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과 <슈퍼스타K>, <미래일기>와 <우리 결혼했어요>
<싱어게인3>가 끝났다. 성공을 거둔 시즌 1과 시즌 2를 뒤이어 방영된 시즌 3를 보며 생각한 것은, 어쩌면 이것이 <슈퍼스타K>의 재현이 아닐까 싶은 의문이었다 (<싱어게인>의 윤현준 CP는 <슈퍼스타K>가 아니라고 언급했지만).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어딘가의 숨어있던 능력자가 대중 앞에서 노래로 그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 존재는 ‘가수’가 된다. 제목을 떼어 놓고 보니 <슈퍼스타K>인지 <싱어게인>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넷플릭스의 일본 리얼리티 예능을 잘 본다. 공개 예정일 때부터 찜해두었던 <미래 일기>(예능)을 완주했다. 밤에 틀었다가 새벽 내내 몰아보고 말았다. 이런 과몰입 유발 콘텐츠 같으니라고. 신나게 보며 생각한 것은, 어쩌면 이것은 <우리 결혼했어요>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닐까 싶은 의문이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갑자기 연인의 관계로 선언되는 것, 그리고 그 관계에서 할 법한 일들을 보여준다. 설명만 놓고 제목을 따로 쓰지 않으면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겠는걸.
인간은 호모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사랑한다.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고 만들어 내며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를 형성한다. <슈퍼스타K>는 어느 면에선 그 점 때문에 사랑받았다. <슈스케> 출연자의 ‘사연’은 노래와 함께 미디어의 편집이 만들어 낸 ‘서사’에 힘입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순적이게도 시즌이 거듭될수록 언급되는 논란이 바로 ‘사연팔이’ 였다.
우리는 사연에 공감했지만, 노래를 집어삼킬 정도의 잦은 빈도와 과한 분량의 사연은 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부 진짜였겠지만, 진짜로 느껴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연보다 노래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노래를 들으려고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사적인 얘기를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사연팔이 소년이 돼 카메라 앞에 앉은 참가자들은 무대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호소하느라 생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얼굴 모르는 대중에게 털어놓는다.” - 한겨레 21, 요즘 '슈스케'는 왜 예전만 못한 거야?
<싱어게인>은 ‘무명가수’라는 기획 의도 덕분에 사연의 발화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끌어냈다. 무대라는 기회가 없었던 무명가수에겐 ‘없는 기회’에 대한 사연이 있을 터, 그것이 곧 지원자의 지원 동기이기 때문이다.
무명이라는 '이름 없음'의 이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시청자는 그 단어 하나로 짐작하게 되며, 시청자와 방송 사이에는 무명한 지원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리라 그래서 시청자는 듣게 되리라는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방송에선 이들을 이름이 아니라 숫자로 소개하며 무명함을 강조하고, 이름 대신 공개하는 그들의 사연에 자연스럽게 귀 기울이게 만든다. 우리는 무명과 유명의 역학 관계를 알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 결혼이라는 콘셉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그 포맷이 패러디되고 있을 정도로 방영 당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 가상 부부가 된 연예인들 간의 연애 감정을 강조했고 시청자들은 실제 연애를 하는 것 같은 그들의 모습과 케미스트리에 빠져들었다.
매회 제작진 측에서 준비하는 미션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현실성 때문인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일어나는 행동 등은 연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결>에서 주고받은 커플링을 다른 방송에서도 착용해 포착하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결>은 회차를 거듭하고 시즌이 이어지며 제기되는 ‘대본 논란’에 아니라고 대응했다. 대본에 대한 기준이 시청자와 제작진이 다른 건지, 진짜 없었는지, 그런 건 나로선 알 수 없고 실제로 있었다 한들 이 글이 말하려는 건 그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그저, 그러한 논란 때문에 <우결>은 그들이 추구하는 진정성이라는 단어에서 한층 멀어져갔다는 것이다.
