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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May 02. 2019

그냥, 숨 좀 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들은 왜 질 싸움을 시작했을까?

누구에게나 뜨거운 시절이 있다. 분노해야 할 일에 쉽게 마음이 동하고, 해야 할 말은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그렇게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때가 있다. 눈으로만 보고 있자니 피가 끓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소리를 치고 악을 지르고 목소리를 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분노는 때때로 개인을 넘어 사회로 퍼지기도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민주화의 시기가 그러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촛불의 열기가 그랬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하지만 뜨거움은 그 온도만큼이나 위험을 담고 있다. 열(熱)은 기본적으로 마찰이 있을 때 생긴다. 부싯돌이 부딪칠 때 불똥이 튀는 것처럼, 우리 몸의 열기도 몸속 세포와 세포가 진동하며 부딪치는 충돌의 발현이다. 충돌은 항상 아픔을 내포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찰을 피하려 한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走爲上策)은 무작정 도망가라는 것이 아니라, '이기지 못할 싸움은 일단 피해라'는 뜻이다. 질 것이 뻔한 싸움을 하는 것만큼 무식하고 멍청한 짓은 없다.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연극 〈보도지침〉 중 기자 김주혁과 편집정 김정배의 기자회견 장면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세상은 늘 바보와 멍청이들에 의해 변해왔다. 당장 자기 살 길보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에 집중했던 사람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사지(死地)로 접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한 마디 목소리를 던지기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되기를 자처했던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변해왔다. 말하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일을 굳이, 굳이, 굳이 말하는 바보들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냥, 숨 좀 제대로 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바보들, 그것도 아주 상 바보들의 이야기


연극 〈보도지침〉은 그 바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86년에 있었던 한국일보 기자 김주언의 『말』지를 통한 '보도지침 폭로 기자회견'이 배경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많지만, 역사의 현장 속 한 사건을 무대로 그대로 옮긴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영화와 달리 연극은 공간적 제약이 크고, 역사적 사실 자체로는 연극적 흥미 요소들을 접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고증은 다큐멘터리의 영역이다. 때문에 연극은 주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창작된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의 인물, 관계, 갈등을 통해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연극 〈보도지침〉 포스터와 기자회견 이미지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보도지침〉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기보다 실제 보도지침 폭로 기자회견이 왜 일어났으며, 그 사건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폭로한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그 시대의 인물들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보도지침〉은 흥미로운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바로 법정이다. 이 극은 시작부터 끝까지 재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재판 속 인물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삽입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재판 속에서는 그들 스스로의 이름보다 법정 속의 상황에 맞는 역할인 피고, 변호사, 검사, 판사로 불리게 되고, 재판의 액자 속에서는 각자의 이름으로 불린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듣기만 해도 무겁고 진중한 이 극의 재미와 의미를 위해 극은 사실과는 관계가 없는 새로운 설정을 하나 가지고 들어온다. 법정 안에서는 피고와 변호사, 검사로 대립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사실 모두 한국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동창생들이다. 이들은 동아리 활동으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한국대학교 연극반'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연극반의 지도교수가 바로 법정에 서 있는 판사다. 결국, 과거에는 한국대학교 연극반에서 함께 숨 쉬고, 연기하고, 술 마시던 이들이 세월이 흘러 '보도지침 폭로 기자회견 재판'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법정에서 피 튀기게 논쟁을 벌이는 이들은 사실 한국대학교 연극반 동기동창생들이다. (ⓒ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기소를 한 원고 측 검사, 그리고 피고 측 피고인들과 변호사가 대학 시절에는 모두 친구였다는 설정의 아이러니는 극을 한 층 가볍게 만듦과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늘려준다. 도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학 시절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동아리방에서 동고동락했을 친구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비난하게 된 것일까?




