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따끈따끈한 올해 실리콘밸리 여름 인턴 후기

by 진달

| 드디어 실리콘밸리로


1년 간 다사다난했던 필라델피아를 떠나, 여름 방학인 5월부터 8월까지 실리콘 밸리에서 여름 인턴을 했다. 나는 South Bay 지역이라고 불리는 산호세 근처 지역에서 회사 생활을 했다. 비행기 비용, 추가 수하물 비용, 교통비, 식비, 주거비 등등 이곳의 생활 전반에 필요한 금액은 회사로부터 미리 지원을 받았다. 인턴십 시작하기 전 4월~5월 경 회사에서 보내오는 링크를 통해 특정 사이트에서 비행기표를 예매할 수 있었고, 계좌 번호를 입력하여 지원금을 미리 받았다. 요즘 환율도 올라서 원화를 환전해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처음으로 내 통장에 달러가 입금되는 걸 봤을 때 기분이 참 짜릿했던 기억이 난다.


Difference-Between-Bay-Area-and-Silicon-Valley-1.jpeg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


| 회사 첫 느낌과 온보딩 (Onboarding)


첫 출근날 "오전 10시 전까지만 오라"는 팀장님의 메시지를 받고 회사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서 멘토를 만나 인사하고, 노트북을 세팅하다가 팀장님, 멘토, Onboarding buddy와 또 다른 인턴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멘토가 나의 인턴 프로젝트에 대한 배경과 지식을 가지고 나를 프로젝트 기간 동안 가이드 해줄 사람이라면, Onboarding buddy는 그 외의 모든 회사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들에 대해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두 역할을 명확히 분리해 놓은 것도 신기했고, 그래서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사실 (뒤에서 설명하겠으나) 프로젝트 기간 동안 정말 멘토에게 물어볼 일이 많은데, 잡다구리 한 것들까지 물어보기에는 굉장히 미안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Onboarding buddy는 권한 관련 문의가 있거나 팀의 업무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최적의 상대이다.


회사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우고, 회사의 문화나 보안 등 각종 교육을 받는 것을 (한 마디로 회사 입사교육) Onboarding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게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고 진행될 수 있도록 내부 웹사이트가 매우 잘 돼있어서 그냥 그 단계별로 따라서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그 콘텐츠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사전에 멘토와 대화를 통해 '내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지식들'에 대한 콘텐츠만 선택적으로 수료해도 된다. (안 그러면 짧은 인턴기간 온보딩만 하다가 끝나버린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에서 내가 겪었던 Onboarding 절차는 항상 사수가 한 분 붙어서 일일이 다 알려줘야 하는 인수인계 구조였다. 그 사수는 자신의 업무에 더해 신입사원 교육까지 추가로 맡아해야 했기 때문에 그냥 딱 봐서 일이 너무 많아 보여서 물어보기 정말 미안해지는 구조이기도 했다. 근데 여기서는 어떻게 보면 업무용 멘토/ 회사생활 전반용 멘토를 나누어 지정을 해주니 물어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했다.




| 재택이 되지만 오늘도 출근


우리 회사는 전사적으로 재택근무를 점차 줄여가는 정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영향을 덜 받은 지점에서 근무했다. 그래서 우리 팀은 주 2회 재택이 가능했다. 출근을 하는 날마저도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고, 그냥 2시간 정도만 오피스에 나와있다가 들어가도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내 (첫 번째) 멘토는 정작 실제 대면한 적이 드물고, 팀장님도 월화수 정도만 나와계시고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매일 출근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팀원들이랑 더 많이 마주치고,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지고 싶어서였다. 나는 당연스럽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때가 온라인으로 만날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깊게 친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고작 3개월 일하는 건데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팀원 하나하나 면대면 교류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프로젝트 외에도 개발자로서의 삶과 미래에 대한 토론이나, 이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연령대나 삶의 단계가 다들 비슷했기 때문에 (20대 중반~ 30대 초중반에 미혼이 대부분이었다) 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비슷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 매니저와 멘토


인턴에게는 매니저와 멘토가 지정된다. 나는 베이 지역에서 근무를 했지만, 매니저님은 시애틀에 계셔서 실제로 뵌 적은 없고 항상 화상 회의로만 대화했다. 그 점이 처음에는 내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지점에 근무하면 오며 가며 5분씩이라도 쉽고 친근하게 대화가 가능한데, 지점이 다른 이상 따로 채팅을 걸고 미팅을 잡아서 대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one-on-one 대화를 신청하려고 했고, 나중에 평가 때 들었지만 매니저는 나의 그런 적극성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해주셨다.


