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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쥬스 Aug 03. 2019

[소설] 성미라 이후의 임시명

전여친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나는 충격과 공포를 납품했다.


충격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공포는 그들의 지갑을 열었다. 나는 매일 더 효과적인 충격과 효율적인 공포를 설계하기 위해 책상 앞에서 머리를 싸맸다.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일을 하게 된 뒤부터였다. 지저분한 간판과 엑스배너와 네온사인들과 길 위의 전단지로 뒤덮인 번화가를 지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내 손에서 나온 자극적인 광고물들도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공해를 만든다.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다가도 사무실 책상 앞으로 돌아오면 주커버그의 숫자에 울고 웃는 날들이었다.     

 

지난 일이다. 이제 나는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 디지털 같은 것도 마케팅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세상이 변했다. 이 세상에선 굳이 그런 머리 아픈 일들로 하루하루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나는 평일 오후에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한 친구를 생각한다.


아마 당신도 그런 친구를 알 것이다. 대학생 시절 우리 모두의 친구였으나 졸업 이후 서서히 연락이 뜸해져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서 잊혀진 그런 친구, 임시명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곁에서 함께 웃고 울던 시간으로부터 훌쩍 멀어진 지금 이 순간에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성미라의 마지막 공연을 말이다.      


성미라. 한때는 시명의 친구였고 한때는 연인이었으며 한때는 원수였다가 차차 한때의 추억으로 매듭지어져가는 듯했던 성미라. 그런 그녀가 시명의 인생에 다시 나타난 것은 1년 전이었다. 그녀는 TV에서 나타났다. 이백만 명의 지원자가 몰린 가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참가자 중 한 사람으로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모두가 자신의 열정을 경쟁적으로 고해바치는 곳에서 ‘시간이 남아서 참가해봤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참가자였다. 졸업 이후 취직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래를 부를 시간이 많아졌다고. 혼자 된 집에서, 한산한 거리에서, 뒷산 약수터에서, 뜻 없이 노래를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고.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여든여덟 번째 자소서를 제출하던 어느 밤에 재미삼아 이 프로그램에도 지원해보았노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노래에는 아무런 야심이 담겨있지 않았다. 쉽게 잊혀질 것 같던 그녀를 시청자들은 놓지 않았다. 그녀는 회를 거듭할수록 조용히 인기를 더해갔고, 마침내 탑 텐 생방송 무대 위로 등장했을 때에는 20대 청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우승후보가 되어있었다. 환호와 함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그녀의 눈가에 붙은 은색 펄이 낯설게 반짝였다. 그녀가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서 노래하는 동안 시명은 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둘은 어느 폐가의 귀퉁이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새벽을 넘기는 중이었다. 멋모르고 가입한 단편영화 동아리에서 귀신 들린 집에 대한 엉터리 공포영화의 주연배우로 반강제 캐스팅당한 덕분이었다. 늦가을 새벽의 폐가는 무척 추웠다. 뿌연 입김이 둘 사이를 떠다녔다. 거기서 미라는 그런 말을 했다.


- 어쩌면 우리가 유령일지도 몰라.


시명은 미라를 더 꼭 안으며 답했다.


- 사랑해. 영원히.     


컷 싸인이 떨어진 뒤에도 둘은 한동안 안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서로의 체온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명과 미라가 나란히 주연이었던 시절을 지나, 미라의 독무대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아래에선 불꽃이 터지고 위에선 꽃가루가 날렸다. 미라는 불꽃과 꽃가루를 뚫고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셔츠의 앞섶을 벗어젖혔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에 감겨있는 금속성의 기계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잡한 얼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청자들이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미라는 산산조각이 되었다.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화면이 어두워졌다. 이른바 성미라 생방송 자폭테러사건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미라의 얼굴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이제 사람들은 그녀가 혼자서 흥얼거리던 노래들을 함께 부른다. 이제 사람들은 성미라가 방송에서 했던 말들, 가령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따위의 말들을 손목에, 뒤통수에, 엉덩이에 문신으로 새긴다. 미라는 체게바라가 오랫동안 독점하고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는 이제 한 세대의 대표자이며 영원불멸한 아이돌이다. 국가에서는 아직도 그 사건을 정신적으로 불우한 사람이 벌인 해프닝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더 이상 세상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 테러는 광신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크고 작은 테러를 벌인다. 얼마 전에는 탈취당한 시내버스가 명동거리 한복판으로 돌진했고, 한 대학교의 유도부원들은 대기업 공채 면접장을 습격해 면접관들에게 단체로 엎어치기를 가했다. 또 얼마 전에는 누군가가 세계 최고층을 목표로 건설 중이던 빌딩의 첨탑을 무너트려 세계 3위에 머물게 했으며, 어느 예식장의 주방장은 스프에 환각제를 넣어 하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했다. 그밖에도 배트맨 가면을 쓰고 전국의 노인정을 습격한 일당들이라든가, 수산물 시장으로 운송하던 활어들을 캐리비안베이에 풀어버린 일당들이라든가, 르느와르 전시회의 모든 작품에 콧수염을 그려 넣은 일당들이라든가... 말하자면 끝도 없다. 작은 방에 모여 앉아 스터디를 하며 미래를 계획하던 청년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를 창조적으로 망가트릴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한다. 그렇게 목적도 메시지도 없는 테러들이 줄지어 발생한다.      


