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드윅〉과 워너원, 그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얼마 전, 자그마한 소동이 있었다.
이달 말 해체를 앞둔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이 11월 19일 발매될 마지막 앨범〈1¹¹=1 (POWER OF DESTINY)〉의 티저 영상을 10월 말 오픈했다. 12월 31일 해체를 앞두고 발표하는 마지막 앨범이기에 관심이 생겼고, 무의식적으로 연예 섹션의 영상을 클릭했다. 티저 영상을 처음 본 나의 반응은 이랬다.
어, 헤드윅? 오리진(The Origin of Love)이네?
반가웠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다시피 뮤지컬 〈헤드윅〉은 내가 몹시 좋아하는 극이고, 공연장에서 어셔 일을 하며 마흔 번 이상 보다 보니 절로 외우게 된 극이기도 하다. 워너원의 티저 영상에서 헤드윅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티저 중 하나가 〈헤드윅〉의 메인 넘버인 'The Origin of Love'의 서사를 그대로 읽어주고 있었으며, 또 다른 티저 중간에 등장한 헤드윅 특유의 심볼 때문이었다. 디자인의 변형이 있었으나, 내 눈에는 헤드윅의 서사와 이미지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였다.
소동은 티저가 올라온 이후, 10월 30일에 일어났다. 뮤지컬 〈헤드윅〉의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인스타그램에 관련 이미지와 함께 짧은 글을 올린 것이다.
요약하면,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과 같이,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을 모티프로 은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원작자의 허락 없이 〈헤드윅〉의 요소들을 차용한 점이 안타깝고, 이로 인해 신화의 의미가 평면화될 것 같아 슬프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기사가 올라오며 인터넷 상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대립했고, 일부 뮤지컬 팬들이 존 카메론 미첼의 인스타그램에 찾아가 대신 사과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주요 논쟁은 이 티저 영상의 콘셉트와 이미지 차용을 〈헤드윅〉의 오마주로 보아야 할지, 표절로 보아야 할 지의 이슈였고 이에 대한 소속사의 입장에 관심이 집중됐다.
문제가 된 신화의 내용은 플라톤의 '향연', 그 안에서도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에 등장한다.
태초에 인간은 세 가지 성으로 존재했다. 각 인간들은 둥근 형태로 네 개의 팔, 네 개의 다리, 원통형의 목과 하나의 머리, 그리고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은 해의 자손, 여성은 땅의 자손, 그리고 둘을 나눠 가진 것은 달의 자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신들을 공격하게 되고, 제우스는 그들을 둘로 잘라 힘을 약하게 하기로 결심한다. 잘린 부분은 끈으로 졸라매어 배 한쪽으로 묶어놓았는데 이곳이 배꼽이 되고, 둘로 잘린 인간들은 반쪽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닌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뮤지컬 〈헤드윅〉의 작곡가인 '스티븐 드래스크'는 이 신화를 'The Origin of Love'라는 넘버로 묶어 〈헤드윅〉의 중심 서사로 삼는다. 〈헤드윅〉은 이 서사 안에서 남성과 여성,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존재인 헤드윅(한셀 슈미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소속사는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았는데, 이 대처가 다소 미숙하여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래는 그룹 워너원의 소속사가 발표했던 공식입장이다.
워너원 컨셉 티저는 플라톤의 ‘향연' 중 사랑의 기원에 대한 개념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심볼의 경우에도 해당 개념을 바탕으로 워너원의 컨셉을 담아 운명, 이진법, 무한대 요소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사전 검토 과정에서 해당 건은 사랑의 기원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가치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 영역'이므로 저작권적 관점으로는 이슈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개념은 뮤지컬/영화 '헤드윅'에서 'The Origin of Love' 이라는 음악으로 차용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기원에 대한 개념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기에 ‘헤드윅'의 원작자이신 '존 카메론 미첼'님의 의견 또한 존중하는 바입니다.
소속사의 대응이 아쉬웠던 개인적인 이유는, 약간의 예의와 존중의 마음을 담으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었을 두 작품이 너무나도 형식적인 대응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작품은 '저작권적 관점', 즉 법적인 부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도덕적/윤리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제공했다는 점은 분명했다.
먼저 티저 영상에 사용된 'The Origin of Love'라는 문구는 작곡가 스티븐 드래스크가 직접 쓴 표현으로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지 않으며, 헤드윅의 심볼 문양 또한 단순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했다기에는 유사한 부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공식입장을 확인한 원작자 미첼은 10월 31일 또 다른 글과 영상을 업로드하며, "워너원과 그의 팬들에게 사랑을 보낸다. 하지만 그들의 소속사는 지나치게 공식적인 대신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며, "나는 영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매너가 부족하다고 해서 누군가를 고소해 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는 말로 이슈를 일축했다.
이 같은 사건이 있기 불과 3주 전,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3일간의 '존 카메론 미첼 콘서트'를 무사히 마쳤고, 여기서 한국 팬들에게 받은 감동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존 카메론 미첼 내한 콘서트의 부제는 'The Origin of Love Tour in Seoul'이었다.
이 사건은 잠시의 해프닝으로 지나갔지만, 뮤지컬 〈헤드윅〉의 팬들과 그룹 워너원의 팬인 워너블 모두에게 작은 상처를 남겼다. 며칠간 이 소동을 바라보며, 다른 예술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다소 부족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물론 표절과 오마주, 패러디와 모티프 등 다른 예술을 차용해 자신의 예술로 만드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은 존재한다. 하지만 원작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제2 창작자가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나 놀라웠던 점은 이 일과 관련하여 뮤지컬 팬들과 워너블 사이의 갈등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팬들이 자신이 애정 하는 아티스트와 작품만큼이나 상대방의 작품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고,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기보다는 소속사와 원작자가 원만히 협의하기를 기다리며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존 카메론 미첼은 워너블에게 플라톤의 '향연'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고, 워너블 중 몇몇이 소속사의 아쉬운 대응에 대해 미첼의 인스타그램에 사과의 말을 남기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 '앞으로 우리가 예술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이슈를 대하는 〈헤드윅〉의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의 태도가 굉장히 성숙했다(고 쓰고 어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라고 읽는다)고 느꼈다. 이성적이고 예의 바르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구하는 태도, 그리고 그에 대한 형식적 대응조차 수용하며 논란이 된 신화의 서사를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는 자세에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의 예의만 지켰다면 공존할 수 있었던 두 작품. 한 예술이 다른 예술의 모티프가 되고, 오마주 되고 재생산되는 것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그 예술 사이에서 상처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금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