1986년 9월, 그날의 기억


이 연극의 배경은 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사로 전달하던 언론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인 이른바 '보도지침'을 한국일보 기자 김주언이 폭로한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이 사건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망사건과 함께 1987년에 일어난 6월 민주항쟁의 단초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일보 기자 김주언은 왜 보도지침을 폭로했을까?


1986년 보도지침 특별호를 발간한 월간 『말』(좌)과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보도지침 폭로 기자회견의 당사자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우)


사건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김주언 기자는 우연한 기회에 편집실 서무 책상에 보도지침이 철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무려 300장에서 400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는 이를 월간 『말』의 초대 편집장이자 서울대 문리대 72학번 동기인 김도연(당시 민주통일민족운동연합 홍보실장)에게 알리고, 김도연은 김주언에게 이를 빼내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김주언은 보도지침을 복사해 김도연에게 전달했다.


김도연은 보도지침 복사본을 가지고 민주통일민족운동연합에 가지고 가지만, 민통련에서는 이 문건을 해직기자들로 구성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발간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민언협은 당시 85년 6월부터 두 달에 한 번 꼴로 기관지 『말』을 발간하고 있었다. 민언협 사무국장 김태홍은 당시 민언협 멤버였던 신홍범, 당시 『말』의 편집장인 홍수원 등과 함께 보도지침을 편집한다. 홍수원은 20평 남짓의 비밀 편집실 한쪽 구석에서 85년 10월부터 86년 8월까지 총 688건의 보도지침을 정리하고 해설을 붙인다. 대표적인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영화 〈1987〉에도 등장한 보도지침.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보도지침을 지우고 "들이받아!"를 외친다. (ⓒCJ엔터테인먼트)


1985. 10. 19. '농촌 파멸 직전' 기사 보도하지 말 것
1985. 10. 20. 대통령 민속박물관, 현대미술관 시찰. 충실하게 보도해주기 바람
1985. 10. 22. 야당 질문 내용은 내용 빼고 '그저 했다'라고 보도할 것
1985. 11. 20. '전투기 구매 관련 뇌물' 일체 보도하지 말 것
1986. 01. 31. 학생 시위는 결정적인 상황 외에는 묵살할 것
1986. 04. 19. 대통령 집무실, "목민심서가 눈길을 끈다"라고 쓸 것
1986. 05. 15. 광주사태 유가족 인터뷰는 싣지 말 것
1986. 07. 17.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보도지침. 검찰이 발표한 조사 내용만 보도할 것,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고 하지 말고 '성모욕 사건'으로 할 것,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 내용 싣지 말 것, 반대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 『말』 특집호, 「권력과 언론의 음모」, 1986년 9월 6일 발행 중 일부 발췌

보기만 해도 유치하지 않은가? 이 내용들은 모두 실제로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을 통해 각 언론사로 전달되었던 보도지침들이다. 김주언 기자는 훗날 인터뷰 기사에서, 학창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와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거대 언론사에서 기사조차 제대로 싣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폭로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 기자의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86년 9월 9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사도회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송건호 의장의 말을 시작으로 보도지침 폭로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언론의 자유를 바라는 언론인들과 한승헌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11명의 변호인단의,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이 계속된다.


"오늘 우리는 이 나라 언론통제의 구체적 실증이요, 언론 상황의 실상을 증거 하는 문화공보부의 언론사에 대한 보도지침 자료집을 공개, 발표하는 바이다."




각자의 독백을 찾아서


연극으로 돌아오자. 극은 위의 사건을 그대로 들고 와서, 그 사건의 뒷이야기들을 법정에 흩뿌린다.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은 기자 김주혁으로, 월간 『말』 관계자인 김도연/김태홍/신홍범/홍수원은 월간 『독백』의 편집장인 김정배*로, 그리고 실제 재판의 변호를 맡았던 11인의 변호인단을 대표하는 인물인 한승헌 변호사는 변호사 황승욱으로. 거기에 가상의 인물인 검사 최돈결과 판사 송원달을 더한다.


그들은 어떻게 그곳에서 만났을까? 한 때는 친구였던 이들이 어떻게 법정에서 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일까?


