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솔가_정규 1집의 음악 이야기
좀처럼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시절, 나를 책으로 가 닿게 한 마음을 흔드는 책이 몇 권 있었다. 그 중의 한 권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씨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어설프게 ‘존재’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던 사뭇 진지했던 나의 시절에 이 책은 만나고 보고 싶은 스승을 만들어 주었다. 대학입시의 고배를 마시며 재수를 준비하던 시절에 선생님이 계신 대학교를 발견하고 단번에 그 학교에 입학을 했다. 강의가 많지는 않아서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 몇개의 강의를 들었다. 공부는 열심히가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담장이 높이더라고 사람들은 결국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풀무농업기술학교의 ‘위대한 평민’,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함께’. 아직도 그런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내리거나 그런 삶을 온전히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소박하면서 위대했던 삶을 보면서 그런 사람이 되어가기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좀 우스운 인연지만 대학 1년차에 도전했던 수필공모에서 뜻하지 않게 대상을 받으면서 ‘더불어 함께’라는 선생님의 글씨를 선물 받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1등 상품이었던 프린트기를 노렸는데 갑자기 1등상품이 ‘더불어 함께’로 바뀌는 바람에 다소 당황했던 건 안비밀이다.) 그 이후로도 선생님을 만나뵐때마다 수줍게 말을 건내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이제 모두에게 익숙한 이 단어가 새삼 다시 마음을 향해 움직이던 때가 있었다. 제주를 생각하면 자주 그랬고 제주 2공항 반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비자림숲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욱 더 다가왔다. 우리는 왜 ‘그런 숲’이 되지 못하는가, 도대체 우리가 말하는 ‘더불어 숲’은 무얼까. 단순히 숲과 나무를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살기 위한 우리의 마음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이 노래는 시작되었다.
사람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그 길은 단순히 도착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때론 지난한 여정과 길과 길 사이의 삶의 치열함이 담기기도 한다. 그 누구도 ‘그런 길’이 있다. 나 개인을 위한 삶을 선택해서 가고 있는 이들의 길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의 삶이 옳고 그른 것보다는 그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우리의 ‘길’을, 그래도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 욕심내지 않는 삶을 꿈꾸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노래가 멈추었다.
왜인지 제주를 떠올리며 시작된터라
바다의 삶을 빼고는 미완성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바다의 삶을 담고는 싶었지만 내게 바다는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지 삶의 일부는 아니었으니까. 삶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때, 제주의 지인으로부터 해녀할망과의 인터뷰 이야기를 들었다. 허리가 90도 굽은 늙은 해녀할망의 이야기이다.
평생을 바당과 하영밭을 오고갔던 삶에서 ‘물질’은 피할 수 없는 노동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물 속은 끝없는 두려움의 세계. “하나만 더!”를 외치며 욕심을 내었다간 평생을 헤엄쳐온 그 물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언젠가 읽었던 [검은 모래]라는 소설 책의 물질하던 상군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런데 그 할망은 그렇게 지긋지긋한 물에 들어가는 순간이 고통인 동시에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는 것이다. 시집살이, 남편살이, 육아로부터 유일하게 떨어져 혼자가 되는 순간. 한없는 자유로움의 순간이었다. 90도가 굽은 할망의 허리가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허리가 곧게 펴지고 한없는 자유와 자신만의 시간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노래는 이곳에 당도했다.
수많은 ‘그런 길’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래다
그런 길
숲으로 가는 그 길은 멀고도 구부러진 길
빠르게 갈 수는 없는 그런 길
숲으로 가는 그 길은 혼자선 갈 수 없는 길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하는 길
모나고 거친 마음들이 숲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는 서로에게 숲이 되어준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
어느새 숲에도 봄이 찾아 오네
바다로 가는 그 길은 깊고도 숨이 차는 길
함부로 뛰어 들 수는 없는 길
바다로 가는 그 길은 맘대로 갈 수 없는 길
물결에 몸을 맡겨야 가 닿을 수 있네
한없이 차오른 욕심들을 바다의 시간에 남겨두면
비로소 굽어졌던 마음들이 제 길을 찾고
어느새 거칠던 바다에도 시원한
꽃이 피네 새가 나네
춤을 추네 노래 하네
저 숲으로 저 바다로
저 숲으로 저 바다로
그대로, 아름답게
제주, 바다! 그대로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