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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Jul 02. 2019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 생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

(* 작품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30만 명이 조금 못 되는 관객을 극장에 모은 후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 영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을 다룬 영화였다. 영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을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는, 그것을 주제로 한 픽션에 가까웠다. 총 8명의 배심원이 영문도 모른 채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게 되고, 법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한 이 배심원들이 어머니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존속살해 피의자를 심판하게 되는 이야기다.


모두가 유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8번 배심원인 권남우(박형식 분)만이 피의자가 유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건을 스스로 재구성하며 배심원단 자체적인 결론을 이끌어낸다. 지난 5월에 개봉했던 영화 〈배심원들〉의 내용이다. 〈배심원들〉은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을 중심으로, 엉뚱한 추리와 우연 속에서 재판부가 세워 놓은 논리를 '일반 시민들'인 배심원들이 부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 박형식 배우는 8번 배심원을 맡았다. (ⓒ CJ엔터테인먼트)


어쩌면 굉장히 명확한 주제와 목적을 가진 이 영화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 이유는, 최근 극단 산수유에서 올린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와 연극은 몹시 닮아있다. 영화가 연극을 오마주 했다고 해야 할까. 연극 역시 1957년에 개봉한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을 기반으로 한 희곡이니 결국 영화가 영화를 오마주 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배심원들〉이 아쉬운 이유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주었던 충격을 제대로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눈을 가린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영화의 주제 자체다. 적당한 코미디와 적당한 감동, 그리고 그 안에서 기존의 작품들이 주었던 의미까지 담으려다 보니 이 영화는 너무 가벼운 영화가 되어버렸다. 가벼운 것이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명확한 방향성을 잡았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두 작품을 모두 본 사람이라면, 감독이 굳이 오마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두 작품이 상당한 유사성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존속살인, 배심원제, 그리고 8번 배심원의 의심과 검증과정 등 〈배심원들〉의 흐름과 대사는 '8인의 성난 사람들'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비슷하다.




12인의 성난 배심원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위 영화와 같은 '배심원제'를 다룬다. 영화 〈배심원들〉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되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실제 영화와 연극에서는 16세 소년이 친아버지의 살해범으로 기소된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소년은 빈민가에 살고 있고, 이전에도 전과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자주 싸웠으며, 사건이 일어난 날 저녁에도 아버지와 다투다. 소년의 집 아래층에 살고 있는 노인은 그 날 저녁 소년이 "죽여버릴 거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잠시 후 '쿵'하고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으며, 누군가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아버지는 칼에 찔려 죽었고, 그 칼은 소년이 얼마 전 상점에서 구매한 특이한 문양을 가진 칼과 같은 것이었다. 소년의 집 건너편에 사는 여인은 기차가 지나가는 사이로 소년이 아버지를 찌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소년은 그저 아버지와 다투고 심야영화를 보러 갔을 뿐이라고 말했으며,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죽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영화가 무슨 영화였고, 어떤 내용인지,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참고로 위의 진술과 증언, 증거들을 기반으로 검사는 소년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며 국선변호인인 소년의 변호사는 론을 포기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묻겠다. 소년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소년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해야 한다. (ⓒ 강일중)


모든 진술과 증거들이 소년이 유죄라고 말하고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역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만장일치로 판결을 해야 하는 극 중 배심원들은 지독히도 덥고, 냄새나는 낡은 토론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배심원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 너무나도 당연한 판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답은 명료해 보인다.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했던 소년이 아버지와 다투고 아버지를 살해한 후, 어쭙잖은 알리바이를 위해 영화관에 들렀다가 미처 회수하지 못한 칼이 생각나 집으로 돌아왔다가 잡힌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배심원 평결 장면 (ⓒ 스테이지톡)


배심원들은 평결을 시작한다. 민주주의 하에서 이루어지는 평결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극 중 배심원제의 기준은 만장일치제다. 배심원단 대표를 맡은 1번 배심원은 투표를 진행한다.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유죄. 열한 명이 유죄를 결정했다. 배심원은 열두 명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 표는 어떻게 된 걸까.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다. 한 사람이 손을 들지 않고 앉아 있다. 8번 배심원이다.


그러면 당신은 무죄라고 생각한다는 거요? 질타에 가까운 한 배심원의 질문에 8번 배심원은 대답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유죄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저까지 유죄를 결정하면 한 소년의 생명이 여기서 끝난다는 겁니다. 우리, 이 소년의 목숨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대화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8번 배심원의 '합리적 의심'


8번 배심원은 담담하게,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 말을 시작한다. 그의 말은 온통 가정과 의심이다. 만일, 소년이 죽인 것이 아니라면요? 소년이 단지 너무 겁을 먹어서 자신이 본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어쩌죠? 소년의 변호인은 국선 변호인이라서 사건에 소홀한 것 같았어요. 소년이 충분한 변론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이건 부당하지 않나요? 검사 측이 제시한 증거와 증인들이 부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8번 배심원은 열 한명이 유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생긴 의문점을 끊임없이 내뱉는다. (ⓒ 아트인사이트)


토론장은 시끄러워진다. 짜증과 긴장감이 뒤섞이고, 언제나 그렇듯 다수는 소수의 의견을 매장한다. 모든 증거가 소년이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지 않소? 특히 이 칼, 나는 이런 문양의 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상점 주인이 이 칼을 소년이 샀다고 증언했지 않소? 소년은 이 칼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다고 했고, 그 칼이 소년의 아버지의 가슴에 꽂힌 채로 발견됐소. 이것이 가장 명확한 증거가 아니라 뭐란 말이오?


칼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8번 배심원은 증거물을 볼 것을 요청한다. 재판장에서 증거물로 수 없이 보았던 그 칼. 증거물인 칼이 토론장으로 들어오자 8번 배심원은 주머니에서 칼을 하나 꺼내 증거물인 칼 옆에 꽂아버린다. 같은 칼이다. 첫 번째 합리적 의심.


