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던 작던 진지하던 가볍던 일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정치질이 형성된다. 연인 사이에서도 그런 정치질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끈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나간 인연이라면 더더욱. 그런 상황에선 언제나 그렇듯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냥 유유히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역할이고 그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는다. 난 내 편이니까. 누구의 편도 아닌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제 3자의 입장에서 여러 말을 듣고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한다.
비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할 일은 똑바로 하고 그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안하는 거니까. 근데 이 경계선을 지키려고 하면은 한번 씩 선을 제대로 그어야 하는데 그 때 상대가 실망을 한다. 내 사람을 남기는 과정이긴 하지만 그 눈빛을 잊기란 쉽지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것에 대한 차이도 있고 바라는 것과 개인의 길이 다 다르니 한 번 씩은 겪어야하는 일이다. 근데 여전히 힘들다. 좀처럼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화를 내면 내가 더 힘들어서 화를 안 냈는데 이번 달에만 두 번이나 화를 냈다. 화가 나도 자면 괜찮아지는 데 그렇게 폭발한 건 처음이다. 두 번씩이나, 신기록이네. 선을 넘는다 자꾸. 근데 그러면서 내 입김에 영향력이 생겼다. 그래서 더이상 경계선을 아슬하게 타는 것은 힘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그 느낌이 달라졌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내가 다 받는다. 살얼음판을 혼자 걸어가는 중이다. 누군가 되게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다. 조언자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냥 아무말 없이 한동안 앉아줬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변한 모습인 걸 안다. 너무 먼 길을 와버렸고 너무 변해서 이전에 만나던, 아직 마음과 후회가 남은 사람과 재회할 수 있다 굳게 믿었던게 와장창 무너졌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이전의 내가 아닌데 좋아할 수 있을까. 세상 무뎠던 내가 너무 날카롭고 언제든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알았을 때 되게 씁쓸했다. 자괴감은 안 들었지만 되게 씁쓸했다. 어릴 때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게 무서워서 울었던 적이 있다. 근데 이제는 이전의 내 모습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많이 변했네. 변하지 않은 것은 씁쓸한 마음뿐.
생각의 결이 되게 다른 A를 만나서 오랫동안 얘기했다. 예술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 안의 꼬인 것이 어떻게 해소 되고 있는지 등등. 여행 많이 다니고 글쓰고 더 큰 꿈을 바라보며 나아가면서 내 안의 꼬임이 잘 해소되고 있다고 한다. 근데 지금은 그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게 멈춰져버렸네. 길을 잃고 주저 앉아서 그저 풀리기만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서 일상이 이렇게 무너진 것 같다.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려나, 하나하나씩 맞춰 나가야지 더 늦기 전에. 나의 선택에 신이 나서 항상 함박웃음을 짓던 나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그러다 요즘 부쩍 망가지고 있던 나의 선을 스스로 철저하게 지켜주는 B를 만났다. 근데 내가 우왕좌왕한다.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몰라서. 나와 너무 닮아서. 앞으로 더 천천히 만나봐야지. 한치 앞을 모르겠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결정이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택에 있어서 그만큼 신중해지겠지. 근데 그 와중에 체력은 딸리는 구나.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할까. 아니 어쩌면 그게 제일 먼저 바뀌었던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네 그러고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