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하여
무언가 나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것만 주변에 놔두려고 한다. ‘한정판’이라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 저절로 물욕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미니멀라이프는 아니라는게 함정. 서울에서 묵은 4년 간의 짐을 30시간 내에 모두 정리해야할 때의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버리던지 싸서 보내던지 가져가던지. 진짜 못 쓰는 것들만 버리고 나머지는 일단 쌌는데 가구를 제외하고도 이사박스 6개와 이민가방 2개로도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다 꺼내서 재정리를 해서 겨우겨우 맞춰 넣었다. 보통 악몽으로 물건들이 꾸역꾸역 쌓여있다 그게 내 위로 무너져 아아악!하며 깨어나는데 그땐 실화였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생활을 나름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벗어나 나의 날개를 펼치려 실행에 옮기게 된 계기가 내 안의 깊은 나무의 뿌리가 쏙 뽑혀버렸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말, 내가 지금 당장 맨 몸으로 브라질 같은 곳에 가서 하염없이 지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신문에 대서특필 되지는 않을 거기 때문. 브라질이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뭐 결혼을 하든 불법체류든 길에서 자든 강도를 당하든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아무튼 꼭 여기여야만 하고 더욱이나 한국의 ‘스탠다드’ 인생이어야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성실함’이나 ‘착실함’과 잘 맞진 않지만.
그 때부터 깊은 방황이 시작되었다. 흔히들 겪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는 뭘하고 싶어하는 걸까, 블라블라’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다들 체념하고 타협하며 주변에 맞추는데 난 그 맞추는 걸 못하겠더라. 이 드러운 씅질머리. 어차피 날 제어하거나 맞출 틀이 없을테니 내가 만들어서 나를 정의하면 되지. 사람들은 나의 정의에 따라 나를 정의할테니.
그 당시엔 이게 방황인지 반항인지 개척인지 뭔지 구분도 안갔다. 그저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그 길은 전혀 나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 뿐이었다. 거창하게 이 현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막연하게 해외를 동경해서 벗어나기만 하면 다 잘될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그냥 인생길 커스터마이징한다는 게 좀 더 나 포함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러다 내 생일날 영화 ‘와일드’가 개봉해서 충무로의 대한극장에서 고대하다가 봤다. 히말라야의 어딘가를 걷긴 했지만 그 연장선으로보단 예고편보고 되게 빠져들어서 바로 좋아했는데 왜 좋아하는지 모르고 좋아했다. 챙겨보고 파일을 구해서 보고 또 보고 한국을 벗어나서도 주기적으로 봤다. 모든 대사를 외우고 영화 자체를 다 외워도 또 봤다 고향집 찾아가듯이. 영화리뷰를 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영화를 봤는데, 이제 영화리뷰를 찾아보니 ‘길을 잃어 방황하는 이들에게’라며 영화 추천의 테마를 잡더라. 그래서 내가 이토록 지독하게 사랑했나보다. 없어선 안될 만큼. 4년만에 정의할 수 있게 되었네.
철저하게 무소속으로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그와중에 완벽주의끼까지 있으면 헬게이트 오픈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며 움직여야하는데 그 모든 경우의 수가 보통의 두 세배 정도랄까.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얼마나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만약의 경우에 생길 상황에 대비할 준비를 한다. 그 만약의 상황이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걸 대략적으로 짐작을 하고 행동을 하거나 일을 벌린다. 플랜 비, 플랜 씨는 당연히 준비해놓고. 그런데 이 예상을 아예 송두리째 바꿔놓는 결과가 매번 나타나고 그럼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쉽게 말해서, 지금 당장 외계인이 인형뽑기하듯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손에도 아무것도 없는 나를 뽁 집어 올려 아프리카든 호주든 어디든 떨어뜨려놓던간에 살아남아서 집까지 찾아오거나 거기에 적응해서 동네일짱이 되거나 할 준비를 매순간 매초하며 산다. 내 머릿속에 있는게 전부이고 내 직관이 모든 것이다. 집, 차, 직장 등의 템빨이 아니라. 눈치, 사회생활, 먹고 살 수는 있는 기술들, 지식, 일머리, 언어, 커뮤니케이션, ‘나름의’ 커리어, 깡, 안목, 애티튜드, 돈 등 이 모든 것들의 기준점이다. 앞으로 뭘 할 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사업인데 사업가에겐 당연히 필요한 것들 아니겠는가. 좀 더 격렬하게 연습하고 갖추고 있을 뿐.
