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일 Sep 14. 2021

"이거 제가 해도 되는 운동인가요?"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는 이유

 


어렸을 때 나는 까무잡잡하고 마른, 유연성이 좋은 아이였다. 머리도 항상 길었고 그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다녔으니 그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7살 무렵 서울 목동으로 상경하자마자 구민센터에서 수영과 발레, 리듬체조를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의 손에 이끌려. 그랬기에 물과 운동을 이토록 좋아하는 게 천성인지, 어릴 때부터 배워서 생긴 지향성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교 후 월수금은 발레와 리듬체조를, 화목토는 수영을 다니는 것이 초등학생 전아영의 일상이었다는 거다. 센터에 갈 때는 셔틀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배우기는 했지만 내 유년기는 공부나 다른 예능보다는 운동으로 점철된 생활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의 재미를 어릴 때부터 체득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최초로 가져본 꿈도 리듬체조 선수였다. 초등학교에서 스케치북에 장래희망을 그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선 내 모습을 그렸다. 당시 가장 좋아했던 책도, 발레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공연에서 프리마돈나를 맡기 위해 서로를 음해하고 질투하는 내용이 담긴 (그러나 결국은 화해하고 꿈과 희망과 열정으로 마무리되는) 어린이용 소설이었다.


 발레와 리듬체조 수업을 가서 친구들이 새 레오타드나 발레용 발토시를 사 입은 것을 보면 어린 나이에도 부러운 마음에 엄마를 졸라댔다. 검소한 엄마의 소비성향 때문에, 매장에서 팔던 형형색색의 발토시 대신 엄마가 직접 만든 발토시를 신었는데 어찌나 서운했던지. 그 때의 욕구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가끔 유행이 한참 지난 레그워머 패션을 검색하곤 한다.

내가 다니던 센터에서는 시즌이 끝날 때마다 리듬체조 공연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입었던 의상도 생생히 기억난다. 여름에는 반짝이는 스팽글이 달린 형광 연두색 레오타드에 분홍 타이즈를 신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화려한 버건디색 벨벳 레오타드를 입었다. 롤업 스타일로 머리도 틀어올리고 인생 최초의 화장을 한 뒤 올라갔던 무대들. 아직도 앨범에 붙어 있는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첫 무대에서 떨리던 기분과, 공으로 하던 구체적 안무 동작들까지 패키지로 떠오른다.

리듬체조는 리본 - 로프 - 공 - 후프 - 곤봉의 순서로 배우는데, 나는 공까지 배우고 후프로 넘어가기 전에 리듬체조를 그만두었다. 그만두게 된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리듬체조를 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분명하게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척추측만증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모든 각도의 다리찢기를 편히 할 수 있고, 요가에서 '무지개'라고 부르는 것, 즉 허리를 아치 모양으로 굽혀 거꾸로 엎드려 무지개 모양을 만들었다가 다시 복부 힘만으로 일어서는 동작을 가장 좋아할 정도로 유연했었다.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하며 유연성 테스트를 할 때, 친구들이 간혹 옷 위로 휜 등뼈가 보인다고 해골이라 놀렸지만 너무 말라서 윤곽이 보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척추가 휘었기 때문이었던 것을.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던 날, 가족 이력도 없고 평소에 굉장히 유연한데 왜 이런 병이 생겼냐고 묻는 엄마에게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어쩌면 오히려 '너무 유연해서' 뼈가 휘는 것을 근육이 잡아주지 못해 걸렸을 수도 있다고. 아직 원인이 정확히 밝혀진 질병은 아니므로 내가 그 병에 걸린 것이 정말 리듬체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론적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 인공뼈를 삽입하는 대규모의 척추 교정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뒤로 허리의 유연성을 사용해 하는 모든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리듬체조 선수도 되지 못했다.

출처 : 핀터레스트

척추측만증 수술을 한 것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커다란 불편함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S자로 휘어 있던 척추를 1자로 편 뒤 중간중간에 인공뼈를 삽입해 고정한 탓에, 허리를 둥글게 마는 동작이나 허리 힘을 주된 동력으로 하는 동작은 할 수가 없다. 춤을 추더라도 웨이브 동작은 불가하고, 허리에 힘을 주어 일어나는 윗몸일으키기나 크런치, 앞구르기 등의 동작을 할 수가 없다. 필라테스를 할 때도 척추를 분절해서 둥글게 말고 일어나는 동작은 불가능하다.


어릴 때 특별히 유연했기 때문인지, 또는 리듬체조 선수가 되는 것이 최초의 꿈이던 시절이 있기 때문인지 아직도 나는 무용이나 춤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동경심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응원단에 들어갔으나 아크로바틱을 하다 허리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만두었던 전적이 있다. 그 해소되지 않은 욕구는 대학교 때까지 이어져 '내 허리로 할 수 있는 것' 중 최선인 기수 응원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웨이브로 점철된 방송댄스나 허리로 동그란 선을 만들 줄 알아야만 하는 발레에 대한 욕구를,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소하기 위해 그나마 허리를 꺾는 동작이 많지 않은 살사를 배웠고, 근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폴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늘 많고 또 뭐든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낙관성을 기조로 움직이는 내게, 수술 후 새로 운동을 시도할 때마다 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이 운동 내가 해도 될까?



 인공뼈가 박힌 척추로 해도 되는지, 할 수 있는 운동인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패러글라이딩이 하고 싶어지면, '척추측만증 수술 후 패러글라이딩'을 검색했다. 옛날에는 잘만 하던 수영할 때 물 속 턴이 그리워져 다시 해보고 싶어질 때면 '척추측만증 수술 후 앞구르기'를 검색했다.


하지만 그 어떤 커뮤니티나 사이트에서도 척추측만증 수술을 한 사람이 '해도 되는' 운동에 대해 명료하게 정의내린 곳이 없었다.


그룹 필라테스나 PT를 받으면, 남들 다 쉽게 하는(그리고 나도 어릴 때는 했던) 윗몸일으키기나 크런치를 이제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그것이 나와 같이 수술을 받은 사람이면 모두 '절대 불가한' 동작인지, 아니면 내가 몸을 움직이는 요령을 터득하면 비슷하게나마 할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런 것들이 적혀진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많은 운동을 해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 최소한 1명은 있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최근 나는 클라이밍과 폴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앞으로도 요가, 테니스, 탭댄스, 롱보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승마 등 다양한 운동을 배울 계획이다.


왜 그렇게 다양한 운동을 굳이 시도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인공뼈와 함께인 post-수술 후의 내 몸을 이해하고 그것에 익숙해지고 싶어서다. 스스로 '내가 해도 되는, 할 수 있는' 동작과, '하기 어려우나 몸을 다루는 요령이 있으면 비슷하게나마 할 수 있는' 동작을 변별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은 자기 자신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이며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한계를 이해하는 것도 그 한 부분이 아닐까. 인터넷에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내가 겪고 한번 만들어보지 뭐. 그렇게 해서 얻은 DB가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더 좋겠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