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회사 감상문
내 성격의 특성상 프리랜서를 하기 전에도 기간에 비해 많은 회사를 다녔다. 자의로 회사를 옮긴 적이 많지만 타의로 옮긴 적도 몇 번 된다.
5개의 회사를 거쳐 4년 차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적지 않은 회사들을 경험하며 최악의 퍼포먼스를 내는 회사를 여럿 경험해봤다. 얼마 전 건강보험 처리 문제로 한 회사의 소식을 접했는데, 결국 폐업했다고 하더라.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여러 업체와 일하면서 느낀 "유능한 인력을 무능하게 내버려두는 법"을 몇 가지 정리해봤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유능한 건 아니지만 있는 능력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몇 가지 상황들을 마주하며, 이것이 요즘 핫하다는 가스라이팅의 일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한 울트라 무능력 퍼포먼스 가동 조건은 아래와 같다.
사람에게는 크고 작던 목표점이 필요하다.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가 없다면 목적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에 협업했던 한 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뽑히지 않는다고 고민을 했다. 정규직으로는 지원이 많지 않고, 출근을 하기로 했던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출근 전 무산이 되었던 적도 있다. 심지어 두 명이던 디자인팀에서 한 명이 퇴사했다. 이 회사는 디자인 업무의 80%를 외주로 돌리고 있었다. 프리의 입장에서 땡큐지만 회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라면 물 경력에 연봉도 높지 않으니 남아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각 팀의 존재 이유가 없다면 일하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회의감이 밀려올 것이다. "여기서 내가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만 두둥실. 그렇게 되면 그곳에는 더 이상 남을 이유가 없다.
인재를 데리고 오려면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갖다 붙이는 게 가장 먼저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단 디자이너를 뽑으면 이 회사의 모든 디자인을 알아서 척척- 다 할 줄 안다. 잉? 이 회사는 처음인데요?? 지금 회사에서 밟고 있는 스텝은 어디쯤이고 디자이너가 해야 할 영역은 A-Z까지인데 현재는 A-C 단계를 진행 하자.라는 미션은 개뿔 아무것도 안 주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가스라이팅을 시전 한다. 아니 그래서 이 회사에서 뭘 하면 되냐고요?
이건 신입이 들어온 아무개 사수가 많이 하는 실수이다. 물론 가르쳐도 물 한 방울 못 적신 화분의 꽃 처럼 자라날 기미가 안 보이는 신입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사수의 운명이자 빼박 현실은 새로운 신입을 가르치고 기다려주고 화병이 날지언정 같이 하려고 해야 한다. "내가 하면 더 빠르니까"라며 가르치지 않으면 평생 혼자 해야 한다. 그리고 신입은 능력자가 될 기회가 막힌다. (이래서 사수를 잘 만나야...)
아무개 사수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대표님은 혼자서 1부터 10까지 다하려고 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신상 가시방석 위에 올라가 있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다시 이 말이 나올 때다. "여기서 내가 뭘 하는 거지?"
이건 3번과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살짝 다르다. 전문가를 옆에 두고 물어보지 않는다. 디자이너로서 일하면서 있었던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다.
드럭스토어에 납품할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건을 가지고 회의를 했던 때가 있었다. 기존의 패키지는 의학품 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어 일반 드럭스토어에 DP 되었을 때 굉장히 촌스러워 보이며, 드럭스토어의 주 이용고객인 20-30대 여성들에게 외면받기 딱 좋은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시중에 생산되고 있는 화장품을 조사하고 그것을 토대로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제안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기존의 패키지를 이러쿵저러쿵했으면 좋겠다고 자기 얘기만 했다. 좋은 상품에는 좋은 껍데기가 필요한 것을.
1번부터 4번까지를 싸잡아 말한 거라고 봐도 다르지 않다. 소통해야 하는 영역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팀, 또는 파트너에게 프로젝트의 흐름 안에서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일할수 있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소통이 아니라 명령이나 단순 지시를 내린다. 예를 들어 모바일 앱 디자인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작업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어디 시점까지 왔는지), 기획단에서는 어떻게 기획이 되었는지, 바뀐 부분이 어디인지 등등... 공유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일단 던지고 보는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지시만 내리고 설명이 없다.
"이런 것까지 공유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유는 세세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파트너, 또는 프로젝트 참여자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기지를 발휘하게 된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잘못했다, 더 잘하겠다 라는 말을 남발했다.
하지만 잘못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있다. 실수는 인정하되 더 나은 방향성으로 가기 위해 팩트체크와 의견 피력을 해야만 내를 무능력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는것 같다. 그렇게 해야 덜 만만하게 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