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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한Meehan May 27. 2020

밤의 피크닉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인


[밤의 피크닉], 책의 모든 메시지를 아우르는 듯한 대사가 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밤의 피크닉]의 배경이 되는 학교, 북고에서는 매년 야간 보행제를 실시한다. 전교생이 밤을 새워 "그저 걷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이제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그들은 매년 왜 이런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지 불평을 했지만,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두 번 다시는 하지 못할 이 행위로 인해 졸업을 실감하고 각자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야간 보행제에 참여한다.

우리 학교에도 비슷한 연중행사들이 몇 가지 있었다. 교문을 걸어 잠그고 전교생이 체육관 또는 학생 식당에서 밤을 새웠다. 잠을 자면 안 되었던 건 아니지만 모처럼 주어진 자유시간을 수면으로 보내는 이는 드물었다. 첫 한두 시간은 학교에서 준비한 단체 게임을 했다. 그 후에는 응급상황이 아니고선 학교 밖을 나갈 수 없는 공식적 자유시간. 대부분 배구나 농구 등 운동을 했고, 일부는 컴퓨터 게임, 나머지는 수다를 떨었다. 모여서 카드놀이나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이나, 괜히 무서운 얘기를 시작하는 무리도 있었다. 그 락다운(lock down) 행사에서는 매년 피자를 수십 판 준비해서 놀다가 출출해지면 언제든 식당에 가서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활동적이지 않았던 나는 대화를 하는 쪽에 속해있다가, 밤새 배구를 하는 친구들을 구경하고는 했다. 그 밤의 유일한 낙은 피자를 먹는 것이었다. 곧 심심해졌다. 친구가 배구를 하다가 쉴 때면 내게 인사하러 왔는데 그때마다 지루하지 않은 척하느라 애를 먹었고, 일부러 선생님들을 도와 일 할 거리를 찾아다녔다. 매년 생각했다, 내년에는 오지 말아야지.

그런데 내년이 되면 나는 모르는 새 또 신청하고야 말았다. 매년 갔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행사라면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원동력은 "함께"라는 것과 "한때"라는 것에 있었다. 우리는 함께 무료했고, 함께 힘들었고, 함께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건 그 한때뿐이었다. 그 사실을 해가 지나면서 점점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밤의 피크닉> 속 야간 보행제는 낮부터 밤까지는 반 별로 묶어서 걷는다. 새벽이 되면 자유롭게 걷는다. 단체 보행이 끝나고 학생들은, 이제는 구속받지 않는다는 해방감,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멀다는 좌절감, 더 이상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걸을 뿐이다.

위대한 철학자는 산보를 할 수 있는 마을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해했고 공감했다. 학생들은 걷는다. 지친다. 침묵이 찾아온다. 그것에 익숙해진다. 자기 안의 소리를 듣는다. 생각한다. 엉킨 마음이 풀린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성금을 위한 운동장 걷기 행사를 열었다. 늦여름, 날씨는 아직 더웠다. 달리기 기록에 대한 욕심도, 모금에 대한 정신도, 운동에 대한 의욕도 없었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날이면 나는 멀쩡하다가도 아플 수 있었다. 아니, 나는 분명히 아팠다. 죽어가는 얼굴로 참가했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은 뛰었고, 나머지는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대형은 무너지고 자기만의 속도로 운동장을 돌았다. 그러다가 친구와 마주치면 잠깐 얘기를 나눴지만 우리는 곧 다시 각자의 걸음을 옮겼다. 할 수 있는 게 대화와 생각밖에 없어지면, 사람들은 말도 안 되게 본질적인 고민과 성찰을 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배웠고, 나를 통찰했다.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만나면 그렇게도 할 말이 많았다. 다 안다고 생각해도 또 새로운 사실이, 또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슬쩍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가끔 외로웠다. 전력을 다 해 달릴만한 의지도 체력도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내 진심은 달리기가 느린 스스로가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몰라서 보조를 맞춰주지 않는 친구들이 조금 야속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사진 촬영이나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주는 등의 역할을 맡아서 뛰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도 부러웠다. 나는 일부러 그 두 시간 동안 나에게 더 집중했다. 시험에 관한 생각, 미래에 관한 생각, 관계에 관한 생각 등 내 마음에 더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소란스러운 공간 속 철저하게 혼자인 시간을 나는 점차 즐기게 되었다. 기록에 대한 부담이나 친구들을 향한 원망은 버리고 그 시간과, 그 속에 있는 나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함께, 같은 것을 공유했던 그 시절, 각자의 길을 걷는 그 후. 우리는 단체 보행이 끝나고 자유 보행으로 접어들었다. 그때의 대형은 무너지고 각자의 길을 걷는다. 다시 단체 보행을 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밤의 피크닉] 속, 마음껏 어리고 충분히 솔직한 그 아이들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직 절반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섭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태껏 걸어왔다는 사실이 나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나의 밤은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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