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영 Mar 02. 2024

육아가 선사하는 것


8년 전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여행을 좋아했다. 낯선 땅을 감각하는 기분이 좋았다.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가 기억이 남는다.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산맥 옆을 몇 시간이고 달릴 때,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모든 땅이 척박한 검은흙으로 뒤덮인 걸 봤을 때 자연에 압도당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수백 년 동안 아무도 걷지 않아 이끼가 돋아난 지대를 쳐다보며 나의 한계와 무력을 실감했다. 자연과 내 삶이 비교되면서 아이러니하게 그 둘 모두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비슷한 경험을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다. 바로 고난 뒤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깨달았을 때다. 인과관계없어 보이고 잔인하게만 여겨지는 이 사건이 내게 행하신 가장 선한 일이라고 백 퍼센트 믿어질 때 나는 경이로움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또 한 번 삶을 사랑하기로 했다. 보통은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깨달아졌지만 아주 가끔은 일상을 살다 정말 불현듯 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걸 에피파니라고 할 수 있을까?


처음 바다를 경험한 해서

지난 몇 년 간은 그 기분을 거의 날마다 느꼈다. 해서를 낳고 기르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경이로움에 압도당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뜨거운 그 애를 안았을 때, 첫 용트름을 시켰을 때, 아오 하며 옹알이를 하던 때, 뒤집고 기고 서고 걷던 그 첫 순간에, 내 볼에 정확하게 입을 맞췄을 때, 자고 일어나 나를 향해 웃을 때, 정말 나는 그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처음들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해서는 나의 처음이겠지. 엄마로서 경험하는 모든 것의 처음을 도맡아주겠지.


그런 의미에서 둘째를 다들 사랑이라고 하나보다. 이미 다 해본 경험을 둘째는 다시 반복한다. 분만의 기쁨도, 모유수유를 하는 것도, 아이를 재우는 것도 한 번씩 해본 것들이라 수월하다. (물론 마냥 쉽지만은 않다… 해서 때보다 쉽다는 말) 한 차례 선행학습을 했으니 해빈이가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울어도 다급하지 않고 모든 일에 여유가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도 잘 먹고 잘잔다. 근심 없이 키운다. 다만 어떤 애틋함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곤히 자는 해빈이를 물끄러미 보다 든 생각. 해서를 낳고 몇 시간 동안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이대로라면 자궁 절제술을 해야 한다던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전달해 주었던 그 가능성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나는 해빈이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 이 일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선한 일이란 것을 깨달아 또다시 삶을 인정하며 살았겠지만 그래도 형제를 키우지 못함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을 것 같다. 다행히 이후로 지혈이 잘 되어 오늘날 해빈이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다 생각하니 아이의 존재가 그저 기적처럼 여겨졌다.


아이들 사진으로 메신저 프로필을 해놓자 친구들이 말했다. 지영이가 제일 부자라고, 우주를 둘이나 가지고 있다고. 정말 그랬다. 아이들은 내게 이 땅 어느 곳을 가도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감정을 매일같이 공급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찾게 만든다.


우리가 치루는 값, 우리의 아이

삶에는 당연한 것도 우연도 없다. 모든 것은 응당 값을 치러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값은 품이 많이 드는 것 같아도 가장 귀한 것을 날마다 내게 준다. 육아라는 보편적 행위를 인류가 지속해 온 이유를 알겠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그 자체가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단기간 보면 손해인 것 같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인풋 대비 최고의 아웃풋 아닐까 싶다.


기쁨도 고통도 심화된 나의 삶은 한층 다채롭고 깊어졌으면서 동시에 심플해졌다. 인생의 어떤 경험도 이보다 강렬하고 명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깥으로 나가기에 아직 해빈이는 어리고, 해서는 한창 에너지 발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휘성이와 나는 오늘도 아이 하나씩을 마크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나는 이렇게 글도 쓰는 여유가 있지만 남편은…. 힘들 것이다. 매일 지친 심신으로 귀가하는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다음날이면 또다시 아이와 나가는 게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큰 어른이 되고 아이 곁을 지키는 우직한 나무가 되어가나 보다.


어서 날이 따뜻해져서 넷이서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 자연과 아이들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이 모든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혼자일 때의 나와
이제는 아이와 함께인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