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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획과 영감 Jul 31. 2023

힘들 때 찾는 명장면이 있다면

[뮤직비디오 PD가 된 과정 5] WayV 'Moonwalk' MV

※본 글은 4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5힘들 때 찾는 '명장면'이 있다면



이번 5편은 Way V의 'Moonwalk' 뮤비 속에 나오는 위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누군가에겐 빠르게 지나가는 연출 컷 하나일 뿐이지만 나에게 있어선 특별한 에피소드가 깃든 장면이다.


우선, 아래의 현장편집 컷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특이한 것을 알 수 있다.

Moonwalk 뮤직비디오 현장 편집컷


뭔가 트릭이 숨어있는 것 같은 이 장면은 어떻게 연출된 걸까? CG를 쓴 걸까?

후반 작업으로 차량을 뒤집고 아티스트만 나중에 합성한 걸까?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뒤집힌 자동차 지붕에 앉아 있는 걸까?


사실 본 장면은, 상단의 '콘크리트 바닥' 부분을 제외하고는 CG로 뒤집힌 부분이 없다. 만약 CG로 차량을 180도 뒤집어 합성했다면 (윗 차와 아랫 차를 비추는 앵글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컷이 정확히 이렇게 구성될 수 없다. 또한 아티스트 퍼포먼스 시 주변부의 디테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정답은 생각보다 쉬워진다.


위 장면은 실제로 차량을 완전히 뒤집어 / 차(사진에서 '윗 차')를 공중에 띄운 다음 / 고정 + 안전매트 세팅 후 아티스트가 직접 자동차 지붕에 올라가서 퍼포먼스 한 결과물이다.




시도가 중요한 이유 


보통 이런 특수촬영은 안전성 고려를 위해 특효(특수효과) 전문업체에게 맡겨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컨택 가능한 국내 특효팀이 많지 않았고, 실제로 상업영화 특효팀에 컨택을 했지만 스케줄이나 예산 조율이 불가능해 함께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직접 차를 뒤집어서 안전하게 띄워줄 수 있는 '크레인' 기사님을 찾아보기로 했다. 40여 곳 정도의 사다리차&크레인 업체에 연락을 했는데 '촬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대부분 허허 웃으시며 ''그런 건 안하쥬~''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끊지 않고 가만히 듣던 몇몇 분들도 '100% 안전하게 진행하는 방법이 있나요?' 묻고 나니 '글쎄요? 그런 건 안 해봐서' 내지는 '해줄 순 있다만 책임은 못 진다'식이었다.


그러다 딱 한 곳의 기사님이 '해보진 않았지만 가능할 것 같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고 마음이 바뀔세라 열심히 설득을 했다. 작품에 꼭 필요한 장면인데 가능하다면 같이 방법을 연구해봤으면 합니다...! (간곡.. 처절..)


그렇게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분한 보수 때문에 하시는 거겠지 생각했는데 촬영에 익숙지 않았던 기사님께서 연출 디테일을 여러 번 확인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장비와 하중 등을 꼼꼼하게 준비해 주시는 것을 보고 나니 '돈 이상의 더 큰 무언가'를 느꼈다. 업을 대하는 기사님의 애티튜드와 열정 덕에 촬영을 준비하는 내내 (첫 통화에서 나눈 말처럼)'같이 만들어 간다'는 기분으로 일할 수 있었다.


촬영 당일, 이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전이다. 기사님과 다각도로 준비했지만 혹여라도 변수가 생긴다면 바로 대응하고 책임져야 하는 건 프로듀서인 나였기에 극도로 긴장이 됐다. (밥도 간식도 안 넘어갈 정도로 예민했다.) 슛 들어가기 전 근처 태권도장에서 안전매트를 추가로 빌려놓고, 비상약도 종류별로 더 구비하고 제작팀원들을 사방으로 배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고 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크레인 기사님도 침착하고 전문적으로 움직여주셨고 모든 스탭진이 협력한 덕에 안전무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장면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길이라도 얼마든지 개척해 볼 수 있다'는 지금의 인생관을 반추해 볼 수 있어서다. 


사실 무언가 만들어지거나 만들어지지 못하는 원리는 생각보다 심플하다. '하느냐 or 마느냐'의 차이다. 다만, 위 에피소드처럼 통상적인 접근으로 결과물을 얻지 못하게 된 경우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냐 or 마느냐의 문제로 변한다.


팀 내부적으로도, '특효팀과 촬영이 불가하니 이 아이디어는 제외시켜야 한다'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알아보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기사님들이 전화를 끊는 가운데, 업에 대한 진정성과 도전정신이 남다른 기사님이 단 한 분이라도 있었기에 시도될 수 있던 도전이었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만 고르는 것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이는 '있음'과 '없음'의 차이만큼 다른 결과를 낳는다. 만약 크레인이라는 새로운 장비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거나, 이에 동참하는 전문가가 없었다면 뮤비 안에 저 장면을 담지 못했을 것이기에..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느껴져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 이 장면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뭔가 창의적인 힘이 샘솟는 것만 같다. 자신의 업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부적이랍시고 MV를 소개하며 5편을 마무리한다.



https://youtu.be/UsaGgEjqNoE

Moonwalk-WayV MV




이 시리즈 [뮤직비디오 PD가 된 과정]을 연재하는 소기의 목적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지금의 나', 그리고 무슨 연유에 있어서든 (나와 같이) 오랫동안 스러져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데에 있다. 지나간 짧은 도전적 경험들 속에서, 오늘날의 긴 방황을 끝내줄 아이디어를 찾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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