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나나 Oct 06. 2021

퇴근길, 아빠가 사 온 만두에 공감하게 되는 때

사회를 겪어보니 이제 나도 알겠더라



우리 아빠는 굉장히 과묵한 편이다. 여자 셋이 있는 집안에 유일하게 혼자인데 무뚝뚝하기까지 해서 외톨이같이 평생을 사셨다. 무뚝뚝한 아빠를 닮은 우리들은 으레 당연한 듯 여자 셋이서 놀았다. 그게 편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 아빠가 사오는 옛날 통닭은 늘 맛있었다. 술 먹고 봉지 가득 들고 오면 맛있게 먹었다. 덕분에 살도 많이 쪄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에는 잘 먹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아빠처럼 집에 들어가는 길 맛있는 걸 잔뜩 사들고 가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었다. 그런 날은 힘든 날이었다. 지치고 회의감이 들 때,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낙담할 때 그런 충동을 느꼈다.


그날은 밖에서 친한 언니를 만나고 있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살짝 꼬인 혀로 뭐라 뭐라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집이 아니라고 했고 아빠는 만두를 샀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아빠의 말에 어거지로 아빠를 따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밖에서 실컷 수다를 떨고 집에 오니 얼굴이 벌겋게 된 아빠가 집에 있었다.


아빠는 오늘 힘들었다고 했다. 아니, 오늘만의 힘듬이 아니었나 보다. 얼마 전 설거지를 하며 짜증을 내는 아빠를 보며 '체한 엄마한테 저렇게 짜증내고 싶을까?'라며 속으로 생각했던 내가 생각났다. 맞다. 아빠도 사람인데 일 끝나고 와서 또 집안일하는 게 싫었을 건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또 무언가 희생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관리자란 이유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잘못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큰 건수인 것 같다. 그래서 억울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셨던 것이었으리라.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책임의 무게만 있던 아빠는 너무 힘들어서 만두를 사온 거다.

무뚝뚝한 딸내미는 아빠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를 위로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밖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위로를 건네었으면서, 정작 우리 아빠에게는 위로의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만두를 사왔을까. 평소에는 말하지도 않던 회사 이야기를 했을까. 


바로 어제 아빠는 오랜만에 미용실을 갔다왔다. 안 그래도 없는 머리카락을 바짝 깎은 머리의 반은 희끗희끗했다. 내 맘속에 아빠는 초등학교 시절 강인한 30대의 남자인데, 아빠의 나이가 되어버린 내가 있는 현실에서 우리 아빠는 이제 60을 바라본다. 참,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


내일은 아빠에게 오랜만에 카톡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작가의 이전글 공동체에 불만이 많은 성도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