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와 픽션 속 상상력이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
〈아랑가〉가 돌아왔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극이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했던 이유는 시대성을 가진 사극이 무대로 녹아났을 때 가지는 대중적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마음으로 바랐던 이유는 〈아랑가〉가 한 번 올라오고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한 극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아랑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아랑가〉의 초연이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와 예그린앙코르를 거쳐 충무아트센터(당시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막을 올렸을 때, 필자는 충무아트홀 대학생기자단 필진으로 활동하며 웹진 'MUST'의 초석을 닦고 있었다. 당시 충무아트센터에서 하는 거의 모든 공연들을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 그중에는 막 공연을 시작한 〈아랑가〉도 있었다. 필자 역시 동기 기자들과 함께 극을 보고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아랑가〉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도미설화'와 백제로 파견된 고구려의 첩자 '도림'의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설화인 '아랑설화'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결합되어 탄생한 일종의 '팩션(Faction)'이다. 그래서, 2016년 초연 당시 필자는 〈아랑가〉가 역사적 사실 혹은 이야기들과 얼마나 일치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다. '도미설화'라는 낯선 옛이야기를 모티프로 함에도, 극은 적절한 상상력과 세련된 연출, 그리고 그야말로 환상적인 넘버를 통해 단조로운 설화를 현대적 뮤지컬로 각색해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랑가〉가 역사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했다고 본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의 미학, 판소리와 뮤지컬의 결합, 고루한 주제의식을 고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연출 등이 그러하다. 지금부터, 〈아랑가 〉의 매력을 조금 들여다보자.
극에 대해 소개한 많은 기사나 홍보들이 '삼국사기'를 인용해 아랑을 도미의 아내로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아랑은 도미의 아내가 아니다. 이 극에서 아랑을 도미의 아내로 '차용'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극은 총 3개의 이야기를 1개의 링크로 묶어 놓은 구조다. '도미설화'와 '아랑설화', 그리고 '도림'의 이야기가 큰 골자이고, 이것을 얽어낸 것은 1937년 근대역사소설가 박종화의 소설 '아랑의 정조'다.
'도미설화'는 극 흐름의 중심이 되는 서사로, 가장 큰 모티프 비중을 가져가는 설화다. 도미설화(都彌說話)를 잠시 살펴보자.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이 펴낸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수록된 설화. 백제 개루왕(蓋婁王) 때 평민이었던 도미(都彌)와 그의 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미는 의리를 아는 사람인데 그의 처 역시 아름답고 절행이 있어 두루 칭찬을 받았다. 이 소문을 들은 개루왕은 도미를 변방으로 보내고 거짓으로 신하를 왕처럼 꾸며 도미의 처를 시험하지만 도미 처 역시 계집종을 자기처럼 꾸며 시중을 들게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고 강제로 배에 태워 띄워버리고는 도미 처를 입궁시켜 강제로 범하려 하였다. 도미의 처는 월경(月經)을 핑계로 왕을 멀리하고는 궁을 탈출하여 도미를 만나려 강가에서 울부짖었다. 그때 물 위에 조각배가 떠내려 오므로 그것을 타고 천성도(泉城島)에서 남편을 만났다. 도미 처는 눈이 먼 남편과 함께 고구려 산산(蒜山)으로 가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삼국사기」 속에 있는 도미설화에는 '도미'와 그 '처'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도미의 처가 '아랑'이라는 말은 전혀 나와있지 않다. 사실 아랑은 또 다른 설화인 '아랑설화(阿娘說話)'에 등장하는 다른 세계관 속 인물이다. 아랑설화는 「삼국사기」와 같은 책의 형태로 기록되어있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이며 밀양 영남루에 얽힌 지역 설화이자 전설로,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식의 원령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이 '도미설화'와 '아랑설화'를 처음으로 묶어낸 것이 박종화의 소설 '아랑의 정조'다. 그는 소설을 쓰며 원전에 없는 도미의 아내를' 아랑'이라 명명하는데, 이때부터 다양한 작품들에서 도미의 아내를 아랑으로 차용하는 형태가 생기기 시작한다. 여기에 다시 삼국사기의 이야기인 고구려의 첩자 '도림'의 이야기가 들어오면 〈아랑가〉를 구성하기 위한 모든 이야기의 토대가 마련된다.
