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냄새가 나는 뮤지컬을 소개해 드릴게요!
크리스마스 이브다. 올해는 유독 크리스마스 느낌이 덜 나는 것 같다. 거리에서도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캐럴을 찾아보기 힘들고, 호텔이나 백화점에 가야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굳이 회사 근처 호텔 라운지에 들렀다. 라운지에는 큰 트리가 있었고, 동료들과 함께 '도대체 왜 밖에서 보이는 곳에 트리를 만들어놓지 않는 거냐'며 투덜댔다.
매 년 크리스마스 즈음엔 크리스마스 냄새가 나는 공연들을 한두 개쯤 본다. 보통 특별한 날에는 대극장 뮤지컬을 많이들 보지만, 개인적으로는 연말에 웅장한 대극장보다는 중소극장 공연을 보는 것을 더 즐긴다.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공연문화계에서는 계절과 시기에 맞추어 공연을 올려준다. 겨울 냄새가 나는 공연은 겨울에, 여름 냄새가 나는 공연은 여름에 보는 것이 제격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보는 〈맘마미아!〉를 생각해보라. 공연장 밖의 온도는 영하 10도 근처를 맴도는데, 안에서는 따뜻한 지중해 섬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특히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나 뮤지컬은 겨울의 분위기를 담뿍 담고 있다. 공연장 안에 하얀 눈이 내리고 노란 조명이 그 눈들을 비추는 아름다운 무대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혹은 올해를 다 보내기 전에 한번은 공연으로 온기를 더해보는 건 어떨까? 크리스마스를 담은 무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대한 이야기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뮤지컬 덕들 사이에서 '솜'이라고 불린다. 원제인 'The Story of My Life'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애칭으로,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솜덕'들을 양산해 낸 극이다. 극은 두 친구 '앨빈 캘비'와 '토마스 위버'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죽은 앨빈의 송덕문(頌德文, 죽은 사람의 공덕을 기리는 글)을 쓰고 있는 토마스에게 앨빈이 말을 걸어, 그들의 이야기로 송덕문을 완성하는 액자식 회상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백미는 서정적인 노래와 겨울 감성이다. 앨빈의 송덕문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토마스에게 앨빈은 '아는 걸 써, 톰'이라고 말하며 그와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준다. 그가 꺼낸 이야기들은 모두 어렸을 적 추억들로, 각각 넘버들을 통해 그 노래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무대는 대단히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글을 쓰기 위해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가 마침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토마스와, 계속해서 시골에 남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낡은 책방을 운영하는 앨빈의 이야기는 토마스가 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앨빈이었음을 암시하며 절정을 맞는데, 그 부분의 넘버가 'Angels in the snow(눈 속의 천사들)'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하얀 눈밭에 누워 우릴 닮은 천사를 만들었죠!
팔과 다리를 펼쳐 힘껏 파닥거렸죠. 늦은 12월의 햇살 속에서.
이 장면에서 앨빈과 토마스는 이야기를 쓰던 원고를 하늘 높이 던지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내린다. 앨빈과 토마스가 어린 시절 눈이 내리면 밖으로 나가 눈밭에 누워 천사들을 만들던 것처럼, 무대 위의 두 배우도 가장 행복하고 가장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를 슬프지만 아름답다.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이랄까. 무대를 보고 있자면 두 명의 이야기가 주는 따뜻함에 나도 모르게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지금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중이다. 필자는 한 번 봤고, 12월 말과 1월 중순 두 번의 공연이 남아있다. 행복하다.
눈보라 치는 겨울,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작은 무료병원의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씨가 사라졌다! 병원 운영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방송국에 연말 다큐멘터리 촬영을 의뢰한 병원장 '베드로' 신부는 직접 그를 찾아 나서고, 같은 병실에 있었던 알코올 중독자 '숙자'와 치매 노인 '길례'에게 그의 행방을 묻기 시작한다.
수지가 출연했던 동명의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처음 이 드라마가 나왔을 때 혹시 뮤지컬과 관련이 있나 기대를 했는데, 그냥 제목에서 모티프를 딴 정도에 그친 것 같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사라진 환자 최병호를 찾는 추리극(반신불수 환자가 눈 오는 겨울날 갑자기 사라진다니, 무섭지 않은가?)이자 가족 드라마다. 창작 뮤지컬답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주인공 베드로 신부와 자원봉사자 정연을 포함해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성이다.
기부금을 모금하기 위한 생방송 다큐멘터리 방송날은 크리스마스이고, 극은 그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기에 연말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극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은 캐럴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빈 무대를 조용히 채우고 있다. 실제로 보면, 꽤 예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매력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 같은 편안함과 센스 넘치는 재미요소들에 있다. 실제로 극이 난해하지 않고 흥미로운 주제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다루기에 아마추어 뮤지컬에서도 많이 도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 뮤지컬 〈빨래〉나 〈김종욱 찾기〉와 더불어 대학로 배우들의 등용문으로도 잘 알려진 극이다.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범죄도시'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아 화제가 된 배우 진선규도 이 극에서 '최병호'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병원의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아픔을 가진 존재들이다. 환자뿐 아니라 힘들게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베드로 신부와 그 병원을 지키는 의사 닥터 리도 그렇다. 이 극은 버림받은 이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서로 보듬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세한 이야기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다루지 않겠지만, 관객들은 이 극을 통해 각자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있다. 13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이번 캐스팅이 무려 34차에 이른다. 롱런하는 공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인터파크를 통해 티켓 예매 현황을 확인해 보았는데, 두 공연 모두 저녁 공연 좌석이 남아있다.
아직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할 지 정하지 못했다면, 연말에 따뜻한 공연 하나 보고 2018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겨울 냄새가 나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보는 건 어떨까? 메리 크리스마스!
(위 글은 어떠한 광고/홍보적인 목적 없이 필자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작품들로 구성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광고, 홍보성 글도 써 드릴 수 있으니 연락만 주세요. 공연만 보여주신다면야. 오디컴퍼니, 연우무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