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은?
앞선 글에서 제목을 바꾼 뮤지컬의 예로 뮤지컬 〈사의 찬미〉를 들었다. 〈사의 찬미〉는 초연 때의 제목인 〈글루미데이〉를 삼연부터 〈사의 찬미〉로 바꾸었으며, 이를 통해 좋은 마케팅 효과를 보았다. 극의 분위기를 강조하던 제목을 '사의 찬미'라는 명확한 소재로 끌어내 극 중 인물인 윤심덕과 김우진을 관객들의 눈 앞에 서게 함으로써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꼭 소재를 강조하는 것만이 공연을 홍보하는 좋은 마케팅적 기법인 것일까? 아무래도 더 구체화된 내용일수록 마케팅의 소재로 활용하기가 좋고, 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 보다 효과적인 것일까?
그 반대의 사례가 여기 있다. 오스트리아의 비운의 황태자,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다. 〈더 라스트 키스〉는 2006년 헝가리에서 초연한 뮤지컬로 원제는 〈Rudolf〉였고, 2012년 한국 초연에서의 제목 역시 〈황태자 루돌프〉로 무대에 올랐다. 2014년 재연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은 2017년 삼연에서 돌연 제목을 〈더 라스트 키스〉로 바꾸어 다시 관객들 앞에 섰다.
〈사의 찬미〉가 주제적 분위기에서 선명한 소재로 제목을 바꾸었다면, 〈더 라스트 키스〉는 오히려 '루돌프'라는 명확한 인물적 소재에서 극의 주제로 타이틀을 변경한 경우에 속한다. 극이 황태자 루돌프의 마지막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목은 위에서 말했던 원작 소설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원제 A Nervous Splendor)'에서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제목은 바꾼 이유에 대해 제작사인 EMK Musical Company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헝가리 등 유럽에서는 작품 제목을 'Rudolf'라고 표기하는데, 유럽 사람들은 이 이름을 들으면 바로 황태자를 떠올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의 이름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 특히 겨울에 개막하면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된다는 의견이 많아 제목을 바꾸게 됐다. (ⓒ서울신문)
이는 다소 웃픈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루돌프'에 황태자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대입시키는 유럽권 관객들과 달리 국내 관객들은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대한 문화적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루돌프'하면 산타클로스가 먼저 생각나버리는 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이 뮤지컬을 접했을 때, 프랭크 와일드혼의 영혼을 갈아 넣은 것과 같은 수려한 넘버들 사이로 순간순간 배우의 얼굴에 사슴 루돌프가 겹쳐 보이는 현상을 접했는데, 이런 생각을 한 관객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사실 비슷한 사례는 뮤지컬 〈엘리자벳〉에서도 나타나는데, 같은 역사의 흐름임에도 〈엘리자벳〉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특유의 푸른 컬러가 주는 비극성과, 김준수 배우를 비롯한 초연의 스타 캐스팅이 제목의 이미지를 생각나지 않게 할 만큼 강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개인적으로는 〈더 라스트 키스〉의 넘버들을 몹시 좋아하는데, 특히 '너 하나만', '알 수 없는 그곳으로', '날 시험할 순간' 등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 10개를 꼽아도 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넘버들이다. 위의 웃지 못할 이미지의 비극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제목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새로 바뀐 타이틀인 〈더 라스트 키스〉가 위의 넘버들을 잘 담아낼 만큼 극적이고 뜨거운 제목이기 때문이다.
'루돌프'라는 소재가 담아내던 한정된 인물의 이미지와 달리, '더 라스트 키스', 즉 '마지막 키스'라는 제목은 그 제목만으로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언제나 헤어짐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실제 극의 내용 역시 루돌프 황태자와 그의 연인 마리 베체라의 비극적인 사랑을 조명하는 만큼 그들의 마지막 사랑이 어떠했는지 좇는 이 극의 스토리라인은 변화한 제목과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극은 제목을 바꾸며 극의 메인 컬러인 붉은색을 순백의 흰색으로 함께 바꾸었는데, 이것이 매우 극적인 이미지의 반전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제목의 변신과 함께 한 이 색의 반전이 극에서 루돌프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내고,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의 이미지만을 남겨놓았으니 말이다.
제목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케팅에서 이른바 이야기하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뮤지컬 〈글루미데이〉와 〈황태자 루돌프〉를 알리기 위해 들었던 홍보와 마케팅 비용들은 어쩌면 타이틀의 변경에 쿠크다스처럼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 관객들은 이미 이전의 제목이 인지되었고, 제목을 바꾸면 그 인지된 제목을 바꾸는 만큼의 전환비용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목을 바꾸는 이유는, 자신들의 소중한 작품을 관객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어쩌면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갔을 작품,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작품을 '보고 싶은 작품'으로 전환하여 객석에 다시금 앉게 하는 힘이 분명 '제목'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