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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Oct 06. 2023

갑자기 그녀가 내게 만나자고 했다

너의 계획과 나의 무심함

어김없이 그녀의 SNS에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다. 아기 엄마인 그녀의 SNS에는 주로 아기 사진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왔다. 한동안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는 게 생각나 의례적으로 '좋아요'를 눌렀다. 진짜 좋아서라기 보다는 너의 사진을 내가 봤다는 확인이랄까, 무언의 안부 같은 그런 좋아요였다.

 

좋아요를 누른 지 1분이나 지났을까, 그녀가 내 카톡에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세요? 오랜만이죠?"


오랜만인 건 맞지만 좋아요를 눌렀다고 메시지를 보내다니. 천진하다 못해 눈치가 없어 친해질 수 없었던 그녀의 성격이 새삼 떠올랐다. 


그녀와 나는 평소 메시지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직정 동료로 잠시 함께 일했지만 뭔가 묘하게  어긋나는 성격차이로 끝내 가까워지지 않았다. 일하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언제나 맞지 않는 어느 부분이 있어 나는 끝내 그녀와 가까워지지 못했다.


"생일 미리 축하드려요!"


뜻밖에 그녀는 며칠 뒤인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충 안부만 전하고 끝내려 했는데 생일까지 축하해주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아이들 이야기며 회사 지인들 소식까지 이런저런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흔히 그렇듯이 언제 한번 만나자며 슬슬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내일모레 만날까요?"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나중에 보자는 내 말이 그저 인사말이라는 걸 그녀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진짜 만나자고 하다니.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미 그녀에게 요즘 쉬느라 집에만 있어서 심심하고 지루하다며 한바탕 메시지를 주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할 일 없이 집에만 있는 게 이미 탄로 났는데 뭐라고 거절을 할까. 결국 이틀 뒤 나는 그녀를 만났다. 




"이게 얼마만이예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스스럼없이 반가워하는 그녀를 보자 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나에게 호감만 있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의문과 의심으로 약속을 취소할 핑계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그런 내 마음이 부끄럽게도 그녀는 정말로 나를 만나서 기뻐했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며, 다른 직장으로 옮긴 뒤 힘들었던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누었다.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자 주부이고 엄마인 그녀와 나에게는 힘들이지 않아도 할 얘기는 많았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그녀를 오해했구나.'

'내가 너무 거리를 둬서 그녀가 내게 다가오지 못한 걸 수도 있어.'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이었나 봐.'

'나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내가 너무 몰라줬구나.'


사람에 대해 미리 단정 짓고 나랑 맞지 않는다며 거리를 두고 벽을 치는 내 성격의 단점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만나자고 먼저 제안해준 그녀가 고마웠다.


"저 요즘 부업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녀가 꺼낸 말이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쉬고 있던 나는 귀가 번쩍 트였다. 그녀가 생각하는 부업이라면 어쩌면 나도 연관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ㅇㅇㅇ요. 그거 해보려고요."


무슨 부업이냐며 눈을 반짝이는 나에게 그녀가 꺼낸 말은 다단계로 유명한 한 회사 이름이었다. 당연히 우리가 했던 업계 쪽 일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했다. 


"다단계라고들 하는데, 사실 그건 오해거든요. 제가 공부 좀 해보니까 여기 제품들 질이 정말 좋더라고요."


내 당황스러움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녀가 본격적으로 '부업'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뭐라도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대충 좋다는 얘기 들어봤다, 주변에 쓰는 사람도 있더라고 했더니 그녀가 갑자기 의자를 당겨 앉았다. 


"회원 가입하실래요? 그냥 추천인에 제 이름만 써주시면 돼요."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녀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 다단계 회사 홈페이지를 열어 회원가입을 눌렀다.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이 핼쑥해 보여서 살이 빠졌다고 했더니 그녀는 요즘 자신이 '디톡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디톡스에 대해 얘기했지만 무심하게도 내가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식사 후 갑자기 무슨 약을 먹길래 뭐냐고 했더니 '프리바이오틱스'라며 나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이번에도 나는 자세히 보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새로 산 '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치며 새로 산 건데 얼굴이 화사해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또 무심하게 그게 어디 거냐고 묻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이미 여러 번 내게 '부업'에 대해 말할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너무나도 무심한 내가 그걸 몰라주었던 것이다. 결국 집에 가기 직전까지 기회를 엿보다가 말을 꺼낸 것이다.




회원가입을 하고 추천인에 그녀의 이름을 써넣고 나서야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뜬금없는 안부 인사와 갑작스러운 만남. 끝없는 의심과 의문을 반성하게 했던 그녀의 살가운 태도. 그리고 결국 막연하게 가졌던 의심을 확인하고야 말았던 이 만남의 끝. 


그녀의 진심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였을까?


그녀가 원한 것은 고작 회원가입과 추천인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주는 것뿐이었고 나는 돈을 떼이지도,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뒷맛이 쓴 건 그녀와 만나는 중에 내가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말의 오해에 대한 자기반성을 계속하는 사이 그녀의 '디톡스-유산균-화장품-부업'으로 이어지는 시나리가 계속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차라리 만나지 않고 안부 메시지 끝에 회원가입을 부탁했다면 속으로 욕은 했을지언정 자기반성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SNS에서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혼자 다짐해본다. 묘하게 어긋나던 그녀와의 어떤 부분을 이제 완전히 꺾어버려도 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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