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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May 01. 2023

우리가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찬송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독일인이면 어땠을까? 거무스레한 눈동자가 좀 더 옅어지고, 한국어보다는 딱딱한 독일말을 썼겠지.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달디 단 슈톨렌을 먹고 휴가철에는 기차를 타고 가까운 유럽 나라를 여행할 수도 있을 거야. 네가 커서 같이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보내는 상상도 해본다.


갑자기 독일이 왜 나오냐고? 독일에서는 36개월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됐거든. 아기는 태어나서 세 살까지가 너무 예쁜 시기라서 그때 모든 효도를 다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래. 찬송이 너도 하루가 다르게 엄마에게 경이로움을 보여주었지. 오늘은 닭을 보면서 꼬꼬라고 할 줄도 알고, 잘 잤어요 하고 물어보니 흐응 콧소리를 내며 답했잖아. 그러는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이런 너를 만나려고 태어났구나 싶기도 했어.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고 모든 삶을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이제 한 살이 된 너와 떨어질 일은 없었겠다 싶은 거야. 마음에도 발이 달려 있다면 엄마 마음은 아직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상태. 출근일이 다가올수록 자꾸 엉뚱한 상상만 하는 걸 보니 아직 너랑 떨어질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나 봐. 한걸음에 독일인이 되는 상상을 하고, 또 한걸음에 너의 모든 시절을 주마등처럼 떠올리고. 네가 우리 집에 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연습했는데도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네.


엄마는 날 때부터 낭만주의자였던 것 같아. 딱히 목적 없이 이 직업 저 직업 가져보고, 살아보지 못한 삶은 책을 통해 대신 살면서 이 땅에 발 붙일 생각을 안 했어. 그러다 신앙을 가지면서 한 발 땅에 딛고, 아빠를 만나 나머지 발을 붙이고. 분기점이 되는 큰 사건들이 나를 현실에 살게 했지.


이제 나의 가장 큰 사건은 너라서 엄마는 또다시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만 해. 그게 혹여 너를 울리는 일일지라도 말이야. 사랑은 느낌이 아닌 실재라서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는 법이니까. 이가 나고 뼈가 자라는 고통을 네가 견디듯 나도 너와 분리되는 고통을 껴안아볼게.


그렇지만 여전히 독일의 육아휴직 36개월은 너무나 부럽구나. 국적을 바꿀 수는 없으니 언젠가 같이 그 나라에 가보자. 그때쯤이면 우리나라도 육아 환경이 나아지겠지? 결핍은 성장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니까 그 말에 기대며, 찬송이도 엄마도 각자의 위치에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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