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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Oct 26. 2021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사랑이라는 감정

네게 한 번도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너 와의 두 번째 만남은 사실 내가 몇 년 전 결혼을 약속했던 만약 헤어지지 않았다면 올해엔 내 남편이 되었을 남자가 나에게 다시 찾아온 다음 날이었어. 날 아직 사랑하고 있다며 돌아온 전 남자 친구의 등장에 난 너무 혼란스러웠고,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나는 너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6월 6일, 우린 두 번째 만남에 계획에 없던 오리주물럭 집을 가게 되었어. 네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도 않고 오리 기름이 옷에 튀는지가 더 신경 쓰이는 그곳에서 너도 나도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허헛하고 웃어 버렸던 것 같아. 난 두 번째 만남에 이런 곳에서 데이트를 하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이래서 동갑이 편하고 좋다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


너는 이 근처에 사촌 누나와 갔었던 날 데려가고 싶은 호빗 마을 카페가 있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밥 먹다 말고 누나에게 전화 걸어 집요하게 그 장소를 알아냈어. 외동아들이라 저렇게 철부지 같구나.. 심지어 친누나도 아닌 '사촌' 누나를 주말에 저렇게나 괴롭힐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역시나 나랑은 맞지 않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왜 그땐 몰랐을까, 그 누나의 존재가 너에겐

가족 보다 더 깊었다는 걸 왜 알고 싶지 않아했을까. 장례식장에서 네가 내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고, 정말 많이 좋아했다고 말하시는 사촌 누나를 보고 왜 네가 나에게 누나를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는지 단숨에 이해가 됐어


그렇게 찾아간 강화도 카페에 앉아서 또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얘기를 했던 것 같아. 네가 물어보는 질문에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내 모습을 내 모든 시시한 얘기 따위들을 술술 풀어냈고 넌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네 얘기를 나에게 들려줬어.


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와 같은. 그 순간 난 어제 만났던 전 남자 친구를 정리하고 널 만나기로 결심을 했어, 5살 많은 전 남자 친구가 나보다 많은 사회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감, 경제력에서 오는 편안함과 같은 그 사람이 '가진 것'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꼈었다면  동갑내기인 너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 꿈을 꾸는 모습을 보며 너라는 '존재'에게서 너무 큰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아. 순수한 너와 함께 있는 순간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순간도, 너무 행복하더라고..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던 건 여전히 사실이야, 너에 대한 콩깍지가 풀리면 너무 나도 다른 인생을 살아왔던 너와 네가 더 이상 함께할 얘기가 없어지진 않을까, 내가 널 좋아하는 이 마음이 냉정한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에 사라지는 한 순간의 감정은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그때의 너는, 몇 년간 배웠던 미장일을 토대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쳐서 네가 중개하는 집의 인테리어까지 해주면서 돈을 벌며 살고 싶다고 했지, 부업으로 하는 비데 설치일의 영업권도 따고 싶어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남은 여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상 스포츠와 같은 여가 생활을 즐기면서 보내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지. 사랑이나 연애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고 죽을 때까지 자기 계발을 하며, 내 분야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꿈을 꾸었던 나와는 다르게 말이야.


너는 그 부분만큼은 너와 내가 다르다고 하면서도, 놀랍게도 어느 순간 나보다 더 큰 꿈을 꾸는 사람으로 변해있더라, 전문직이 되어서 우리 가족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나랑 당당하게 동거도 결혼도 하고 싶다던 너. 올해는 대학도 도전했던 너. 너도 그렇게 변한 네 모습이 스스로도 놀랍다며 이게 모두 나와 평생을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가능하단 말을 수십 번 수 백번 했었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할 수 있을지를 수 없이 고민했을 네가, 속으론 좋으면서 겉으론 그런 말 말라며 내가 아니었어도 넌 지금처럼 열심히 했을 거라는 말로 대화를 끊어버리곤 했던 내가 그때도 지금도 너무 바보 같아


너는 나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면서도 정말 조금의 피해도 주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이었어, 마지못해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도 양말은 항상 신발장 자기 신발 속에 꼽아두었고, 내 양말 조차 빌려신길 미안해했잖아. 냉장고도 한 번 나한테 물어보지 않고 연적도 없고, 내 물건을 궁금해한 적도 없고. 나는 왜 너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적당히 거리를 지켜주는 네가 사실 좋았을지 모르겠어.


우리는 참 많은 게 닮았어, 사람을 대하는 성격이나 스스로를 대하는 성격, 상처 받는 걸 두려워해서 상처 받을라 치면 꽁꽁 숨어버리는 성격까지, 그러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회피하는 모습까지도. 또, 부모님을 가장 사랑하고 도시보단 자연에 있는 걸 좋아하고,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마다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오는 길엔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주말 저녁엔 간단한 음식에 맛있는 술 한잔 하는 것을 좋아했어,  


우리가 처음 갔던 여행지였던 춘천에서의 오후가 생각이나, 그날은 비가 왔고 에어컨에 방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따뜻했던 네 온기가. 그날을 잊지 못할 것 같아, 잊고 싶지 않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때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싶어.


네가 어딜 가서 너 같은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애라는 행복을 알려준 너와 같은 사람을 나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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