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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혀I현 Apr 16. 2024

우린 왜 자꾸 바꿔보고 싶은 걸까요?: 환승연애

<환승연애>, <체인지 데이즈>


“유교 인간인 나는 정말 이 프로그램을 이해 못 하겠다···.”


   바야흐로 2021년, TVING 오리지널의 <환승연애>와 카카오 TV의 <체인지 데이즈>는 방영 시작 전부터 ‘마라맛’ 예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헤어진/헤어질 연인과 한 공간에서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기묘한데,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그들과 데이트를 해야 한다니. ‘헤어진 연인과 마주치면 아는 척한다, 안 한다’ 가지고도 양자택일 게임을 하는 대한민국에선 이 두 예능을 보고 자극적이라고 외쳤다.


  <환승연애>와 <체인지 데이즈>는 ‘이별’이라는 키워드를 ‘공동생활/합숙’의 형태로 풀어냄과 동시에 ‘환승’과 ‘체인지’라는 명명으로 연인이 뒤바뀜을 암시했다. 이 점이 곧 논란의 요지가 됐다. 그러나 그간의 잡음과는 별개로 방영 후 두 예능은 연일 화제다. 어쨌든 긍정적인 쪽으로. <환승연애>는 1화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과몰입’을 유발한다며 팬들이 생겨났고, <체인지 데이즈>는 “환승연애에 비해 호감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으나 최근 회차를 통해 이러한 여론을 극복하고 좋은 평을 듣는 모양새다. 두 프로그램은 형식과 설정이 낳은 부정적 반응을 긍정적인 반응으로, 서사를 통해 힘써 치환한다.



TVING <환승연애 1>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1]

: <환승연애>의 첫 화가 ‘먹힌’ 이유


  누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체인지 데이즈>처럼 나와 내 연인이 합의 하에 상대를 바꿔가며 데이트할 일은 살면서 한 번도 생기지 않을,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환승연애>처럼 헤어진 연인과 어딘가에서 만나 모르는 척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은 생길 법하다. 나아가 그 옛 연인이 내가 아는 누군가와 사귀게 될 가능성도, 여러 번 상상해보고 두 번쯤은 실제가 되는 일이다. 이 가능성을 중심으로 <환승연애>의 서사는 ‘처음’의 빈도만큼 경험해왔지만 뜯어보려고 하지 않았던 ‘끝’과, 그 끝에 맞물린 새로운 ‘시작’을 조명한다.


  한편 <환승연애>의 과거 연인들은 헤어진 상태지만 둘 사이의 감정이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미련이 덕지덕지” 붙어있거나, 누가 봐도 다시 잘해볼 생각을 갖고 있다. 또는 첫사랑 같은 연애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한 마디로 상대를 향한 감정이 좋은 편이다.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풀리는 ‘X(ex)’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듣고 있노라면, 이별의 순간에 서로 얼마나 미워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 이별의 원인이 싸움이었는지 또는 귀책 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이들이 느끼는 이별 후의 아픔, 상대를 향한 미안함, 속상함과 아쉬움, 후회와 미련, 그리고 고마움에 집중하게 된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지만 그동안의 사랑은 추한 게 아니다. <환승연애>는 이런 식으로 시청자를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궤도에 올려놓는다.


  비슷한 경험과 유사한 감정에 공감하고 이입한다. 상황과 기분을 알거나 충분히 알 것 같기 때문에, 이 경험을 매개로 이들의 서사가 시청자, 곧 나의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환승연애>의 방식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서사에 들어가도록(transportation) 한다. 즉 “현실의 세계를 잊고 서사의 세계로 이동해 이야기에 몰입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서사성은 시청자와 출연진 사이의 “정서적인 연결[2]”을 도모한다. 이러한 정서적 연결을 통해 우리는 <환승연애>를 보며 특정 출연진과 나를 ‘동일시’하거나, 그에게서 나와 내 연애의 ‘닮은 점을 찾으며’ 과몰입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출연진의 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과 만날 것인지, X와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카카오 TV <체인지 데이즈 1>



연애는 제일 좋은 자아 여행이야

: <체인지 데이즈>가 그래도 울림을 주는 이유


  <체인지 데이즈>의 시작은 <환승연애>와 사뭇 달랐다. 밥상머리에서 X가 X를 위해 정성스럽게 쓴 ‘X 소개서’까지 낭독한 <환승연애>의 아련함과 달리 <체인지 데이즈>의 밥상머리는 살얼음판이었다. 파트너를 향한 불만이 쏟아졌고, 서로의 갈등과 질투가 비쳤다(최근의 <환승연애 3>가 그러하듯). 시청자는 이 대목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싸움 구경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이별의 위기가 찾아온 커플이지, 헤어진 게 아닌데 내 파트너와 오늘 한 침대에서 자면서 각자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고 다시 한 침대를 쓰는 경우는 잘 없지 않을까. 그러한 이유로 <체인지 데이즈>의 초반부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까지 정말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체인지 데이즈>를 봤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이질의 세계에 들어간 마음가짐으로 ‘누가 누가 더 잘못했나’를 생각하고 ‘누가 누가 더 잘 어울리나’를 두고 게임을 하듯 선택해봤다. 이랬던 <체인지 데이즈>가 에피소드를 거듭하며 윤리나 도덕의 문제를 떠나 개인의 자리에 위치한다.