8번 배심원은 소년이 샀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칼을 가지고 와 다른 배심원들의 관념을 부순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수강했던 과목의 이름은 '비판적 사고'였다. 수업은 철저히 논증으로 구성됐고, 겉으로 볼 때는 논리적으로 보이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부숴가는 것이 수업의 흐름이었다. 대학생이라면, 보이는 것을 보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단다.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나름의 논증을 거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야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이다.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남이 보여주는 것을 믿는다. 언론이 말하는 것을 신뢰하고, '전문가'들의 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권력과 자본의 목소리를 믿는다. 열명의 배심원들은 무엇을 보고 소년에게 유죄를 주었을까. 영화 〈배심원들〉에서 대기업의 비서실장인 5번 배심원은 말한다. 사건에 대한 진실들은 법률적인 전문성이 있는 재판부가 다 알아서 검증한 겁니다. 우리는 그저 윗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니까요.


8번 배심원의 합리적 의심은 다른 배심원들에게도 '생각'을 하게 한다. (ⓒ 아트인사이트)


8번 배심원의 의심은 이제 시작이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인 특이한 문양의 칼이 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합리적인 생각이 검증된 후 배심원들은 8번 배심원의 의심에 따라 '생각'을 시작한다. 건너편에 사는 여자는 기차가 지나갈 때 소년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보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래층 노인은 소년이 "죽여버릴 거야!"라고 외치는 소리와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죠.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지나가는데 노인이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의심.


노인은 소년이 소리를 지른 후, 사람이 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어요. 침실에 있던 노인이 현관문까지 15초 내에 뛰어가서 소년이 도망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요? 세 번째 의심. 8번 배심원은 아파트의 구조도를 요청한다. 그리고 다리가 불편했던 노인의 걸음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 아무리 빨라도 15초 내에 현관문까지 가는 것은 무리다. 그때, 은퇴한 노인인 9번 배심원이 말한다. 어쩌면 그 노인은 외로웠던 걸지도 몰라. 어떤 사람도 혼자 사는 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증언했던 게 아닐까? 그들은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니까. 그렇게, 한 명 두 명 유죄가 무죄로 바뀌기 시작한다.


말(言)이 넘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썬팍)


8번 배심원이 던진 작은 돌은 다른 열한 명의 배심원들에게 큰 파장을 주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 그것을 통해 배심원들은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내 앞에 던져진 진술과 정황이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 판별하기 시작한다. 8번 배심원의 합리성이 다른 열한 명의 배심원들의 생각에 파장을 일으켰다면, 이 극을 보는 우리 관객들에게는 바로 이 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그 돌을 던지는 셈이다.




민주주의책임과 무게

물론, 모두가 8번 배심원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 아트인사이트)


소년이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8번 배심원을 넘어 과반수 배심원들의 목소리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들과의 대립은 계속된다. 재판부가 보여주었던 정황과 증거들이 모두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증명됨에도,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그리고 처음에는 너무나도 단단해 보였던 그들의 주장이 조금씩 어거지로 보이기 시작한다.


슬럼가 놈들은 모두 범죄자에 살인자라는 10번 배심원의 말과, 아들과의 불화를 사건에 투영하여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3번 배심원, 그리고 소년의 범죄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저 야구를 보러 가기 위해 빨리 평결을 끝내야 한다는 7번 배심원의 말은 이제는 모두 너무나도 몰상식한 말로 들린다. 너무나도 완고해 보이던 이 지진한 싸움은 건너편에서 살해장면을 목격했다는 여자의 코에 안경을 쓴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 9번 배심원의 극적 발견으로 종말을 맞는다. 결국 그 목격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든 배심원들은 무죄를 선언하고 만다.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하는 10번 배심원의 연기는 발군이다. (ⓒ 썬팍)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아버지를 죽인 소년의 유무죄를 평결하는 한 재판을 다루지만, 사실 이 토론장의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사건이 유죄에서 무죄까지 흘러가는 동안, 우리는 극을 통해 열두 명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본다. 각각 배심원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현재의 배경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토론을 통해 개인이 변화하는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무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도,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도 모두 배심원들이라는 점이다. 소년의 범죄 여부에는 관심조차 없는 너무나 무책임한 7번 배심원도, 끝까지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10번 배심원도 모두 정당하게 선정된 배심원들이다. 그들 역시 배심원단을, 우리의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고 민주주의가 안고 가야 할 책임들이다.


ⓒ 김솔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기존 희곡에서는 모두 남자로 구성되었던 열두 명의 배심원 중 세 명을 여성 배역으로 바꾼 류주연 연출의 선택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시대가 변하면, 극도 변할 수 있고 그것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성 배심원들의 대사에 젠더적 의미가 거의 담겨있지 않음에도 그들이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결국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의 대립과 반목을 통해 우리가 공동의 합의를 창출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합의의 기반에는 합리적 의심과 논증이 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만들어진 진실이 아닌, 개인의 합리적 사고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집단지성이다. 무나 당연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한 번은 고민하고 토론해보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 극단 산수유


글을 닫으며, 다시 한번 묻는다. 소년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열두 명의 배심원은 결국 무죄를 평결했다. 8번 배심원의 영웅적인 이의제기와 추리에 따라 모든 배심원들이 마음을 돌리고, 재판부마저 소년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소년의 억울함이 해소되기를 바라겠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그들이 밝힌 것은, 재판부가 주장한 사실들로 소년의 유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이지 소년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확증은 아니다.


결국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아버지를 살해한 소년의 유무죄를 가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저, 토론하고 논쟁하고 합의하고 번복하는 우리네 사회를 적나라하게 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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