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봉황단총’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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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장을 열어 문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어떤 날씨인지, 나의 상태가 어떤지, 지금 생각나는 차가 무엇인지를 따라서 차를 고르는데, 이날은 마시고 싶은 차가 딱하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찻장에서 나는 차향을 맡으며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차를 고르지 못해 몇 번이나 찻장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날이었다. 차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도 마시고 싶은 차가 없어 차를 더 사야 이런 고민 없이 차를 고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마치 옷으로 가득 찬 옷장 앞에서 입을 옷이 없어서 옷을 사야겠다고 하는 모습이랄까. 이런 날은 고민의 고민을 거치다 보니 아무 차나 마시고 싶지도 않고 딱 떠오르는 차가 없을 때, 그럴 땐 난 언제나 ‘봉황단총’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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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봉황단총은 조금 특별하다. 어머니께서 차 선생님이셔서 집엔 언제나 은은한 차향으로 가득 찼다. 어릴 땐 차는 일상이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어느 날처럼 엄마를 따라 찻집을 갔었다. 차의 이름을 기억하며 차를 마시지 않았는데, 이날은 차를 마셨는데 기분 좋은 달콤한 향과 입안 가득 퍼지는 과일같이 달면서 기분 좋은 단맛에 이 차 이름을 물어봤었다. 그때 마셨던 차가 '봉황단총'이었다.
그때 봉황단총을 마시곤 차가 궁금해졌다. 블렌딩을 하지 않고도 클래식 차에서 이런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진한 복숭아같이 달달한 향과 입안에 남는 물복숭아를 먹고 난 듯한 부드러운 단맛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그 첫 기억에 지금도 이 차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에 마시는 봉황단총은 예전의 차와 달리 조금 가벼워지고 향 부분에 더 집중되었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차를 마실 때도 예전처럼 전통제다로 만든 농향의 밀란의 맛과 향이 나지 않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다기를 달리해서 자사호에 우려 마셔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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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단총' 중국 광동성의 청차(우롱차)로 향이 좋고 맛도 풍부한 차이다. 봉황단총은 한그루 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차란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봉황수선 중에서 가장 뛰어난 차를 봉황단총이라고도 한다. 이 차는 향의 특징을 따서 황지, 밀란, 적엽, 통천, 압시 등 수십 종류가 있다.
모든 차들이 우리는 방법이 중요하지만, 특히 '봉황단총'을 우리는 방법은 더 중요하다. 다양한 차의 맛과 향을 잘 살리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찻잎에 물이 닿게 차를 우리는 방법 대신 섬세한 얇은 물줄기를 사용하여 찻잎에 물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게 우려 주어야 한다. ‘봉황단총’은 찻잎이 예민하다고 표현을 해야 할까, 물질감이 풍부지만 쓰고 떫은맛을 가지고 있어서 이 맛이 우러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그럼 이 차가 가진 차의 맛과 향을 더 향긋하게 잘 감상할 수 있다.
주로 향이 좋은 차를 우릴 때 자기로 된 개완을 사용한다. 개완을 사용하면 차를 우리 때 차의 맞게 물줄기를 컨트롤하기가 좋고, 향이 좋은 차들은 향을 더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제나 개완을 사용하여 차를 우려 마셨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자사호를 공부하게 되면서 봉황단총과 잘 맞는 자사호를 찾은 후로는 자사호에 마시는 걸 좋아한다. 모든 자사호가 봉황단총과 잘 맞지 않는다. 차호는 개완과 달리 물줄기 컨트롤이 어렵고, 자사호와 맞지 않으면 더 쓰거나 떫어지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니료에 어떤 불의 자사호인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현대호가 아닌 고호 중에서 고르다 보니 나 또한 찾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몇 년 동안 쓰고 떫은 느낌을 최소화로 해주면서 맛과 향을 잘 내는 자사호를 찾았다. 그 시간을 들여서 찾은 자사호는 차를 우려 마시면 찻물 안에 차의 향이 갇히면서 맛을 더 진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차를 즐기는 또 다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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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차, 봉황단총은 나의 좋았던 첫 기억으로 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젠 찻잔이나 차를 우리는 기물을 사면 제일 먼저 봉황단총을 우려 본다. 그리고 어떻게 기물을 써야 할지 분별한다. 그래서 항상 찻장에 봉황단총이 떨어지지 않게 둔다.
나의 일상을 차향으로 가득 채우고 싶을 때 봉황단총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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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완: 오늘날은 차를 우리는 중국의 다기
*단주채엽: 한 나무에서 난 찻잎으로만 채엽한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