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쥬스 Jul 24. 2024

어쩌다 한국은 저출산 1위 국가가 되었을까?

AI 딥러닝과 한국인의 상관관계

1.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쓸만한 자원은 휴먼 리소스입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기 위해 한국이 택한한 방식은 인적 자원의 최대 효율화였습니다. 그 결과 2024년 현재 OECD 국가 중 탑급 노동시간, 과열된 사교육 시장, 높은 평균 지식과 스트레스 수준의 국민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탄생합니다.


2.

이 최적화는 국민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것만으로 성립될 수 없습니다. 개개인이 기꺼이 그것을 따르게 할 동기가 필요합니다. AI 딥러닝의 원리와 흡사합니다. 하나의 목표를 던져졌을 때, AI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수한 경우의 수를 연산하기 시작합니다.


3.

한국은 그 목표값을 돈으로 설정합니다. 개천에서 용나듯 누구나 노력하면 자수성가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설정합니다. 자기 성공을 위해 몸부림 친 인간들의 발자취가 나라의 성공이 됩니다. 돈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 하나의 연산값으로 개개인의 삶이 존재하고, 그렇게 오늘도 수천만 개의 연산값이 인간의 생애주기에 맞춰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4.

한국이 유난히 ‘편의성’ 과 관련된 서비스가 발달한 나라가 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AI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발전된 쿨링 시스템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기준을 세상이 바라는 기준에 맞춰 오버클럭한 사람들은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불안과 우울과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때로는 터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살률 1위가 달성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편리하고 쾌적한 서비스를 누리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5.

한국이 비교가 만연한 사회가 된 것도 딥러닝과 같은 맥락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경우의 수들이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의 기준이 됩니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서로의 삶에 점수를 매기는 것이 사고 과정에 내재됩니다. 기준에 부합한 이들은 승리자로, 부합하지 못한 이들은 패배자로 살아갑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가난은 정신병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무한히 서로의 삶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더 나은 수준의 삶을 추구하기를 반복합니다. 모두 AI의 연산값이 더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일과 같습니다.


6.

인간이 기꺼이 스스로를 연산 속으로 밀어넣게 하는 것, 그건 돈이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돈은 숫자입니다.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 모든 것은 계산 가능한 것이 됩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물, 사람, 감정, 개념들도 돈 앞에선 환산 가능한 것으로 전락합니다. 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주인공이 감각하고 살아숨쉬는 세상이 사실은 수많은 이진법의 숫자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돈은 우리 세상의 뒷면에 십진법의 숫자들을 빼곡히 채워넣습니다. 돈은 강력한 중력이 됩니다. 수많은 형이상학적인 가치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까지도 형이하학의 환산 가능한 세계로 끌어내립니다.


7.

물론 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공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니까요. 자본주의는 인류사 속에서 인간이 개발한 가장 성공적인 체제니까요. 그런데 자본주의의 농도는 국가마다 다릅니다. 서구권은 자본주의가 먼저 시작되었지만 문명의 성장과정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기존 문명의 윤리관, 문화, 교양의 기초공사가 이루어진 상태로 자본주의를 습득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돈 이상의 가치, 우리가 도덕이나 휴머니티라 부르는 것들이 자본주의 안에서도 완전히 매몰되지 않습니다.


8.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각각 독립과 산업화, 공산당혁명과 같은 과정을 통해 체제가 급격히 전복됐습니다. 새로운 문명을 이식 받기 위해 전통적인 가치들을 빠르게 밀어버렸습니다. 그런 국가는 돈이 모든 가치 피라미드의 상위에 오는 사회, 천민 자본주의가 만연합니다.


9.

돈이 모든 가치 피라미드를 지배한 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의 사고방식을 이익과 손해의 사고방식이 대체합니다. 지금 한국의 사회갈등은 사실상 이 ‘이익과 손해’ 라는 관점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빈부, 성별, 세대 등등, 모든 윤리적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들은 사실상 한 집단이 손해를 피하고 이익을 추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습니다.


10.

더불어 도덕성이 타락합니다. AI에게 한 게임을 클리어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AI는 숨겨진 버그를 찾아내 게임을 클리어하길 반복했다고 합니다. 게임을 수행하는 과정보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죄를 짓고 형을 사는 것도 효율성의 차원에서 생각하게 되니까요. 실제로 한국사회의 유난히 높은 사기 범죄율과 부정부패 정경유착 카르텔들... 만연한 모럴 해저드를 이미 아실 겁니다.


11.

그리고 출산율의 문제에 다다릅니다. 지금의 현대 사회에서는 아이를 갖고 부모가 되는 것이 손해가 됩니다. 농경사회에는 출산이 노동력이 됐습니다. 도시화가 진행된 뒤에도 효도와 부모부양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남아있을 때에 출산은 일종의 장기투자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이제 출산은 정말 순수한 희생과 부모됨에서 오는 보람만으로 모든 걸 견뎌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남들 못지 않게 살아가려면 사교육비를 세금처럼 납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크게 보면 부모세대에 부와 기득권이 편중된 이 나라에서 자식세대는 점진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국민이라는 평균값의 방향은 자기 이익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그 끝에 인구 절벽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12.

이건 사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속도는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이 도착하게 되는 귀결점입니다. 한국이 결승선에 먼저 도달하고 있을 뿐, 모두 자본주의의 트랙 위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손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면서 인간의 정복욕과 파괴욕을 지연시키고 우회시켜왔고, 그 평화 속에서 문명의 보전과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세계대전으로 공멸 직전에 이르렀던 인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체제의 완전성을 말하진 못합니다. 이제 지연되어왔던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이미 실패가 검증된 공산주의 같은 것이 답은 아닐 겁니다. 결국 우리는 다음 체제를 모색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인공지능을 전제로 하는 체제가 진지하게 구상되기도 하고, 기업이 국가의 역할을 대체하는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도 SF물로 상상되기도 합니다.


13.

출산율의 문제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단들이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원망합니다. 온갖 이슈들의 댓글마다 이래서 애를 안 낳는다고들 합니다. 그 말들이 잘못되진 않았을 테지만, 그 어느 하나만의 문제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 도착하진 않았을 겁니다. 최근 몇 년 간 그 지난한 싸움들을 봐오면서, 우리에겐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이 글을 남깁니다. 내 주변에 증오하고 혐오하는 시선을 뿌리다 보면 결국 내 삶이 지옥이 됩니다. 때로는 저 멀리 대기권쯤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본주의 같은 것을 욕해보세요. 나와 닮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욕하는 것보단 마음이 편할 겁니다.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