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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Dec 18. 2019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멈춰있는 돌의 시점 with 요한 피터 에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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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도 길었다. 무너진 일상들의 연속이. 뭐가 잘못되어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만 있는지 알기 위해  열심히 흘려보냈다.  열심히 클럽을 다니며 환상 속에 빠져 지내거나 술을 마시며 기억을 지워보내지도 않았다. 꼬박꼬박 학교를 가고 약속이나 해야할 일들을 해냈다. 너무 열심히도 아니고 적당히 눈치껏 빠져가면서 티안나게 중간정도로 했다. 이전에 열정에 불타올라 열심히 하는지도 몰랐을만큼 열심히 살던  때는 저번 생의 이야기인  같다.



혼자 산지 오래되어서 그런 걸까. 가끔 부모님과 같이 살던 청소년기를 떠올려본다. 그때도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나름 정해진 패턴이 있다. 밥을 꼬박 꼬박 먹고 시간을 흘려보내더라도 과일을 먹으며 티비를 보면서 흘려 보낸다. 누군가 매일 출근을 하고 그러면 집에 아무도 없다는 자유감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소리를 묻기 위해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기 소리에 막춤을 추고  적당히 소소한 재미를 즐기던 날들.



부모님이나 같은 길을 가는 사람  채찍질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를 놓아버린 걸까.   얘기를 간단하게 털어놓아봤다. 너무 많이 주어진 자유에 이제는 만족도 못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그러니 귀에 딱지 앉도록 들은 말을 들었다. 나도 알면서 물은 거지만. 뻔한 변명이라고, 지금 편하고 나중에 고생할 거냐, 지금  힘들고 나중에 편할 거냐. 알죠, 저는 아는데  몸은 모르더라구요.









언젠가는 읽겠다며 매번 들고다니는 책이 있다. ‘괴테와의 대화괴테에 대해서 아는  독일인이라는  뿐이지만 두꺼움이 마음에 들고 민음사  시리즈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거라 펼쳐보진 않아도 매번 들고 다니긴 한다. 자주 보이는 곳에 놔두면 언젠가 읽는 다는 말에 머리맡 책꽂이에 놔두긴 했지만 매번 베개에 가려져서 존재마저도 희미해진지 오래다. 청소하느라 보면 반가운 정도.



언제나 그렇듯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책꽂이에 있는  보면 읽기 싫어져서  책을 꺼냈다. 언젠가 괴테의 위대함에 대해 깊이 공부하겠다며 사놓았는데 이제야 꺼내보네. 공부하려고 꺼낸  아니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기 싫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읽었다. 집에 있는 책도 읽기 싫은데 빌린 책은 오죽하겠어라며 고스란히 반납하는 데에 죄책감이 들지 않기 위해.



괴테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글쓴이, 요한 피터 에터만, 행보에  관심이 가서 쑥쑥 읽혔다. 고전은 이렇게 읽는 맛이겠지, 억지로 읽거나 나의 상황과 맞지 않을  읽으면 절대  읽히고 나의 상황과 맞는  읽을  동화책보다 재밌고 쉽게 읽히는 . 고전. 근데 웃긴   고전도 고전이지만   ‘들어가는 부분에 들어가자마자 빠져버린 것인가.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이런 위대한 작품들에서 내가 이해하게 되는 것은 다만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것뿐이며, 특수한 것에 대한이해는 언어적인 면이나 역사적인 면을 막론하고 학교나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적 지식이나 일반교양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밖에도 여러 측면에서 주목하게  바로는 제아무리 애를 써봤자 헛수고일 뿐이며, 고전적 교양 없이는  어떤 시인도 자신의 말을 능숙하고 힘차게 운용할  없음은 물론이고 내용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없다는 것이었다  (민음사, 31)

거의 스물다섯이  나이에 그것도 공직에 몸담고 있는 신분으로, 대부분이 소년티를 벗지 못한 젊은이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말할 나위도 없이 어색한 일이었다. (민음사, 32)

이렇게 허둥지둥 애를 쓰며  달을 보내자 나의 체력은 그러한 긴장된 생활을 감당해  수가 없었다.  주인을 동시에 섬길  없다는 옜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공기와 운동의 부족,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과 휴식의 결핍으로 나는 차츰 병약해졌다. 몸과 마음이 무디어지고, 마침내 학교나 직장   하나를 그만두어야  절박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으므로 학교를 단념하는  밖에 없었다. 결국 1817 이른  나는 다시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나에게 주어진 운명안기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 잠시나마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아보았다는 사실이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민음사, 33)

나는  도시의 상류층 중에서 많은 후원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소위 돈이 되는 학문을 하겠다고 결심한다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본성에 맞지 않을 뿐더러, 또한 인간은 내면에서 솟구쳐오르는 충동이 지향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고 굳게 믿었으므로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내가 바라는 도움을 거절했고, 고작해야 식사 정도만 제공했다. (민음사, 34)

