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길4 여행의 반환점
직장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2,887km 찐으로 걷는 배낭여행
✅ 프랑스길 Camino Francés (2018)
✅ 피스테라, 무시아 Camino de Fisterra y Muxía (2018)
✅ 은의 길 Vía de la Plata (2022)
✅ 북쪽 길 Camino del Norte (2022)
✅ 영국 길 Camino Inglés (2022)
엄마 아빠 모두 체중이 많이 빠졌다. 바지가 너무 커져 허리단을 꿰매야 했고, 새로 산 반팔 티셔츠의 사이즈도 한 치수 이상씩 작게 고를 만큼 살이 쪽 빠져있었다. 빠진 체중만큼 몸의 기력도 점점 주는지 아빠의 코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다. 북쪽길에 온 지 10일, 까미노를 시작한 지 50일 여일이 지났다. 은의 길을 마치고 북쪽길로 이동한 날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길 위에 올랐으니 매일 6~8시간씩 50일을 내리 걸은 셈이다.
엄마 아빠는 참 열심히 걸었다. 여행이니까 즐기면서 걸으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앞으로 갈까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나라면 진작에 하루 이틀 쉬었을 테고, 놀다 갔을 테고, 한 눈 팔았을 텐데, 둘은 딴짓 없이 매일매일 문 밖을 나섰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로마 유적지가 있고, 유명한 건축물이 있고, 별 4개짜리 레스토랑이 있지만 모두 스치듯 안녕이다.
그들이 일궈온 인생처럼 까미노 위에서도 성실했다. 반복되는 하루를 정직하게 보냈다. 당시에는 제대로 즐길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미없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솔직히 정말 노잼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절반 이상을 보낸 시점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잠자코 그들을 따라간 걸 참말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여행은 여행대로 재미없고, 까미노는 까미노대로 어설프게 해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됐을 게 뻔하다. 입에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도 따라는 갔으니 50일 중간 결산이 이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순간의 성실함을 차곡히 쌓는 경험이다.
이처럼 올곧은 그들의 여행 방식은 그들의 인생 방식이었고 삶을 대하는 태도이지 않았을까 어리짐작 해본다. 매일이 노잼인 하루를 유잼 인생으로 만드는 과정을 축약한 여행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지쳐있긴 하다. 아빠의 어깨는 나보다 더 좁아졌고, 30년을 동거동락한 엄마의 뱃살은 홀쭉해졌다. 지난 50일의 고단함이다. (와중에 나의 살은 왜 안 빠지는가는 진짜 미스터리)
아빠의 감기 몸살이 심해진다. 이젠 정말 쉬어야 할 때. ‘쉼’이 어색한 그들에게 내 방식을 말해줄 차례다. 휴식의 맛이다. laredo에서 이틀 머물기로 했다. 주방을 쓸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예약했다. 침대에서 이틀 동안 녹아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