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승 Nov 25. 2021

5재일

한 달


한 참을 괜찮다가 어제부턴 왜 이렇게 속상한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네가 뚜벅뚜벅 걸어올 것만 같아서 일까, 여름 소나기처럼 왔다간 너와, 난 어떻게 이 추워지는 겨울을 맞이했을까?


이번 주말엔 네 아버지를 모시고 사촌 형네에 다녀왔어, 가는 길에 사촌 누나도 픽업해서. 내 인생에는 있을까 말까 했던 장거리 운전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가서 만난 네 가족들이 얼마나 고마워해 주시던지,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채워진 느낌이었어.


그냥, 만약    교통사고로 그렇게  버린 사람이 네가 아니라 나였다면, 너도 나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 갑작스레 찾아온  빈자리를 힘들어할  가족들에게, 너도 '내가 뭐라도   있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약속했던 것들, 네 시험이 끝난 후 네 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것,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사촌 형네 딸기 농사 수확을 도우러 가는 것, 가는 길에는 먹을 거나 마실 것을 한 박스 사다 주 자고 했던 것, 네가 사는 오남에 분기에 한 번은 가겠다고 했던 것.. 그것들을 혼자서라도 지켜내고 싶었던 걸 지도 모르겠어. 왠지 당연하게 너도 그랬을 것 같아서


..

다음 날 아침 아버지와 함께 너에게 다녀왔어. 아버지가 아메리카노는 꼭 마셔야 하는 네 커피도 사자고 하셨는데 나는 내 이름을 잘 못 부르신 거라 생각하고 두 잔만 샀더니, 우리 아들 커피가 하나 모자라다고 해맑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지 뭐야.


오늘 길에 들린 길가의 해장국 집에서 선지 해장국을 시켜먹었어, 다음에도 네한테 다녀오는 길에 또 같이 먹으러 오자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또? 좋지 라고 말하시는 모습에도, 먼저 가 버린 너를 바보 같은 새끼라고 말하시는 모습에도,


아버지의 종암동 아지트로 모셔다 드리는 길에, 드디어 말씀드렸어 네가 아버지를 얼마나 생각하고 항상 감사해했는지 말이야. 나에게 아버지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본인의 가장 힘든 시기에 항상 옆에 계셔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던 네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네가 항상 부족한 아빠였던 자기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채, 아무것도 해준 거 없이 당신보다 먼저 보내야 했던 게 너무 속상하셨던 것 같아.

아버지는 나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셨어, 내가 한 거라곤 네 말을 전해준 거뿐인데 그다음 날도 전화하셔서 고맙다고 말이야..


오히려 네가 너무 죄송하지 않을까, 나이 드신 아버지 어머니를 홀로 두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가야 했을 때 네 마음이 찢어지지 않았을까, 영혼이 살아 있을 때 까지 네 마음은 온통 죄책감이지 않았을까..


...

네가 떠나고 나서 자주 듣는 노래들이 생겼어, 어제는 왜 그렇게 그 노래가사가 더 슬프게 들리던지 몰라. 걱정하지 말고 거기선 행복하고 웃을 일만 있으면 좋겠다!


...

연애란 게 행복한 걸 이제는 알아, 전엔 가장 슬픈 게 사랑인 줄 알았으니 아쉬운 건 우리의 인연도 그때 그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았다는 걸, 어쩌면 다행이야 좋은 기억만 남아 있잖아

작가의 이전글 Invisible gift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