  유튜브 ‘고막메이트’에서 김이나 작사가는 “연애는 제일 좋은 자아 여행이야”라고 말한다. <체인지 데이즈>는 이러한 연애의 ‘자아 여행’적인 면모를 정제되지 않은 얼굴로 보여준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현재 연인과의 지난한 기억들을’을 반추하는 과정이 더욱 전경화[3]”되는 가운데, 현재 연인과 처리되지 않은 갈등과 해묵은 감정 위로 덮어 놓은 가짜 평화를 깨뜨리고 마침내 드러난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성찰하게 한다. 특히 홍주와 우석의 경우, 재결합 후에 자신을 향한 우석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던 홍주가 반성하며 우석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털어놓는다. 대화가 필요했던 민선과 진록은 체인지 데이트를 하며 다른 이성과 ‘대화’하면서 대화할 수 없는 상대가 아니라 ‘대화하지 않는 나/대화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은 ‘자아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즉, 내가 나를 알지 못하면 타인과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상대를 바꿔 ‘체인지 데이트’를 하는 동안 출연진은 자신의 연애를 돌아보며, 솔직하고 진솔하게 ‘나’를 마주한다. 이로써 탓하기만 했던 어제를 뒤로하고 나부터 바뀌어보려는 노력을 이어간다. “‘체인지’해야 했던 건 상대가 아니라 ‘나’였던 것[4]”이다. 최근 회차에 이런 부분이 강조되면서 <체인지 데이즈>의 서사는 ‘성장 드라마’에 어울리는 울림을 준다. 물론 체인지 데이트라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극과 호기심과 굳이의 사이를 맴도는 콘텐츠들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무엇무엇이 맵더라 소리만 들리면 꼭 먹어보는 지인이 있다. 그이는 그 매운맛이 자기를 얼마나 맵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가끔 속이 쓰려도 어쩔 수 없다고. 기어이 먹고 싶어지고 그래서 먹을 수밖에 없단다. 이렇게 매운맛이 궁금하고 또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콘텐츠 입맛이란 게 자극을 원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매운 음식이라면 껌뻑 죽는 사람들이라도 ‘계속’ 찾는 매운맛은 맵고 맛있는 것이지, 맵기만 한 음식이 아니다. 충분한 경험이 되었으면 그뿐, 단골이 되진 않을 것이다. 내 선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음식이 있는데, 그리고 이미 맛집을 아는데 굳이 맛이 없는 걸 고를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콘텐츠도 아마 그럴 것이다. 선택할 음식이 수백 개 정도 있듯이 오늘 마침 그 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는 수백 개정도 된다. 그러니까 굳이. 시청자들이 굳이 짧게는 삼십 분 길게는 두 시간의 시간을 투자해 한 회를 보고 그걸 열 번이 넘도록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가 <환승연애>와 <체인지 데이즈>를 보기 시작한 것도, 그 ‘굳이’의 이유를 짐작해보려 한 것도 다 이런 연유에서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마침내 알게 된 사실은 하나 뿐이다. 한두 번은 자극에 대한 호기심이 사람들을 붙들어 놓을 순 있어도, 결국 이 지속성을 만드는 건 형식이나 설정의 발칙함보다 콘텐츠(내용)일 따름이라는 것. 그리고 요즘 이걸 잘 해내는 게 <연애남매>인 것 같다. 글감이 되어주련? 우쥬 비 마이 글감?







[1] 2019년 9월 25일에 발매된 AKMU(악뮤)의 앨범 "항해"의 타이틀 곡

[2] Moyer‐Gusé과 Nabi(2010)는 이러한 “정서적 연결”로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중 ‘동일시’는 자신의 관점을 잃고 특정 인물에 과몰입하여 해당 캐릭터의 느낌, 관점, 목표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사를 경험하는 것이다. ‘인지된 유사성’은 자아 인식까지 잃는 것은 아니나 캐릭터의 특성이나 성격, 신념과 가치관 등에서 계속 공통점을 발견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준 사회적 상호작용/의사사회 상호작용’은 시청자와 시청자가 좋아하는 등장인물 간에 생기는 유대감으로, 마치 실제 면대면으로 아는 관계인 것처럼 느끼는 상호작용을 말한다. Moyer‐Gusé, E. and Nabi, R.L. (2010), Explaining the Effects of Narrative in an Entertainment Television Program: Overcoming Resistance to Persuasion.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36: 26-52

[3]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칼럼, 2021.08.22., [태준] '매운맛 데이팅프로그램'의 정치적 무의식, <환승연애>와 <체인지데이즈>

[4] 정소미,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 2021.08.25., [Opinion] '체인지 데이즈', 바뀌어야 하는 것은 [드라마/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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