사실, 아랑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은 굉장히 많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특정 이야기를 모티프로 상상력을 가미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 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창작의 방식 중 하나다. 독자들이 잘 알고 계실 작품인 영화 〈장화, 홍련〉 역시 원령 설화인 장화홍련전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랑설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아랑설화 자체적으로도 다양한 작품들이 변주되었다. 〈아랑가〉를 만든 작가 김가람과 작곡가 이한밀 역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기 시절 만나게 된 뮤지컬 〈몽유도원도〉를 통해 아랑과 도미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이 중앙대 졸업공연을 통해 지금의 〈아랑가〉로 이어졌다고 하니 이 정도면 역사 속 인물들이 작가와 작곡가를 불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뮤지컬 〈아랑가〉 속에는 작가 김가람의 상상력이 많이 묻어 있다. 역사 속에서는 평민이었던 도미가 극 중에서는 최고의 장군으로 변모시킨 것이나, 아랑을 개로의 꿈속 여인으로 등장시켜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연유를 만들어내는 점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은 극 속에서 모두 설득력 있게 묻어나며 기존 설화를 덮고 〈아랑가〉만의 색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현대극의 재창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랑가〉의 주요 정서는 외로움과 한(恨)으로 정리된다. 사실 극은 도미와 아랑의 사랑보다는, 개로가 가진 인간적인 감정과 외로움, 갈망에 초점을 맞춘다. 아래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초연의 〈아랑가〉는 현재의 모습보다 더 개로의 감정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작가 김가람은 이 작품을 '잡을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인간에 대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각각의 인물들에게 갈망이 있음에도 중심적인 감정을 이끌고 가는 것은 단연 개로였다.
그리고 그 중심 정서를 표현하는 데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인물이자 비인물인 '도창(導唱)'이다. 도창은 극 속에서 일종의 나레이터 역할을 담당하는데, 다른 인물들을 둘러싼 '운명'이라는 관념이 의인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느껴진다. 도창은 〈아랑가〉라는 뮤지컬 속에서 일반적인 노래 대신 판소리, 즉 '창'을 함으로써 상황의 비극성과 인물들의 감정을 매우 날카롭고 처절하게 전달한다.
'도창(導唱)'은 '노래를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초연 때는 나레이터의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도창은 2019년 재연으로 넘어오면서 역할이 다소 강화되어 극 중 상황을 중개하거나 연출적인 도구로서의 기능이 더해졌다. 하지만 도창의 가장 큰 기능은 극 중 판소리를 통해 흐름에 균열을 내고 주제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역할이다.
'프롤로그'에서 그녀는 극을 여는 나레이터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가'에서는 개로와 아랑 사이에 개입하여 "산다는 건 무엇인가, 길고 긴 삶에서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가"라 창하며 주제의식을 상기한다. 또, 넘버 '백제의 태양'에서는 국경에서 고구려에 침략당해 죽어가는 백성들의 참상을 직접 판소리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도미의 감정과 상황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아랑가〉 속에 등장하는 창은 초연과 재연에서 모두 도창 역을 맡은 국악인 박인혜가 작창했다고 하니, 이 극은 기획부터 퓨전적인 요소를 띠고 있었다 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런 도창의 역할을 극 속에 자연스레 묻어나게 하는 것이 국악 기반의 선율들이다. 작곡가 이한밀은 초연 때 강필석 배우와 함께 한 인터뷰에서 '타악기 주자가 스무여 가지를, 관악기 주자도 십여 개를 불고, 베이스도 콘트라베이스랑 일렉베이스를 번갈아가면서 연주해요'라고 말하며, 밴드의 혼종성(?)을 자랑한 적 있다. 실제 쇼케이스 때의 밴드 구성을 보면 네다섯 명 정도 되는 연주자 앞에 수많은 악기가 놓인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악기 개수에 맞게 페이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새로운 형식의 인물인 도창의 등장과 국악 기반의 선율로 극은 한국적인 정서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한(恨)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판소리보다 효과적인 방식이 있을까.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송화의 목소리에 한을 담기 위해 그녀의 눈을 멀게까지 하는데 말이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도창과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몸이 객석 아주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외로움과 한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아랑가〉의 색채는 명백한 흰색이다. 개로와 아랑, 도미의 의상은 모두 흰색이고 무대를 구성하고 있는 수실 역시 흰색이다. 흰색은 가장 순결한 색이기도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색이기도 하다. 흰색의 무대와 의상은 개로가 아랑을 탐하지 않았을 때, 도미와 아랑의 사랑이 온전할 때는 순결이었다가, 그 순결의 과정이 개로에 의해 침해되며 점점 비극이 되어간다.
