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쥬스 May 29. 2020

[소설] 한지수와 김지수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이 결혼했다.

한지수와 김지수는 입사동기였다. 사람들이 지수 씨, 하고 부를 때마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그럴 때마다 허공에서 잠시간 서로의 눈빛이 얽히곤 했다. 둘은 곧 연인이 되었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연인이 된 건 아니었다. 둘은 닮은 점이 있었다. 평균보다 흰 피부와 햇빛을 받으면 갈색을 띠는 머리칼이 닮았다. 사람들 앞에서 나서기 싫어하고 쉽게 딴생각에 빠지는 점이 닮았다. 비틀린 유머를 좋아하는 점이 닮았다. 정치와 종교에 관심이 없는 점이 닮았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점을 닮았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점이 닮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방에 좋아하는 노래를 꽉 채워놓고 잠드는 점이 닮았다. 서른이 넘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점이 닮았다.     


서로가 가진 같은 모양을 겹쳐보며 놀라워하던 둘은, 서로를 더 알아갈수록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 영역들을 발견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한지수는 다니엘 시저를 들었고 김지수는 포스트 말론을 들었다. 한지수는 침대에서 입으로 해주는 걸 좋아했고 김지수는 싫어했다. 주말이면 한지수는 오전 일곱 시에 일어났고 김지수는 점심때가 되어 느릿느릿 일어났다. 한지수는 집에 돌아오면 덤벙대며 품으로 달려드는 말티즈 두 마리를 맞이했고 김지수는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불 꺼진 집의 이곳저곳을 형광등을 켜 밝히곤 했다.       


하지만 그 차이들이 서로를 아주 낯설게 느껴지게 하거나 경멸하게 할만한 부류의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런 폭우로 계획이 틀어진 여행, 비를 피하고 있던 버스정류장에서 한지수는 반지를 꺼냈다. 한지수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혔지만 김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 개월 뒤 둘은 결혼했다.      


신혼여행지는 하와이였다. 하와이는 두 사람 모두 신혼여행으로 가장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에서 빠져나온 가벼운 몸으로 하와이의 따스한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둘은 행복감을 느꼈다. 어떤 걱정도 불안도 스며들지 않는 진공 포장된 행복이었다. 둘은 서로의 모든 것, 말과 행동과 표정과 기분에 대해 긍정하고 동의했다. 적어도 다음날 오후 한 시까지는 그랬다.   

  

“킬라우에아 화산을 오늘 보러 가자.”     


점심을 먹던 중 김지수가 말했다. 한지수의 계획대로라면 둘째 날은 스노쿨링과 맛집투어로 지나가는 날이었다.      


“갑자기? 거긴 출국 전날 가기로 했잖아.”

“그날 비가 올 거래. 난 이걸 꼭 제대로 봐야겠어.”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다. 한지수는 마지못해 그러기로 했다. 예약해둔 스노쿨링을 한 푼도 환불 받지 못하고 취소하며 한지수는 한숨을 쉬었다. 김지수는 못들은 척 했다. 열일곱 살의 김지수에게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아빠가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집을 떠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킬라우에아 화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다. 그곳엔 불의 여신이 살고 있다. 분화구에선 뜨거운 연기가 솟아오르고 붉고 끈적끈적한 용암이 그 속을 채우고 있다. 인간이라는 게 존재하기 이전부터 끓던 용암이 여전히 같은 온도로 끓고 있다. 김지수는 나레이션을 들으며 심장이 뛰었고, 그 심박동의 느낌으로 킬라우에아라는 이상한 단어를 기억했다. 결혼 전 신혼여행 계획을 짤 때도 김지수는 한지수에게 그 단어를 말했다. 우린 킬라우에아를 꼭 가야해. 한지수는 구글에 킬라우에아를 검색하고 바둑판처럼 배열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오, 괜찮네, 했다. 그렇게 둘의 계획에 킬라우에아가 포함되었다. 그리고 계획보다 며칠 일찍 그곳에 도착했다.     