<미래일기>는 처음 만난 남자와 여자가 일기라는 장치를 통해 부여받은 상황에 따라 데이트한다. 둘은 촬영하는 날에만 제공된 핸드폰으로 연락할 수 있고 여자 출연자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자기의 마음을 전해서는 안 된다. 이미 하나의 각본이 일기로 세팅되어 있고 몇 가지 규칙으로 관계에 한계선이 그어진다. 일기에는 데이트의 처음과 끝이 쓰여 있으며, 거기에 적힌 처음과 끝, 특히 끝에 해당하는 행동을 위해 출연자에게 그날의 역할이 부여되기도 한다. 그 역할을 이행하기 위해 누가 봐도 작위적인 데이트를 하게 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렇게 작위성을 부여할수록 둘의 데이트가 진짜 ‘미션’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게임이나 영화 같은 상황에 출연자들을 집어넣음으로써, 그들이 그 상황을 소화하는 자체가 현실이 되어 버린다. 특히 데이트하는 동안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각적이던 카메라 연출이 출연자 인터뷰 때는 색감까지 바뀌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연출되는데, 이 둘을 다 보고 있는 시청자는 꾸며진 상황에 참여하는 두 출연자의 진실한 감정에서 진정성을 찾게 된다. 현실의 현실적이지 않음에서 발견되는 진짜 현실이랄까. 결말까지 다 보고 인스타그램도 찾아보시길. 결국 감정이라는 것, 진심은 남는 법이다.
심리적 반발 이론은 어떤 대상에 대해 선택의 자유가 억제되거나 위협당하게 되면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심리적 반발이 일어나 자유를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원한다고 설명한다(Brehm & Brehm, 1981). 이 이론에 따르면 이론에 따르면 자유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 반발이 일어난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행동의 자유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전제된다. 이에 따라,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 선택권을 침해당하거나 제약이 생겨, 하고자 하는 행동을 할 자유가 없다거나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자유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자유에 대한 위협은 '분노'로 대표되는 부정적 정서와 '반박'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인지를 경험하게 하며(Dillard & Shen, 2005) 이를 심리적 반발이라 한다. 반발에 따른 행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개구리 식 반응인데, 하지말라는 건 더 하고 하라는 건 더 안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슈퍼스타K>와 <싱어게인>을 시청하는 상황은 어떨까? <슈스케>를 보던 우리는 노래만 듣고 싶었다. 그래서 사연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겨나자 노래만 듣고 싶은 내 자유에 위협을 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싱어게인>은 처음부터 무명함을 강조했으니 우리는 노래와 함께 붙은 사연을 듣는 행위를 이미 선택한 셈이다. 그러니 사연으로 인한 반발심이 생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결혼했어요>는 처음부터 리얼리티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였고 우리는 그에 대한 동의로 방송을 보다가, 대본이 어쩌고 하니 '리얼리티'를 보려 하는 내 선택에 위협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미래일기>는 처음부터 '설정'과 '미션'으로 짜여진 각본을 따라가도록 함으로써 이에 따른 반발심이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다.
새삼 이 차이 하나로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지만 <싱어게인>과 <미래일기>로 표상되는 콘텐츠들도 언젠간 새롭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언제쯤인지, 사람이 느끼는 새로움에 대한 인식이 먼저 바뀌는 건지, 콘텐츠가 새로움을 향해 변하는 것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미래일기>가 20년 전 작품의 리메이크라고 하니 시기는 어느 정도 짐작되는 것 같기도 하고.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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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2022.03.06., 한해선, '싱어게인2' PD가 밝힌 #김기태반전1위 #한동근컴백 #시즌3개선[★FULL인터뷰]
한겨레, 2021.11.09., 신소윤, 슈스케4, 노래만 불러도 괜찮아
한겨레21 - 제935호, 2012.11.05., 신소윤, 요즘 ‘슈스케’는 왜 예전만 못한 거야?
Brehm, J. W., and Brehm, S. S. (1981). Psychological Reactance: A Theory of Freedom and Control. San Diego, CA: Academic Press.
Dillard, J. P., & Shen, L. (2005). On the Nature of Reactance and its Role in Persuasive Health Communication. Communication Monographs, 72(2), 144–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