초연 때 〈아랑가〉를 보며 모두가 감탄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극의 시작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의상과 무대가 극이 끝나갈 무렵에는 너무나도 슬프고 비극적인 색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초연이 올렸던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무대는 굉장히 특이하다. 객석과 무대가 나누어져 있는 일반적인 무대가 아니라, 반원형의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의 ABC구역이 각각 왼쪽, 중앙, 오른쪽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때문에 무대에 어떤 장치를 하던 관객들의 시선은 중앙을 향하게 되고,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표정에 대한 집중도가 정면만 바라볼 때보다 굉장히 높아지게 된다. 물론 자리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배우들의 옆모습만 보다가 오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초연 〈아랑가〉는 이 무대를 십분 활용하여 무대 디자인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흰 수실들을 늘어뜨려 최소한의 공간구분과 조명 활용에 사용했다. 특히, 인물들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조명으로 십자의 선을 그어 바둑판과 같이 구분했는데, 이런 부분들이 극의 분위기나 무대의 모양과 썩 잘 어울려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이 다소 크고 〈아랑가〉가 퍼포먼스적으로 역동적인 극은 아니다 보니 두 명이 나오는 장면이나 혼자 나오는 장면에서는 무대를 다 채운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해 아쉬운 마음은 있었다.
재연에서 대학로 TOM(티오엠) 극장으로 넘어오면서 무대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형 무대가 액자식(프로시니엄) 무대로 바뀌면서 관객들의 시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시선의 방향성이 변하면서 무대는 실제 액자 속으로 들어왔고, 연출인 이대웅은 이 부분에서 '이야기 안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했다. 또한 그 이야기가 관통하는 주제를 초연 때는 없었던 오브제들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 왕좌를 비롯한 오브제들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연출들을 도입했다. 배우들 역시 바뀐 무대에 맞추어, 조금 더 축소된 공간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인물 간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위에서 말했던 개로 중심의 관계를 희석하고 아랑을 중심으로 개로, 도미의 삼각관계를 강화하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넘버 '어둠 속의 빛'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인물 간의 관계가 선명해지고 한 개인보다 전체적인 인물 간의 관계로 초점이 맞춰지는 효과를 거뒀다.
여담으로, 〈아랑가〉의 거의 모든 넘버를 사랑하지만, 필자가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랑과 도미가 부르는 '우리 가요(Part A)'다. 이 넘버에는 뮤지컬 팬들이 악마의 돌림노래 파트라고 부르는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이 등장하는데,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멜로디와 달콤함에 절로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한 번씩 들어보시길. 이 멜로디는 극의 메인 테마와 같이 활용되는데, 후반부에서는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넘버에서 다시 처절하게 변용된다. 두 번 들어보세요.
〈아랑가〉가 비판받는 지점은 흥미적인 요소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도미설화' 자체가 그렇게 참신한 설화는 아닌 데다가, 사랑의 구도를 깨고 싶어 하는 권력자와의 삼각관계, 그 안에서의 외로움 등은 다른 장르에서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단골 소재이기 때문이다. 첫 부분에 언급했듯 사극의 형식을 무대로 옮기면 이런 문제들이 자주 발생한다. 고전적인 소재는 대개 현대적인 감성이나 역동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극에 익숙한 요즘 시대의 관객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사극을 베이스로 한 많은 뮤지컬/연극 작품들이 작품성은 인정받되, 대중성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특유의 정서와 감성에 있다. 우리 음악과 뮤지컬을 적절하게 배합해 만들어 낸 곡의 색깔은 사극에도, 현대극에도 어울리며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기반이 되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성을 크게 띠지 않는 '설화'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사건의 진위성을 따지기보다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게 된다.
다른 것을 떠나, 이 극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시각적 아름다움이 되었건, 넘버의 아름다움이 되었건, 혹은 극 중 인물들의 외로움과 한에 서려있는 역설적 아름다움이 되었건 〈아랑가〉를 보는 관객들은 극에서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아름다움이 남은 공연에서도 이어져, 삼연, 사연으로 〈아랑가〉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