보도지침 폭로의 주인공, 기사 김주혁과 편집장 김정배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신념을 만들어가듯이, 연극 〈보도지침〉 속 인물들에게도 각자가 살아온 길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스무 살, 가장 뜨거웠던 그 시절에는 모두가 같은 꿈을 꾸었지만, 그 후에 걸어간 길에 따라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한국대학교 연극반 시절, 학교 동기이자 연극반 멤버인 주혁과 정배, 승욱과 돈결이 있었다. 이들은 지도교수이자 연극반 선배인 원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극반 가을 정기공연으로 돈결이 제안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를 올리게 된다.


국립극단에서 공연 중인 베르토트 브레히트의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 국립극단)


〈갈릴레이의 생애〉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를 다룬 연극이었지만, 제5공화국 시대에 공산주의권 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은 모두 검열로 인해 금지된 작품이었다. 돈결과 친구들은 '우리나라는 헌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외치지만, 결국 한국대학교에 상주하던 사복경찰들에 의해 공연이 발각되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받은 고문을 계기로, 이들은 각자 삶의 방향성과 지침을 정하게 된다. 그리고, 주혁은 기자가, 정배는 해직 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월간 『독백』의 편집장이, 승욱은 변호사가, 돈결은 검사가 된다. 다른 친구들은 연극반 사건을 계기로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편에 서게 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가호 아래 혼자 고문을 받지 않았던 돈결은 자신의 배경과 사상이 부딪치는 혼란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의를 찾아 법정에서 검사석에 자리하게 된다.


'19 시즌 〈보도지침〉 포스터 (ⓒ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결국 〈보도지침〉은 각자의 '독백'에 대한 이야기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던 제5공화국 시대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솔직한 심정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법정이라는 틀을 통해 밖으로 뱉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보도지침을 고발한 주혁과 정배, 승욱뿐 아니라 국가와 정의를 옹호하는 돈결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판사 원달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제로 극의 진행은 법정의 순서를 따르지만, 무대가 재판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판사인 원달 역시 극의 초반에 이 재판정은 재판정이자, 광장이자, 무대라고 이야기하고 우리가 하는 이 재판 역시 재판이자, 토론이자, 연극이라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이 극의 내용은 실제 역사 속에서 불합리했던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사건을 담고 있지만, 각 인물들에 대한 선악 판단은 명확하지 않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은 시대 속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관객들은 극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재판은 불합리한 재판이고, 실제 보도지침 재판에서 한승헌 변호사가 변론했던 것처럼 '불이 난 것을 신고했는데 방화범이 신고자를 잡아 가두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원고 측과 피고 측 중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 결론은 대단히 명확하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설사 그 내용이 부적합할지라도 개인의 목소리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극을 보고 나서 검사 돈결과 판사 원달의 상황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고 판단하지만, 극은 이 사건에 속한 모든 이들의 독백을 들려줌으로써 관객들에게 판단을 유보하는 측면이 있다. 필자 이 역시 극을 통해 일종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무대에, 토론장에, 법정에 찾아와 이들의 독백을 들어보라. 시대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넘어, 그 시대 속에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될 것이다. 그 시대의 보도지침은 끝났지만, 여전히 목소리를 통제하려는 이들은 남아 있기에, 연극 〈보도지침〉은 현시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냐고,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1986년 이들에게도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도지침〉의 한 대사를 인용해 대신 답한다.

정말, 몰라서 묻나?


(* 다수의 보도자료에서 편집장 김정배를 언론인 김종배를 모티프로 한 인물로 해석하고 있으나, 실제 모델은 김주언의 친구이자 월간 『말』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김도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 김종배가 연극 「보도지침」 연습에 김주언 기자, 한승헌 변호사와 함께 참관했던 것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김종배는 1966년 생으로, 보도지침 폭로 기자회견이 있었던 1986년에는 21살이었다.)


(**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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