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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현 Apr 10. 2020

'연뮤적' 거리두기

무대는 멈췄어도, 공연이 여기 있습니다.

오전에 잠시 숨을 돌리며 오늘의 티켓팅은 무엇이 있는지 체크한다.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들어와 앉으면 이미 그 순간부터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티켓 사이트 로그인을 마치고, 서버시간을 모니터 한편에 띄워놓은 후 손가락을 푼다. 팀장님이 55분에 갑자기 부르시면 안 되는데. 고민하는 사이 시계는 1시 59분을 가리키고, 초시계는 똑딱똑딱 흐른다. 시간이 59초에서 00초로 넘어가는 찰나, 원클릭, 투클릭!



좌석 두 개를 찍은 화면이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면 성공이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천천히 무통장입금을 선택한다. 오늘의 티켓팅도 성공이다, 이제 다다음달 공연은 걱정 없다. 6시에 맞춰 칼퇴근을 하고, 공연 시간인 8시에 맞춰 지난번 예매해놓은 공연을 보러 간다. 인생의 낙이다. 아주 바람직한 직장인 연뮤덕의 삶이다.


는 개뿔.


근래에 뮤지컬이나 연극을 본 지 한 달도 넘었다. 2013년 한 공연과의 만남으로 인해 연뮤덕 생활을 시작한 짧은 기간 동안, 한 달 이상 공연을 한 개도 보지 않은 달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연극, 뮤지컬과의 '사회적 거리두기' 중이다.




재택근무를 시행한 지도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공동체의 약속을 만들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있어 사람마다 '거리'는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관광 목적의 여행이나 단체 모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등은 최소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4월 말로 예정되었던 해외여행은 취소했고, 모임들도 최소화하였으며 , 예매했거나 예매를 계획 중이었던 티켓들도 모두 놓아버렸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 과학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듯, 연뮤덕의 마음에는 공연을 향한 미련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틈날 때마다 공연 영상을 보고, 재택근무를 하는 내내 AI 스피커에서는 뮤지컬넘버가 흘러나옴에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하루에도 수 번씩 티켓 예매 앱을 들락날락하게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제한적 상영회' 포스터 (ⓒ문화체육관광부 블로그)


그러던 중,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은 의외로 예술의전당 SNS에서 들렸다. 예술의전당이 'SAC on Screen' 프로젝트를 통해 고화질로 촬영해놓은 공연 영상본 '제한적 상영회'라는 이름을 붙여 유튜브 채널에서 스트리밍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뉴미디어와 사회적 현상이 만들어 낸 콜라보레이션이 아가?


즉시 보고 싶은 공연 리스트를 정리해 날짜별로 캘린더에 넣기 시작했고, 3월 31일 화요일 오후 8시, 일반적으로 공연이 시작하는 바로 그 시간에 뮤지컬 〈웃는 남자〉의 60분 하이라이트 영상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방구석 1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야말로 영상으로 혼이 빨려 드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커튼콜 때는 객석에서와는 달리, 침대에 누워 과자를 까먹으며 발로 박수를 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무대가 주는 현장감은 없을지라도, 고화질과 고음질로 다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은 실제 관극과는 또 다른 재미와 몰입감이 있었고 그동안 쌓인 갈증을 해소해주기에는 충분했다.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되는 〈웃는 남자〉 상영회에는 실시간 채팅방 기준으로 2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함께했다. 놀랄 일이다.


이런 공연 상영회에 열광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바로 오늘, 공연 관련 단체 카톡방에 이런 톡이 올라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말줄임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애절하다.

"일곱 시 반... 금란방... 혹시 녹화할 수 있는 분..........?" (저기 친구야, 그거 불법인 것 같아... 안돼...)


참고로, 거의 모든 기관들은 상영하는 영상의 녹화 및 녹음을 금지하고 있다. 고퀄리티 영상에 눈이 멀어 나도 모르는 새 범죄자가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국립극단


이런 상영회는 주로 공공예술기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예술의 전당 외에도 국립극단의 연극 온라인 상영회,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상영회 등이 계속된다. 당분간은 티켓 예매를 최소화하고 이런 상영회를 침대 위에서 함께하며 '연뮤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생각이다.


부작용이 있다면, '이런 영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팔지 않는 거냐'는 연뮤덕들의 외침 정도랄까. 〈웃는 남자〉 상영회에서 제발 알겠으니 이제 내 통장을 털어가라던 댓글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사실 지금 공연계는 그 어느 업계들보다 힘들고 고된 상황이다. 관객들의 거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객석의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들은 개막을 늦추거나 취소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로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극장들이 있다. 하루 공연을 올려 그 날의 페이를 줘야 하는 작은 극장들, 그리고 그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피해를 입은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긴급 지원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뒤 관객들의 공연 관람료 지원을 약속했다. 대형 극장들은 공연의 영상화를 지원하고, 소규모 극장들은 방역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한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립극단


무대는 잠시 멈췄어도, 여기 연극이 있습니다.


국립극단이 이번 상영회 앞에 내세운 말이다. 잠시 무대는 멈췄지만, 연극과 뮤지컬은 영원히 관객들을 기다린다. 공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관객으로서 지금의 어려움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대학로가 활기를 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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