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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Dec 10. 2019

조승우는, 다르다.

남덕이 보는 뮤지컬 배우 조승우

"팀장님, 저 지난 주말에 뮤지〈스위니토드 조승우로 보고 왔는데 진짜 미쳤어요."

"야, 근데 조승우가 그렇게 잘해? 왜 그렇게 조승우, 조승우 하는 거야?"

"조승우는 조승우니까요."


최근 조승우 배우가 브라운관을 잠시 떠나 다시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공연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에게 '덕내'를 풍길 기회가 적어졌다. 본디 뮤덕으로 조금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들이 잘 모르는 배우와 캐스팅을 추천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보러 간 지인이 '야, 나 그 배우 원래 몰랐는데 정말 너무 잘하더라. 역시 네가 추천해 준 공연은 달라'라고 할 때, 비로소 뮤덕으로서의 관극 추천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발사가 이렇게 잘생기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조승우가 2018년 드라마 '라이프' 이후 무대로 돌아오며 내 추천의 폭이 줄어들었다. 요즘의 추세는 이렇다.


"형, 저 이번에 〈지킬 앤 하이드〉 보러 가려고 하는데, 누구로 보면 좋아요?"

"...일단 조승우랑..."

"김 대리, 〈스위니토드〉 재밌어? 와이프랑 보러 가려고 하는데 누구로 봐야 돼?"

"일단 조승우요."


그렇다. '일단 조승우'다. 물론 위에서 말한 〈지킬 앤 하이드〉와 〈스위니토드〉에는 조승우가 아니더라도 정말이지 엄청난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 홍광호, 박은태, 민우혁 등은 굳이 뮤지컬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이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조승우'가 나오는 이유는, 설령 내 본진(가장 좋아하는 배우)이 조승우가 아니더라도 조승우 배우의 공연을 놓치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신적인 위치에 올려놓았을까?




조승우의 공연에 조승우는 없다.


그렇다. 조승우의 공연에 조승우는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조승우의 공연에는 배우 조승우가 아니라 무대 위의 인물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조승우가 연기하는 〈지킬 앤 하이드〉의 무대 위에는 배우 조승우가 아니라, 인간의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과학자 지킬박사와 하이드만 있다. 조승우가 연기하는 〈스위니토드〉에는 스위니토드를 연기하는 조승우가 아니라, 복수심에 미쳐 사람들을 살육하는 살인마 이발사 스위니토드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필자가 생각하는 조승우 배우의 최대 매력은 인물 소화력이다.


이것은 조승우가 아니다. 분노한 하이드일 뿐이다.


인물 소화력은 단지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배우 스스로가 배우 자신의 색깔을 버리고 그 인물이 되어야 하고, 관객들도 그렇게 느껴야 한다. 조승우는 그 부분에서 정말이지 탁월한 배우다. 조승우의 인물 소화력이 너무도 매력적인 이유는, 그런 연기와 집중을 통해 관객들에게 가장 몰입도 높은 무대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스위니토드〉를 보고 나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승우 말고 누가 스위니토드를 할 수 있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스위니토드〉는 2007년 한국에서 초연을 올렸으며, 무려 이 때는 스위니토드 역에 조승우는 없었다. 조승우가 이 극에 합류한 것은 2016년 재연 때부터다. 그러니 조승우 외에도 수 명의 배우들이 스위니토드 역을 거쳐갔을 것이다.

막 출소한 범죄자 같은 스위니 토드 역의 조승우 배우

그럼에도 여전히 조승우가 아닌 스위니토드는 잘 상상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스위니토드'라는 인물은 조승우가 연기한 그 모습으로 각인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같은 배역을 볼 지라도, 이제 나는 조승우가 만들어놓은 인물을 기반으로 무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조승우의 연기는 몰입도가 높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승우가 사랑받는 이유 역시 비슷할 것이다. 영화 〈타짜〉에서 너무나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어 전 국민에게 '고니'로 인식되어 있는 조승우지만,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에서, 또 〈라이프〉의 구승효에게서 고니의 향기를 느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맡은 이전의 배역을 완전히 지워버릴 만큼 놀라운 연기와 인물 소화력을 보여주는 배우가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다.




배우의 완성



"야, 근데 조승우 노래 잘해?"


뮤지컬 배우 조승우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수식어같이 따라붙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뮤지컬 배우' 조승우를 잘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조승우의 노래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조승우가 부른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지금 이 순간 계의 교과서' 같은 곡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승우는 노래 잘한다. 조승우의 데뷔는 본인도 말했듯 '어쩌다 보니' 영화 〈춘향뎐〉이 되었지만, 그는 원래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고, 데뷔 이후에도 많은 무대에 선 뮤지컬 배우다. 그러니 어쩌면 '조승우 노래 잘해?'라는 질문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조승우가 섰던 뮤지컬들을 보면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 〈렌트〉, 〈맨 오브 라만차〉 등 하나같이 탄탄한 노래 없이는 소화하기 힘든 작품들이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 역을 맡은 조승우


그렇다고 조승우가 뮤지컬 배우 중 가장 노래를 잘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성대가 섹시한 배우로 주로 소개되는 홍광호, 박은태, 전동석 배우 등과 달리, 조승우의 노래는 어쩌면 평범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조승우의 노래가 결코 아쉽지 않은 이유는, 그가 노래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천부적인 소질이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가 연기를 노래하는 장르이듯, 뮤지컬은 노래를 연기하는 장르다. 뮤지컬에서의 노래(넘버)는 단순히 듣기 좋은 아리아가 아니라, 장면과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그렇기에 단순히 악보에 맞게 멋진 목소리로 노래는 것을 넘어, 넘버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들어는 봤나, 스위니 토드?


그런 점에서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조승우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연 중 하나다. 그 흔한 고음 노래 하나 없고, 두 시간 반 내내 공연을 보고 나와도 '들어는 봤나, 스위니토드'라는 한 소절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는 괴상한 넘버 속에서, 오직 남는 것이라고는 토드의 분노와 복수심뿐이기 때문이다. 작곡가 손드하임의 불협화음 속에서 조승우가 부르는 토드의 넘버는 그 감정과 톤의 높낮이만으로 충분한 소름을 선사한다.


조승우가 가진 연기력과 배역 소화력, 몰입도, 그리고 감정을 한 극에서 느끼고 나면 단언컨대 조승우가 가장 '완벽한 배우'인 이유를 알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조승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조승우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더 보아야 하는 이유는 지나간 공연과 지나간 조승우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고대하고 있는 조승우의 공연은 뮤지컬 〈베르테르〉다. 이전에 말했듯 〈베르테르〉는 필자의 최애 뮤지컬이다. 조승우가 마지막으로 베르테르를 한 4년 전에 필자는 돈이 없어 조승우의 베르테르를 보지 못했는데, 조승우는 올해 마흔 살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젊은 베르테르'를 하기에는 젊은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농담 반 진담 반인 위의 이야기는 사실 진담이 절반 이상이다. 보통 뮤지컬 배우들이 주연을 하는 나이 때를 생각해 보았을 때, 조승우가 같은 작품에 또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하고있는 조승우의 공연이 그 공연에서 마지막 조승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조승우가 아니다. 그래서 봐야 한다. 앞으로 또 조승우 같은 배우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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