작이 좋다

씐나


산티아고에서 이룬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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