이 다음의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외로움. 근데 이것도 112919 편에서 설명했듯 허무하게 해소되었다.
원래부터가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들떠서 차타고 버스타고 표끊고 줄기다리고 놀이기구에 앉았는데 막상 출발할 때 카운트다운 들으면 약간은 떨리는 정도? 근데 뭐 그땐 이미 내 손을 떠났는 걸. 두려움이 있는게 이상하지, 지키고 싶은 게 내 내면밖에 없는 걸. 아 나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건 좀 걱정되긴 하네. 뭐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이제껏 하고 싶은 건 웬만큼은 다 했고 이뤘다. 크게 돈이 필요한 일들도 아니었고 필요했다면 잠을 줄여가며 벌고 모아서 해결했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가 행복하고 다 괜찮은 것들이었으니 흔히들 슬쩍 보고 얘기들으면 나보고 인생 쉽게 산다고들 한다. 내가 뭘 어떻게 준비해서 이뤄내는지 모르는채 쉽게 말하며 사는 건 본인들이면서. 코웃음도 안나온다.
중간에 길을 바꾸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하는 경우에만 바꿨다. 하지만 방향은 바뀐 적이 없었다. 시대가 그에 맞는 단어 정의를 내놓는 게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서 많이 추상적인 나의 길이 매번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해를 바라지 않으니 본인만의 기준에서 세상 포함 타인에게 당위를 부여하지 말길.
근데 딱 하나 내가 포기한 부분이 있다. 못해서 포기한 부분. 예술 쪽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겠다고 열심히 준비하는데 나를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 방법을 모르겠고 나를 표현하는 걸 악기나 다른 어떤 예술적인 방법으로 나타낸다는 게 어떤건지 모르겠고 도저히 못하겠어서 끝내는 포기했다. 남들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건 잘한다. 빠르게 신속 정확하게 하는 건 잘한다. 천천히 연습해나가면 되니까. 근데 나를 표현을 못한다. 이런 부분에선 한국인인건가. 내가 이 예술을 통해서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예술이란게 뭔지 내 생각을 전달은 해야하는건지 왜 전달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으니.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까지도.
글을 쓰는 게 지금으로썬 최선의 방법이다. 글도 문학이나 작품 등 사서 소장하고 싶을 만큼의 글은 전혀 만들지 못하고 그냥 일기를 쓰는 정도에 그친다. 내가 외국인이었다면 외국인치고 한국말 괜찮게한다는 수준.
그렇게 그 길을 그만둔 후 얼마 뒤 4년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이 생각으로 말미암은 표현의 고름은 어느순간 탁 트였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는 이유는 공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 정말이지 말로 뒷통수를 너무 쎄게 맞아 앞이 아찔해지는 경험을 했다. 더 나아가, 그 당시의 세상이 어떻게 생겼고 돌아가는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예술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 세상이 마음에 안 들어 작가만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를 만들기도 하고 인상깊은 사건을 기록하는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남기기도 한다. 글로 주절주절 하는 게 별로라면 그림이나 사진으로 언어의 장벽 없이 감정을 건드려 영향을 주기도 하며 디자인을 좀더 가미하면 타인의 시선을 끌어 들이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음악은 소리의 진동을 통해서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고 하는 등등,
이제 이렇게 연습을 해나가면 되겠지. 이걸 알고와 모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연습엔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질이 중요한 것이니. 한동안은 어색하겠지. 다른 사람의 얘기가 궁금하지도 않고, 온전히 이해한 건지 걱정도 해야하고, 내 생각이 온전히 전달될 지 어떻게 전달해야할 지 등등 신경을 써야하니. 게다가 이렇게 시간을 쓴 이상, 나의 길도 구체화된 이상, 작업물이나 뜻을 남겨야하니까, 영향력을 끼치는 등의 아웃풋은 내야지. 그럼 또 복잡해진다.
그럼 또 다시 4년간 방황을 시작했던 것처럼 ‘내가 사람들을 따라가냐,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겠지’ 마인드로 하는 거지.
“우리가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실로 다양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세계를 더욱 분면하게 의식하게 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바로 괴테의 작품이 나아게 그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구체적 대상과 인간의 특성을 더욱더 잘 관찰하고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통일 성의 개념, 즉 한 개인이 자기 자신과 가장 내밀한 조화를 이룬다는 통일성의 개념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이든 예술 현상이든 간에 그 어마어마한 다양성이라는 수수께끼를 더욱더 잘 풀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