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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Nov 19. 2024

30년을 한국에서 산 사람의 미국 적응기 시작

이렇게 나이를 공개해 버리고

| 미국 온 지 어언 3개월, 나는 과연 잘 살고 있을까?


요즘 글이 뜸했다. 뜸했던 이유는 별 거 없고, 현생에 적응하느라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준비하고 새로운 나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요했다. 정보성 글은 차차 올리기로 하고, 지금 나의 심정에 대해 정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자 한다.


우선 여전히 불안하다. 그 불안의 정도라 함은, 퇴사 직후에 비해 한 30% 정도, 그리고 유학 나오기 직전보다는 한 50% 정도로 불안한 것 같다. 이전에 비해서는 조금씩 내 삶의 방향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강도는 줄어든 것이 확실하다. 나의 이전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그 강한 불안을 (생각해 보면 불안장애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다스리기 위해 발리까지 가서 온통 명상과 요가에 빠져 살아보기도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내가 뭘 두려워했는지 까마득해질 정도로. 


| 시작하기 전이 가장 두려운 법이다.


퇴사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내가 그간 가장 크게 느낀 점이다. "내가 퇴사를 할 수 있을까", "하면 이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내가 유학을 갈 수는 있을까", "미국 가면 어떻게 살지", "이 나이 다 돼서 친구를 사귈 수는 있을까", "물가 비싸다는데 돈 아끼다 굶어 죽지는 않으려나", "공부는 따라잡을 수 있으려나", "내 영어가 공부하고 면접보고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충분할까"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내 머릿속의 공포는 신체반응으로까지 나타났고, 매일 아침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일어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게 기본 모드가 될 만큼.


막상 미국 땅에 혈혈단신으로 도착하고 나니, 룸메와는 금방 친해졌고, 학교 수업은 생각보다 따라잡을만했으며, 취업할 준비가 완벽하게 됐다고 느낀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지만 어찌어찌 지원서를 넣고 면접도 보고 있다. 외로울 줄 알았지만 친구들도 금방 사귀어서 식사도 같이 하고 운동도 정기적으로 함께 하고 짧은 여행도 다녀왔다. 눈앞에 닥치면 다 어떻게든 하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 내가 가진 결핍에 대해 


다들 뾰족한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허덕이고 기웃거리고 불안해하나, 그런 생각은 여전하다. 똑 부러지고 명쾌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좀 좋을 것도 같은데. 여기 와서 좌절과 희망을 온탕과 냉탕 오가듯이 느끼는 매일의 연속인 것 같다. 전공도 다르다 보니, 과연 나의 과거 일 경력을 어떻게 살릴 수는 있을까? 아예 버리고 그냥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하나, 그것도 헷갈릴 때가 있다.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룸메와 어제 대화 중에 그런 말을 했다. "오늘이 주말인지 평일인지도 모르겠어. 매일이 너무 똑같아." 직장인일 때는 그래도 주말과 평일의 경계는 있었잖나. 그리고 평일에 받은 스트레스를 주말에 먹고 놀고 여행하면서 풀 수도 있었고. 하지만 학생으로서의 삶은 당연하게도, 배고픈 삶이다. 다시 대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기도 하고, 뭔가 느낌이 새롭다. 옷은 사지 않고 있는 옷만 돌려 입는다. 패션쇼는 꿈도 안 꾼다. 맨투맨 + 후드 + 패딩 조합이다. 밥은 항상 요리를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 매달 30-40만 원 내로 식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카페 역시 돈 드니까 항상 도서관이다. 도서관 오면 꼭 만나는 NPC 같은 친구들 한 4-5명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놀랍게도 나이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은 별로 크지 않다. 더 늦기 전에 해외에 나오기로 다짐하고 나온 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를 붙들고 걱정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내가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사실, 뭐만 하면 나이 얘기가 먼저 나와서 항상 그 굴레에 매여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 와서 오히려 나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한국 친구들만 빼면 나의 호칭은 누나도 언니도 아니고 그냥 내 이름. 그냥 다른 친구들보다 일 경력 좀 더 있는 애. 그 정도다. 그게 참 편하다.



여기까지가 간단한 나의 소회이다. 인생 사는 모양새나 방법은 다 다르지만, 레시피는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나를 믿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남들 시선 너무 신경 쓰지 않고, 그때 그때 내 안의 불안을 스스로 다독이면서 그렇게 앞으로 한 발짝씩만 나아가다 보면 어제보다는 분명히 나아져있을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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