둘은 화산 국립공원의 트래킹코스를 한 바퀴 돌았다. 킬라우에아 화산은 잿빛의 메마른 땅이 펼쳐진 화산지대였다. 바위틈으로 입김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땅에 손을 짚으면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둘은 오래 걸으며 평소 같은 대화를 나눴다. 굳이 한낮의 실랑이를 되풀이하지 않는 현명함이 둘의 닮은 점이었다. 트래킹코스에서 돌아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로 향했다. 그곳은 관광객의 접근이 허락된 곳 중 분출되는 용암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열댓명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가끔 붉은 용암이 솟을 때마다 감탄사를 냈다. 김지수는 말없이 용암을 노려보았고, 한지수는 그런 김지수의 옆얼굴을 지켜보았다. 한지수는 가끔 그런 표정의 김지수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물어보는 대신 한지수는 가만히 김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춥고 어두워질수록 용암은 붉어졌다.      


한 줄기의 용암이 기다랗게 하늘로 솟구쳐 사람들의 위치와 꽤 가까운 곳까지 날아와 착지했다. 몇몇 관광객들이 깔깔 웃으며 과장된 감탄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듯, 분화구에서 많은 양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둘의 발밑으로 진동이 퍼졌다. 누가 둘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또 한 번 새빨간 용암이 허공으로 뿌려졌다. 이제 진동은 몸을 흔들리게 할 정도가 됐다. 멀리서 사이렌 경보가 울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웃지 못했다. 한지수는 김지수의 손목을 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지진. 화산 폭발. 비상사태. 이 지역에서 대피할 것. 그런 말들이 라디오에서 들려왔다. 하와이의 한적하던 도로가 대피하는 차들로 정체되었다. 김지수는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냥 내가 고집을 더 부릴걸 그랬어. 이게 뭐야.”     


그렇게 말하며 한지수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김지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김지수는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다 어깨에서 쓰라린 통증을 느꼈다. 거울에 비춰보니 왼쪽 어깨 위에 새끼손톱만한 붉은 반점이 보였다. 김지수는 그 반점에 대해 한지수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지수는 남은 신혼여행 동안 김지수의 어깨 위에 생겨난 반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둘은 호놀룰루로 섬을 옮겨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놀란 마음을 달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 년 뒤 둘은 이혼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한지수의 말티즈 중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일이었다. 한지수는 신혼집에 말티즈를 데려와 기르고 싶어 했지만 김지수는 원치 않았다. 말티즈는 한지수의 엄마에게 길러졌는데, 어느 날 그녀의 품에 안겨 산책을 하던 말티즈는 무언가에 홀린 듯 도로로 뛰어들었다. 한지수는 회사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 한지수는 반차를 쓰고 나와 김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꾸꾸가 차에 치었대. 나랑 같이 가줘. 너가 지금 있어줘야 할 것 같아. 김지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회사를 옮긴 지 얼마 안 됐고, 여기서 처음으로 준비한 프로젝트가 런칭이 코앞이었다. 김지수는 그것이 납득할만한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저편의 한지수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한지수는 그의 엄마와 함께 말티즈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그리고 말티즈가 납골당에 안치될 때까지 김지수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며칠 뒤 둘은 다시 집에서 마주쳤다. 서로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만나 머물러있을 때, 둘은 더이상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혼이 선고된 날, 둘은 하루종일 각자의 방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가득 채워둔 채 하루를 보냈다. 그것이 둘의 닮은 점이었다. 한지수는 하루종일 남은 한 마리의 말티즈를 안고 쓰다듬다가 문득 신혼여행 첫째 날의 행복감을 떠올리며 조금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김지수는 하루종일 집의 모든 불을 꺼둔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많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들 사이로 한지수에게 손목을 잡힌 채 화산지대를 달리던 장면이 지나갔다. 한지수와 함께 주차장을 향해 달리던 그때, 김지수의 심장은 무섭도록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킬라우에아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을 때처럼. 그것이 둘의 다른 점이었다.



(2020.05.29)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프로바이오틱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