백분토론에 출연한 한 젊은 문화평론가는 이 현상을 ‘최후의 히피들이 등장했다’고 평했다. “1960년대의 히피들이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것을 피해 자본주의 바깥으로 탈주하고 이상적 공동체를 꿈꿨다면, 지금 세대의 히피들은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자본주의에 완전히 폐쇄되었음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대신 체념과 부정의 방식으로 삶을 유희하기를 택한 존재들인 거죠. 다시 말해 그들은 자본주의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부터 도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과 부딪치는 것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현실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그 집단적 자각의 방아쇠가 바로 성미라인 것이죠.” 방송이 나가고 며칠 뒤 문화평론가는 인터넷방송으로 자신의 항문을 이십 분 동안 보여준 뒤 자살했다. 그의 왼쪽 엉덩이에는 미라의 얼굴이 문신으로 새겨져있었다. 그 방의 방제는 ‘여기가 출구입니다’ 였다.


우리는 지금의 세상이 몇 마디 문장으로 해석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변화들이 우리에겐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창밖에서 매일 무언가가 폭발하고 무너져도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꿈 속에서 반복되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느껴진다. 더 이상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도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잠시 그 친구가 누구였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그렇다면 임시명은 누구였는가. 한때는 성미라의 친구였고 한때는 연인이었으며 한때는 원수였다가 차차 한때의 추억으로 매듭지어져가는 듯했던 임시명은 누구였는가. 지금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성미라가 산산조각이 되던 그때, 넋이 나가 있던 시명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회사에 최종합격했다며 내일부터 당장 출근해달라는 문자였다. 시명은 그 날 밤 꿈에 미라가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빌며 잠들었지만 아무런 꿈 없이 잠에서 깨고 말았다. 시명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첫 출근을 했다. 14개월째 이어지던 백수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간, 시명은 출퇴근을 반복했다. 이런 세상에 출퇴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출근길에 탄 버스가 괴한들에게 탈취당하기도 하고, 배트맨 가면을 쓴 무리들의 틈을 뚫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달려야 한다. 오 분 전에 지나쳤던 거리에 건물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고 언제나 저 멀리서 무언가 펑펑 터지는 폭발음에 귓가에는 이명이 끊이지 않는다. 퇴근 후에 모처럼 정성들여 저녁식사를 준비한 뒤 먹방을 곁들이기 위해 인터넷방송에 접속했다가 뜻밖의 항문을 보게 되는 일도 생긴다. 시명은 먹던 음식을 게워냈고, 다음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정확히는 사직서 천 부 출력을 프린터에 걸어놓은 뒤 가방을 챙겨 회사를 떠났다. 디지털에서도 떠났고 마케팅에서도 떠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배 위에서 낮잠을 즐기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켠 뒤 침대에서 내려온다. 의자를 폴짝 뛰어올라, 다시 한번 폴짝 책상으로. 그리고 무심하게 키보드의 엔터키를 밟는다. 그러자 창밖 저 멀리 테헤란로 캐피탈 타워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그곳은 페이스북 코리아 본사가 있는 건물이다.


- 미라야, 어떡해.


나는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붙여준 내가 사랑하는 이름을 그렇게 또 한 번 불러보았다. 미라는 알 수 없는 몸짓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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