매니저와는 주 1회 정도 미팅을 하면 현재까지의 진행사항을 업데이트드렸고, 멘토와는 초반에는 주 2회 + 틈틈이 대화하며 프로젝트의 배경과 원하는 결과물 등에 대해 sync up 하는 과정을 거쳤다. 프로젝트를 가이드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또 나의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피드백을 수렴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분들이 나의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사람들로 배정된 것은 맞지만, 내 프로젝트에 얼마나 engage 시키는지는 나의 몫이다.




| 인턴의 업무


인턴에게 주어진 업무는 굉장히 명확했다. 한 가지의 프로젝트를 주고, 그 문제를 해결해라. 인턴에게 줄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인턴이 합류하기 전에 이미 팀 자체적으로 논의와 사전 투표까지 마친 상태였다. 회사뿐 아니라 팀 차원에서도 인턴의 프로젝트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써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Onboarding이 끝나고 처음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scope down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해결하려는 정확한 문제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으려는 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내 프로젝트가 가진 impact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다.


프로젝트를 정의 내린 후에는 본격적으로 솔루션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원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할지 옵션들을 나열하여 장단점을 비교하기도 하고, 이렇게 작성한 문서를 팀 전체와 공유하며 review 하는 시간도 가졌다. 아무래도 나 혼자 '이렇게 해결하는 게 좋겠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는, 'A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고, B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은 이러이러해'라고 공유했을 때, 경험이 더 많은 팀원들로부터 더 생산적이고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생각지 못했던 장점이나 부작용을 배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기적으로 팀원들과도 sync up을 하다 보니, 팀원들도 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기도 했고, 최종 발표날에도 더 편안하게 발표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팀은 매일 30분 내외로 standup이라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 했던 일, 그리고 오늘 할 일에 대해 간략하게 팀원들과 공유하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각자가 맡은 일의 scope이 명확하고, 재택을 하거나 다른 오피스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이렇게 하루에 한 번 서로 업무의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시간을 갖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에 이 미팅에 참석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다른 팀원들이 하는 말도 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점차 익숙해질 수 있었다.




| 평가 방식


인턴 프로젝트 중간평가 그리고 기말평가 두 파트로 나뉜다. 나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셀프 평가서를 작성하고, 멘토와 매니저는 그걸 같이 보면서 동의하는지 논의하며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다. 중간중간 이렇게 '인턴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지표를 넣어놓다 보니 확실히 동기부여도 되고, 이제까지 했던 업무를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돼서 참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이 평가는 엄청하게 formal 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매일같이 대화를 나누고, 나의 프로젝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두 분에게 평가를 받는 시간이다 보니, 평소 회의할 때처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캐주얼하게 평가가 이뤄졌다. 나는 사실 중간에 멘토의 이직으로 인해 새로운 멘토를 배정받았는데, 그래서 각기 다른 두 명의 멘토에게 멘토링을 받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새로 배정됐던 멘토는 이전 멘토의 퇴사로 인해 많은 업무를 부담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내 질문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 번외) 베이 지역의 한인들


이 지역은 정말 많은 한인 분들이 살고 계시다. 그리고 지역이 지역인 만큼 테크회사에 몸 담고 계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운이 좋게도 이 지역에서 인턴을 하면서 귀한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딱딱한 형식의 네트워킹이 아닌 지인의 지인의 지인과 같은 식으로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학생 신분으로 살면서 미국에 온 이래로 참 마음의 여유 없이 지내왔는데, 이 지역에서 정착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면서 나도 심적으로 많이 편안함을 느꼈다. 이런저런 식사자리에 초대받아 한식을 마음껏 먹기도 했고, 새로운 스포츠도 배우고, 혼자라면 가기 힘들었을 근교 여행도 틈틈이 할 수 있었다. 참 운이 좋았다.


테크회사에서 개발자 직군으로 처음 일해 보기도 했고, 당연스럽게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워야 했기 때문에 낯선 점 투성이었다. 하지만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이렇게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생활할 에너지를 200% 충전한 기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