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솔가_정규 1집의 음악 이야기
2011년.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버티어 내고 있는가? 새로운 삶의 전환을 위해 하던 일을 멈추었다. 내 성장과 쓸모를 묻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멈춤은 때때로 '단절'과 '위기감’이 함께 찾아 온다. 일종의 '막막함'이라고 해도 좋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새로운 삶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막막함'과 '무엇이든지'의 키워드를 들고 ‘무엇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했다.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버클리음대 지원!’이라고 행동했다.
직장을 마무리한지 15일만에 버클리 음대 지원을 준비했다. 무모리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모한 마음으로 일단 지원서를 작성했고 보컬 트레이너도 없이 하루에 8시간씩 연습하며 혼자서 한달 동안 실기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원서의 첫 질문에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당신의 음악적 뿌리는 무엇인가요?” 라는 생각지 못한 질문. 오랫동안 음악을 해야 겠다고 생각만했지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내 음악의 뿌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왜 음악인가?’라는 질문도 없이, 나는 마치 기다려온 것처럼 스스로에게 음악하기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음악적 이력도 없는데 무엇을 써야 하나라는 막막함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에게 스며들었던 만남들을 기억해 냈다. 노래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노래를 내뱉지 못했던 순간에 내게 스승이 되어준 사람들의 이야기.
음악을 시작하기 몇해전부터 필리핀의 음악적 친구들과의 만남을 지속해왔다. 내 음악의 불신과 내 노래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때 만난 필리핀의 음악 스승, Waway saway. 음악친구 Balugot necosia, 그리고 와와이 마을의 음악적 친구들.
“와와이~! 나는 좀 두려워. 노래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 모르겠어~! “
“솔가야, 그건 너에게 너무 쉬운 일이야. 너의 노래는 하늘에서 내려와 너의 정수리를 통해서 너의 몸속으로 들어올거야. 너는 네 아름다운 입을 벌려 그 소리를 내면 되는거야. 그게 너의 노래인거야. 두려워하지말고 그냥 노래를 부르면 돼.”
기술적으로, 방법적으로 어떻게 노래를 해야 하는지, 어떤 음악 스타일의 노래를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내게 와와이의 한 마디는 노래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한번에 씻어주는 마법 같았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연례행사처럼 나의 노래와 나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해 했지만 매번 나를 붙드는 것은 그런 마법같은 말들이었다. 나의 노래를 아름답다고 말해준 소중한 이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나의 음악의 뿌리가 되어주었다. 버클리 지원서에는 와와이의 이야기를 썼고 내 음악적 배경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막막함이 풀리고 나니 다음 질문들에 자신감이 붙었다. ‘버클리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서른 중반에 음악을 다시 시작하는 나의 시도는 당신들에게는 아주 드문 사례가 될 것이며 내가 가졌던 세계와 이야기들이 버클리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당신들의 음악적 가르침과 내 세계를 맞바꾸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서류에 썼다. 부랴부랴 일본으로 가서 보았던 보컬 실기시험의 마지막에도 나는 힘주어 한번더 이야기했다. ‘당신들이 나를 뽑는다면 다소 늦은 내 음악의 시작에 버클리가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좋은 사례가 될것’이라는 어의없는 자신감으로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었지만, 절실함에 당당함이 더해지면 힘이 생긴다.
그러나 합격의 기쁜 소식과 함께 장학금의 부재로 입학은 보류했다. 높은 등록금의 벽 덕분(?)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고 그 방황이 천천히 나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년의 방황이 끝날 즈음 나는 첫 음반을 준비했고 유보해두었던 버클리의 입학을 위해, 장학금을 위해 다시 홍콩으로 재시험을 보러 갔다. 나를 담당했던 사무관이 지난 1년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물었다. 나는 내가 여행하며 만났던 사람들에게 질문하며 노래했던 시간들(열두고개넘어), 강정 구럼비위에서의 노래(평화의 바람), 아이들과 함께 노래한 이야기(벌레친구들)들을 쉼 없이 이야기했다. 어떻게 노래가 나에게로 왔는지, 누구와 노래했는지, 사람들과 어떻게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들로 서로를 위로했는지를 말이다. 내 첫 앨범에 실린 노래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lee~! 내 생각엔 당신은 버클리에 들어올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음악치료는 버클리에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은 이미 당신의 방법으로 음악치료를 만나가고 있는 것 같군요. 버클리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음악을 만나가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더 멋질것 같아요.”
네? 제가요?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나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누군가 대신 말해주었다. 마지막 기념으로 첫 EP앨범을 버클리에 보내는 것으로 무모한 버클리의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는 버클리를 가려고 준비했던 입학금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했다. 나만의 ‘길 위의 학교’를 구상했다. 그리고는 사무관에게 다시 메일을 썼다. 혹시나 내가 보스턴을 가게 되면 꼭 밥을 먹자고. 버클리대신 나는 내 음악의 길을 위한 여행을 준비한다고. 사무관에서 답신이 왔다.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은 이미 당신의 길을 아는군요. 그 멋진 여행을 응원할게요. 보스턴에 온다면 꼭 우리집에 초대할게요.!!”
(결국, 보스턴에 가는 일은 그 이후로도 없어서 사무관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길 없는 길’ 위에서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결국은 ‘걷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았다. ‘길 없는 길’을 걷기 시작 하면 예상치 못한 길이 발견되고 이어졌다. 간혹 그게 길인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걷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닿게 되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나의 노래는 그렇게 걸어왔다. 그 길의 형태나 비전형적인 모양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아주 작디 작은 우주의 노래들을 안고 ‘나의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무모한 나의 ‘길 없는 길’이 10년의 시간을 담은 이번 앨범의 첫 시작인 이유다.
길 없는 길
바다를 건너 여기에
사람을 찾아 여기에
숲길을 헤쳐 여기에
나를 찾아 여기에
잦은 후회와 잦은 망설임
잦은 두려움 그리고...
잦은 욕설과 잦은 눈물과
잦은 이별과 그리움...
길 없는 길 하나를 만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걸쳐 부는 바람
시작은 있지만 끝도 모르는 여행
바람을 타고 가슴으로 흐르는 노래
바다를 건너 여기에
사람을 만나러 여기에
바람을 타고 여기에
나를 만나러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