그러므로 이제 나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계획을 관철하고,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문학 작품을 쓰는  정신을 집중하는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민음사, 35)





나의 행보와도 비슷했다. 일을 하고 그만두고 꿈을 찾고, 다시 하루에 네시간만 자며 투잡을 하고 그만두고 꿈을 찾고, 다시 일만 하다가 이제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꿈을 찾아 나서는. 전혀 매끄럽지 않은 행보. 삽질을 하고 아스팔트를 붓고 지뢰도 가끔 터지고 절벽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그런.  사람도  닦아놓은 길을 덜컹임 없이 흔들림 없는 편안한 승차감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겠지. 시작이 똥차인지 벤츠인지 그게 어떻게 다른  중요한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간에  길에  혼자라는 생각이  힘들었겠지.  사람은  적절한 때에 괴테를 만났고 나는  세상의 괴테 같은 사람을  만난 대신  사람을 만났구나.



외로움이 너무나 익숙해 혼자 여행, 혼밥 스킬 만렙 등은 진즉에 스무살  찍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만의 길을 개척할  솔로인  말고 외롭다는 부분의 어려움은 전혀 없을 거라 자만했다. 자만인  알았지만 힘들 때에도 즐겁게 이겨낼 거라고 믿었다 이제껏 기꺼이 그래왔으니까. 근데  마음  깊은 곳에서 오는 만성으로 넘어가려는  방황은 어찌해야할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이런 느낌이구나.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영화  캐릭터들이 하염없이 가만히 있는  알겠다.



이렇게 맥없이 반년 이란 시간이 풀리다니. 내가 이상한 거겠지? 그저  사람이 괴테와의 대화를 소개하기 이전에 자기가 누구길래 소개하는  말하기 위해 적은  자에  년이 날아갔다. 어떤 특별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어느 면접자리에서 국적불문의 인사담당자들이 ‘ 그럴만하구먼 흠흠또는 ‘Oh,, okay,, You deserve the break. My company and I truly understand that.’ 또는 ‘블라블라(대충 몇개국어 버전)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  머리맡에서 같이 잠들던  책들  하나에 의해서. 무슨 광명을 바랬냐만은 누군가 나를 이끌어 주거나 대단한 충격을 주는 사건이 일어나서 변하지 않고는  배기는 그런  정도는 있어야 멈춰있던  년이란 시간에 의미가 생기는  아닐까?



새로운 길을 시작해서 새로운 자극에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길을 가다가 벽에 부딪히고 최종적인 목표를 약간 체험해봤을  실망했다. 그래서  현타에   시간들이었고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년이 흘렀다. 아예 접점이 없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의 관심 분야이자 목표에 흥미를 보이며 뭐냐고 물어봤을  설명해주려고 해도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뭘하고 있는지, 뭘하고 있었는지  잃어버리고 굴러가던  일상의 돌을 어딘가 주차시켜 놓은  멈춰있기 때문에. 이젠 어느덧 나이가  든건지 철이  건지 나만 이런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다는 것도 알지만 전혀 위로가 안되는  오히려  씁쓸할 .


좋게 생각하면  고전을 읽을만한 레벨이 되기까지 나를 숙성시키며 기다렸다는 건데 충분치 못하다 전혀.  거라고   있을까. 살이   확실한데 분위기나 인상은 리프레쉬가 전혀 되지 않았는 . 그냥 버린 시간들 일까.  두꺼움이 마음에  것과 같이  사람의 살아온 얘기  괴테와 만나서의 이야기가  진행된 후에는 질려버려서 이내 책을 덮고 다시 제자리에 잠들어있다.








유유자적의 반복인 고향을 벗어나 치열한 서울에서 생활한지 2-3년차쯔음 약간 지치던 시점이 있었다. 이정도는 아니지만 흔히 한번  겪는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자고 ~~’하는 시점.   고향친구와 했던 얘기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것이고  말에 같이 힘을 냈었다. 나날이 발전해나가고 배우는 우리의 모습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친구와 연락은 하며 아직도 서로 의지하는 중이지만  말을 하며 다시 열심히 구르던 때와 다른 것은  친구와 나는 다른 방향을 향해 구르고 있다. 그리고 나의 길엔 아무도 없이  혼자 두리번 거릴 틈도 없이 위인지 아래인지 절벽인지 천국인지 모르는 곳을 향해 굴렀다. 그리고 멈췄다. 그동안 이끼는 잔뜩 끼었지만   바퀴 구르면 금방 떨어지는 거니까. 이제  길의 동지로  요한 피터 에커만을 만났으니 다시 굴러야지. 여전히 어디로 구르는  모르지만 나만 이렇게 울퉁불퉁한 곳에서 가끔 튕겨가며 구르는  아니라는  알았으니,   없이 구르는  멈췄던 것처럼   없이 멈춰있던  굴려야지.



 번째고 써먹었듯 매몰비용은 생각안하련다.  고통만 받지. (데구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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