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꾼다. 이름. 제목. 뮤지컬. 마케팅. 성공적.
제목을 짓는 건 어렵다. 이 짧은 글만 해도 그렇다. 생각은 '제목을 바꿔서 성공한 두 뮤지컬 작품의 사례를 마케팅적 관점으로 풀어보자'는 것인데, 이를 두고 제목을 수없이 지웠다 썼다. 첫 제목은 '이름을 바꾼 뮤지컬의 공연 마케팅적 고찰'이었다. 마케팅적인 냄새를 조금 풍기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다 보니 마치 논문 같은 제목이 나온 것 같아 한참을 고민했다.
하물며, 공연은 어떨까? 한 번 올라오면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간 막을 내릴 수 없기에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연극이나 뮤지컬 같이 홍보와 마케팅의 영역이 넓지 않은 장르에서는 더더욱이나 제목 한 줄, 단어 한 개가 주는 의미가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바꾸고 올라오는 공연들이 있다. 그들은, 왜 이름을 바꿨을까?
제목을 선정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로 귀결된다. 주제를 강조할 것이냐, 소재를 활용할 것이냐다. 예를 들어 뮤지컬 〈마틸다〉는 명확하게 '소재를 활용한 제목'이다. 마틸다는 사기꾼 아버지와 무식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천재 소녀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마틸다〉의 주제는 '옳지 않은 일을 참지 않는 용기(극 중 번역은 '똘끼(Naughty)'로 되어 있다)가 필요하다!'로 정리할 수 있겠으나, 극은 그 주제보다 '마틸다'라는 천재 소녀에 집중해 제목을 선택했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활용해 마케팅을 진행했다.
반면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이라는 인물 혹은 '독립운동'이라는 소재보다, 극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 독립투사들의 '영웅'적 면모를 극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안중근, 독립투쟁 등 익숙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극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싶었거나, 제목을 통해 극이 주는 감동을 극대화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극의 제목은 관객들의 감상에 기여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연은 기획/제작 단계에서 어떤 제목을 선택할지 고려하게 된다. 해외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국내 창작 혹은 타이틀에 대한 주도권이 있는 경우 제목을 바꾸기도 한다. 일례로,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Legally Blonde)〉는 2009년 한국 초연에서 제목을 영화와 같이 〈금발이 너무해〉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2001년에 개봉한 동명 영화의 인지도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와 제목을 맞춤으로써 1차적인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공연의 이름을 정하는 일은 이처럼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 부담을 무릅쓰고 타이틀을 바꿔 성공한 두 공연이 있다. 바로 뮤지컬 〈사의 찬미〉와 〈더 라스트 키스〉다. 초연 타이틀은 각각 〈글루미데이〉와 〈황태자 루돌프〉였다.
뮤지컬 〈사의 찬미〉의 최초 타이틀은 〈글루미데이〉였다. 1920년대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1926년 8월 4일 현해탄 투신사건을 각색한 이 작품의 제목이 최초에 〈글루미데이〉였던 이유는 성종완 작/연출의 인터뷰에 잘 녹아 있다.
Q. 경성시대를 풍미했던 윤심덕과 김우진, 이 소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개발 당시부터 작품 제목이 '글루미데이'로 먼저 정해져 있었다. 그에 맞는 우울한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는데, 경성시대가 딱 우울한 시대였다. 역사적으로도 일제강점기로 주권이 사라진 시기였지 않나. (...) 그로부터 비롯된 그 시절의 염세주의가 꽤나 낭만적이게 느껴졌다. 그런 감성들이 특히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에 녹아있다. (ⓒ 더뮤지컬)
인터뷰 내용과 같이 최초 극작을 할 때부터 극의 제목은 〈글루미데이〉로 정해져 있었다. 작가이자 연출인 성종완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우울함(Gloomy)'과 관련되어 있었고, 이에 맞는 소재로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초연부터 관객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2015년 돌아온 삼연에서 극을 다듬고, 타이틀을 〈사의 찬미〉로 바꾸고 나서 극은 한층 더 사랑을 받았다.
극이 주제적 분위기를 표현한 〈글루미데이〉와 달리 〈사의 찬미〉는 한층 구체화되고 선명한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사의 찬미'는 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 1926년에 작사/노래한 곡으로 극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었기에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좋은 마케팅적 요소가 되었다. 실제 이름을 바꾸고 나서 역사적인 배경과 맞물린 홍보와 마케팅이 이어졌고, 실제 인물들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가 극에 대한 관심에 반영되었다.
또한 '사의 찬미'라는 제목이 주는 역설감과 멜랑꼴리함은 공연의 포스터와 잘 맞아떨어지며 시너지를 냈다. 죽음(死)을 찬미한다는 제목은 윤심덕과 김우진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묘한 일치감을 주었고, 그것이 또 〈사의 찬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글루미데이〉를 〈사의 찬미〉로 바꾼 선택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만을 전달하던 주제적 제목을 눈 앞에 실존하는 것 같은 소재로 바꾸어 냈고, 그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더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그렇게 〈사의 찬미〉는 자연스럽게 소재를 바탕으로 여러 홍보와 마케팅적 요소를 버무려내 더 많은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 좋은 사례로 기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