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Feb 20. 2022

미국 생활 1년, 돌아온 지 1년 3개월

미국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돌아와서 보낸 시간이 더 길어진 지금,

미국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어떻게 남았을까.

미국에서는 한국을 그리워했고, 지금 나는 미국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미국에서 남편과 내가 도움 청할 곳 없이 아이를 24시간 돌보면서 1분 만이라도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도움이 간절했다. 그뿐이랴. COVID-19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인지라 집에만 갇혀 있는 삶에 좌절하기도 했다. 미국에 오면 여행도 다니고 신나게 놀 줄 알았건만 ‘Stay at home’이라니. 집과 베란다, 베란다와 집, 그리고 아파트 둘레길을 도는 정도의 삶이 반복되었다. 한국이 그리웠었다. 엄마의 김치찌개가 너무나 먹고 싶었고, 한국어로 편하게 병원에 가고 음식을 주문하고 싶었다. 대부분 날들이 평화롭고 행복했지만, 한국 소식에 귀를 쫑긋하며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 3개월. 그사이 나는 둘째를 낳았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미국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친정엄마에게 달려가 2주씩 친정집에서 뒹굴며 쉬다 온다. 아주 좋다. 안정적이고 내 삶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삶을 떠올릴 때면 난 눈물이 글썽인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세 가족이 춤을 추던 날을.

아파트 단지 내 호수를 돌면서 오리를 구경하던 날들을.

해도 뜨기 전 눈을 뜬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옆 트레일 숲길을 달리던 날들을,

아무도 없는 동네 공원의 너른 잔디밭에서 걸음마 연습하던 아이를 바라보던 날들을.

Stay at home을 버티게 해준 소중한 베란다

아마 그곳이 미국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편이 회사에 가지 않고, 나도 학교에 다니지만, 회사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아이와 24시간을 보내면서 생긴 가족 간의 전우애이자 유대감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7살 회사에 입사한 이후 처음으로 돈을 벌지 않고 오로지 열심히 소비하는 시간에서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인구밀도에서 벗어나 숨 쉬는 느낌이 드는 시골의 전경 때문일 것이다. 


그 진한 기분의 여운은 남편이 야근에 시달리고, 베란다 없는 아파트에 사는 지금에까지 미치고 있다.


미국에 다녀온 이후 나와 남편은 여전히 함께 육아한다. 우리는 이미 보고 말았다. (다행히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말이다) 8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 없이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4시에 퇴근해 아이와 노는 부모들을. 이 지구 어딘가에는 일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한국의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보며 부러워하는 그들에게 “한국은 육아휴직을 하지 않으면 내 아이를 볼 시간이 없어”라고 말했던 나의 말이 거짓이기를 바랬지만, 한국에서의 남편의 삶은 정말 그대로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우리의 선택은 그저 내가 열심히 전업 엄마로 조금 더 길게 육아휴직을 쓰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지원금으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이 6시면 퇴근을 해서 9시까지 아이들을 같이 보고 다시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그런 삶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처럼 유급 육아휴직이 잘 보장되고, 보육 기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확실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처럼 아이 키우기 쉬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이다. 정말이다. 우리나라의 육아 휴직제도와 보육 기관의 질은 최고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너무 좋은 제도 덕분에 회사와 육아의 양립이 가능하지 못한 지금의 삶에 반기를 드는 순간 욕심 많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육아 휴직하고 왔으니까 이제 열심히 일해야지.” 그저 회사에 다니면서 아이들이 잠들기 전 3시간만 함께 하고 싶은 것 뿐인데 그게 정말 욕심인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또 우리는 나무를 키우고, 바비큐 그릴을 샀고, 좀 더 산으로 강으로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요즘 흔히 말하는 ‘사적인 외부공간’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느끼게 되었다. 손바닥만 한 베란다였지만 완전히 외부로 뚫린 공간이 미국에서의 답답한 집콕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었고, 아파트 단지 옆 오솔길에서 산책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웠다. 차로 내달릴 수 있는 거리에 포진한 무료 주립공원에서도 행복했다. 그 기억을 아이들에게 계속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새가 지저귀고 초록 풀이 반짝이는 삶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랬다. 재정적 여건으로 멋들어진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 가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나면 최대한 바깥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걸음마 연습을 하던 호숫가 주립공원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우리는 언제 미국에 다녀왔냐는 듯이 아주 잘 산다.

가끔 사무치게 미국이 그립지만, 그곳이 미국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이기에 그립다는 것도 안다.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아서 좋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이곳에서 좀 더 즐겁게 사는 것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서 만난 적군 같은 아군, 나탈리아 교수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