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우즈베키스탄이다 (3)
아침 일찍 타슈켄트 기차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25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 사마르칸트.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를 시작으로 옛 실크로드 도시를 여행할 예정이다. 드디어 우즈베키스탄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슈켄트 기차역에서 고속열차 ‘아프라시압’을 타고 약 2시간. 사마르칸트에 내리자 타슈켄트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도시의 세련미 대신 시간의 겹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투박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곳곳에 보이는 푸른 타일의 사원 지붕과 이슬람식으로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여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완벽한 이국에 들어왔음을 느끼게 된다.
2001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마르칸트. 그 길을 조금만 걸어보아도 그 이유를 금세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낮은 건물 사이로 우뚝 선 모스크와 무채색의 집과 들판 사이 파란색 타일로 장식한 유적들은 사마르칸트의 2500여 년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사마르칸트 번성기의 흔적은 레기스탄에서 확인할 수 있다. 3개의 메드레세(이슬람 교육기관)로 둘러싸인 레기스탄 광장은 건축물 그 자체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증축되며 완성된 메드레세는 짙은 푸른색의 돔과 높이 솟은 기둥, 화려한 타일 장식의 건물까지 그 시절 번성했던 사마르칸트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Hello, Where are you from?”
아까부터 주변을 맴돌던 남자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중학생 남자아이들이었는데 영어 회화를 연습하기 위해 외국인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야.”
그 옛날 이슬람 최고 학문의 성지였던 메드레세가 있는 레기스탄의 학구열은 현재진행인 걸까. 하지만 이름이 뭔지, 나이가 몇 살인지, 직업이 뭔지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대화만 가능했던 건 그 아이들에게 다행이었던 건지 나에게 다행이었던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왕과 귀족의 영묘 샤히진다로 향했다. 몇 세기에 걸쳐 지어진 묘당이라고 하니 제법 으스스할 법도 하지만 샤히진다에 들어서면 감탄사부터 나온다. 약 200m 길이의 길을 따라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묘당은 마치 커다란 터키석을 박아놓은 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좁은 길을 두고 양옆으로 늘어선 묘당은 어느 이슬람 지도자, 어느 왕족, 어느 공주의 것이다. 오랜 세월 탓에 내부는 헐고 낡기도 했지만, 겉모습만은 영롱해서 사진 찍는 것을 참기가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신비하게 빛나는 푸른색 타일에 홀려 묘당과 어울리지 않게 상기된 목소리로 예쁘다, 예쁘다 하며 수선을 떨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인이 다가와 조그맣게 속삭였다.
“쉿! 여기는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순간 가볍게 날뛰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살아 있는 왕’이라는 뜻의 샤히진다. 이곳은 저들에게 성스러운 장소일 터였다. 세기를 걸쳐 저들의 마음에 살아 있는 그 왕의 영묘가 있는 곳에서 이방인의 결례가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코발트블루로 빛나는 샤히진다에 가면 잊지 말자. 찬란하게 아름다운 그곳은 천년의 시간 동안 ‘살아 있는 왕’이 머무는 무덤이라는 사실을.
사마르칸트를 하루 이틀 내 돌아보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비비하늠 모스크, 울루그벡 천문대, 아프라시압 박물관에 있는 ‘고구려 사신도’ 등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유적이 도시 전체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택시 기사가 내려준 식당에서 먹은 샤슬릭과 쁠롭은 정말 맛있었고, 사마르칸트에 맥주 맛집이 많은 이유까지 알게 된 건 사마르칸트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기차 시간에 쫓겨 사마르칸트를 떠나는 마음이 아쉬운 건 다시 와야 한다는 뜻일까. 다음 실크로드 도시 부하라로 가기 위해 또다시 아프라시압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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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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